모든 사람은 각자의 역할 속에서 살아간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수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직장에서는 직장인의 얼굴로, 가족 앞에서는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조금 더 편한 나로 살아간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로 살고 있는 걸까.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맡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역할에 어울리는 모습까지 기대받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상하게도 한 가지 모습만이 정답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다. 조용하면 소극적이라 하고, 먼저 나서면 튄다고 한다. 기준은 모호한데 평가는 분명하다. 누군가 정해 둔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기다렸다는 듯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그 말들에 맞추어 나를 조금씩 고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흐려진다.
나는 그저 나답게 있을 뿐인데, 왜 그게 문제처럼 여겨질까.
누군가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바꾸어 가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점점 말수가 줄고, 눈치를 보게 되고, 나를 나답게 만들던 모습들이 조금씩 사라져 간다. 그렇게 맞춰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희미해진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며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나 역시 누군가의 눈에는 ‘어떤 역할’로만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애써 참고 있는 모습도, 웃으며 넘기는 태도도, 그저 내가 선택한 방식이었을 뿐 내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됐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말을 아끼는 사람은 생각이 깊었고,
밝고 잘 웃는 사람은 마음속에 아픔이 있었고,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배려를 선택했으며,
먼저 다가온 사람은 그만큼의 용기를 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그 사람이 선택한 모습일 뿐,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앞에서 이끌고, 어떤 사람은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며, 또 어떤 사람은 엉뚱함으로 분위기를 밝힌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다를 뿐, 누구 하나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색으로만 살아간다면, 오히려 세상은 훨씬 단조로웠을 것이다.
서로 다른 색이 나란히 놓일 때 비로소 풍경이 생기고, 다른 결이 겹쳐질 때 비로소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닮아서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함께 설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할은 우리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우리를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이 모여야 비로소 하나가 완성된다.
어쩌면 내가 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할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 그 자리에 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나답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 한 사람쯤은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그 사람 앞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조용히 찾아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평생 애써왔던 수많은 역할들이 결국 나를 숨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더 이상 ‘어떤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