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거리
1.
최근 살이 부쩍 쪘다. 아무래도 학기 중에는 어딜 가든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통에 매일같이 만 보씩은 걸었었는데, 종강 후 지금까지 쭉 아파 거진 한 달을 드러누워 지낸 탓인 것 같다. 하나 다행인 점은 최근에 위염으로 한 주를 굶다시피 했더니 조금 빠지기도 했다는 점. 원래도 통통했던 편인 데다가 찐만큼 빠지지는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조금 제철이 되었다.
나는 항상 살에 대한 지적에 예민했었다. 이제 와서야 외모 지적은 당연히 무례한 일로 여겨지지만,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는 무례함에 꽤나 관대한 편이었다. 소아 비만 출신인데다가 원체 살이 잘 찌는 체질인 나는 활동량이 적어지면 금세 살이 찌곤 했고, '너 살쪘다'라는 소리를 들을 일이 자주 있었다. 그 말이 왜 기분 나쁜지 이유도 몰랐던 어릴 때도 그 말이 몸서리치게 싫었는데, 머리가 굵어진 지금은 어떨까. 고등학교를 들어가며 활동량이 적어지고, 대학교를 들어가며 술을 잔뜩 먹게 되며 나는 평균 체중이 10kg 가까이 올라버렸다. 그동안 살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스트레스받았던 날만 뽑아다 모아도 일 년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살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노심초사 전전긍긍했다.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어쩌지?', '내가 살이 너무 쪄서 보기 싫은가?', '나 안 그래도 못생겼는데 더 꼴 보기 싫어진 거 아니야?'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은
'I Don't Give A Fuck'
'어쩌라고 병신아'
해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살쪘다는 말은 짜증 난다. 지 앞가림이나 잘 할 것이지 무슨 대단한 여유가 있으시다고 내 살 걱정까지 하시는지 싶지만, IDGAF 어쩌라고 병신아 해버리면 이전처럼 상처를 받지 않는다. 듣기에 참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들 역시 대단한 악의로 내게 상처를 주려 한 건 아니었으니. 땅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주워다가 내 가슴에 꽂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가 살이 쪘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이들은 이전의 나를 기억하고, 지금의 나를 보았고, 나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인 거니까. 썩 달갑지 않은 어머니의 잔소리나 할머니의 고봉밥처럼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꼬우면 내가 살을 빼든가 해야지 원.
2.
최근 홈트를 시작했다. 병상에서 일어나 퉁퉁 부어버린 모습을 보고 받은 충격도 있고, 또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살쪘다 소리가 듣기 싫기도 했고, 몸이 찌부둥하기도 했다. 턱걸이 봉을 사다가 화장실 벽에 붙여놓고는 눈에 띌 때마다 두 개씩,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매일 50-40-30-20-10개씩 하고 있다.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대단히 쉽지도 않다.
살다 보면 꾸준히 느껴지는 게 꾸준함의 어려움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루틴으로 시행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일같이 운동에 가고 매일 습관처럼 독서하고 자기 계발하는 이들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나는 매일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만 하고, 12시가 지나기 전에 허겁지겁 써다가 올려놓고 드러눕기가 일상다반사다.
물론 이런 나조차 대단하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들은 나처럼 블로그를 못 할 거란다. 나도 당신들처럼 매일 운동 못 하겠단 말이다. 하루 30분 고작 이 운동조차 귀찮아서 오늘도 걸렀는데, 매일 3시간씩 투자하는 당신들이 난 무척이나 신기하다. 한창 아동센터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퇴근길에 적절하게 헬스장이 위치해있어서 곧잘 다녔었는데, 퇴근도 할 일 없고 동선에 헬스장도 없는 지금의 나는 헬스장까지 발이 옮겨지지가 않는다.
하여간 운동만큼 싫은 게 없다. 나도 몸짱이 될 수 있을까. 몸짱이 되면 나도 여자친구가 생길까.
3.
예전에 친구의 애인으로 알게 되어 부쩍 가까워진 친구가 있었다. 여러모로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썩 잘생기지 않은 내 친구를 만나기에 상당히 의아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 친구의 성난 근육이 좋았다고 그러더라. 내가 본 그 사람은 상당히 지적이고 이성적이며 차분했는데, 그 섬유 조직이 뭐라고 거기에 반해 내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을 비난하거나 비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둘 다 참 좋은 사람이고, 잘 만난다니 다행이었다. 다만 신기했다. 어린 시절 흠모했던 선생님이 담배 태우는 걸 목격했을 때와 퍽 닮은 기분. 지적인 면이 참 섹시했던 그 사람도 근육에 홀리다니. 어딘가 거리가 멀어보였는데, 원래 사랑이란 자신에게 없는 걸 좋아하기 떄문일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DNA의 운반 수단이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인간이란 DNA가 후대로 더 안전하게, 도태되지 않고 기리기리 보전되도록 노력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그 관점에서 보면 앞선 친구의 애인은 DNA가 시키는 대로 훌륭한 선택을 한 것일 수 있다. 근육질의 남자는 강하고, 강한 남자는 잘 살아남을테니까.
내 게임 닉네임은 '강한남자연민우'인데, 나는 과연 강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