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듯 무례를 범하는 당신에게
그런 이가 있다. 얄팍한 권위를 앞세워 상대를 짓뭉개는 재미로 자존감을 채우며 살아가는 이.
우리는 그를 흔히 꼰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이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이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 묘한 불쾌함에 조금씩 젖어들다가, 이내 그가 대놓고 무례를 범해도 괜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기도 한다.
그가 꼭 그랬다. 왜인지 모르게 어린 시절부터 내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았던 그. 그는 꼭 나와 비교하여 우위에 서고 싶어 했다.
나를 이겨먹고 싶다고 길길이 날뛰는 그에게 나는 늘 숙여주었고, 그는 우월감에 빠져 늘 나를 깔아보았다. 쟤는 나보다 뚱뚱하네, 키가 작네, 못생겼네, 내가 쟤보다는 몸이 좋네, 키가 크네, 잘생겼네, 그는 나를 향한 괄시를 통해 어른들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상처였다거나 가슴 아픈 기억은 아니었다. 이기고 싶다는 놈 이기게 해주는 게, 대장 놀이 하고픈 아이에게 감투 씌워주는 게, 내게는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와 내가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였다. 내가 그를 늘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관계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게, 일찌감치 그와 더 넓은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했던 게, 그에게 무례를 실컷 입어버린 지금으로써는 참 안타까운 점이었다.
그는 나와 함께하는 게 즐거웠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맞아주고 져주는 장난감이 있는데, 그것을 싫어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꽤 오랜 시간 보아왔는데, 그는 썩 나를 가까이에 두고 싶어 했다. 그의 적극적 몸짓으로 서로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우리는 서로의 집에 여러 번 왕래할 만큼의 관계를 유지했다. 둘이 술도 왕왕 마셨다. 그래, 술이 그의 ‘무례 리미트 해제’ 버튼이었나 보다. 그는 술을 마시면 그것을 핑계 삼아 내게 아주 편안하게 무례를 범했다.
술을 사주겠다며, 오랜 시간 보지 못하지 않았냐며 그가 제 집으로 나를 부른 날이었다. 어김없이 술을 마셨던 그날, 그의 무례는 동일하게 이어졌다.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어 고민이라는 내게 현실적인 조언이라며 인신공격을 하고,
진로 걱정을 하고 있는 내게 ‘어차피 돈도 못 버는 일’이라며 크게 고민하지 말라 조언했다.
내가 웃자고 한 자학개그에 적극 동의하며 ‘너는 원래 그런 놈이 맞다’는 이야기를 슬쩍 건넸다.
더불어 그는 뒤에서 나를 향해
‘10년 뒤에 내 연봉 반도 못 받을 놈’이라며 괄시하기도 했다.
그것이 조언의 탈을 쓴 비하임을 단박에 깨닫지 못했던 내가 돌이켜보니 참 불쌍할 따름이다. 그 자리에서 따귀를 한 대 날려줬어야 했는데.
그 모든 일은 술을 마셨다는 하잘것없는 핑계로,
그가 나보다 연장자라는 같잖은 이유로,
그가 술을 사준다는 졸렬한 이유로,
정당성을 획득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는 조언이라는 형태로,
인생 선배의 이야기라는 모양으로,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라는 모습으로 당연했었다.
눈치가 없었던 걸까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걸까. 그 때의 내가 느끼기에는, 그의 무례는 괜찮은 것만 같았다.
종종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도 하며 내게 신뢰감을 주는 듯 보였던 그였기에,
가끔 연락하면 아주 친근하게 받아주던 그였기에,
술을 마시지 않고 평온할 때에는 꽤나 좋은 형이었기에,
나는 그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바쁜 일을 맡게 되었다며 힘들어하던 그. 내가 많이 힘드냐는 걱정을 건넸을 때, “니가 뭘 아냐”라며 고개를 베개에 처박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런 믿음을 가졌었다.
술이 깨고 맨정신이 되니 그의 무례함에 벅벅 긁힌 가슴이 시리도록 아려왔다. 내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부러진 발목에 급하게 맨 얼음을 가져다가 문질렀던 그때에 느껴봤던 촉감이었다. 차가움에 오그라드는 피부와 별개로 벌겋게 달아오르는 상처의 뒤틀린 고통.
해장국을 사주겠다며 일어나면 깨우라던 그를 뒤로 한 채 나는 짐을 챙겨 그의 집에서 나왔다. 깨우지 그랬냐는 한참 뒤의 연락에 평소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번호를 지웠다. 후련했다. ‘남편사망정식’을 먹던 드라마 속 어느 캐릭터의 마음이 이랬을까. 혹여 훗날 그의 연락처가 필요한 날이 생겨 당황하더라도, 그 때의 당혹감에 얼굴을 붉히더라도, 관계있는 이들 사이에 불편함이 감돌더라도, 그 모든 일일 감수해도 괜찮았을 정도의 후련함이 느껴졌다.
그의 번호를 지우고 혼자 낯선 지역을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그 지역의 명물이라는 빵도 사 먹어보고, 우리 동네에는 없는 헌책방에도 다녀와봤다. 빵은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먹으라며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 적당한 짠맛에 감칠맛과 쫄깃함이 어우러져 일품이었다. 나는 그 빵을 입천장이 다 까지도록, 나중에 입 껍데기가 막 씹혔을 정도로 정신없이 뜯어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헌책방에서는 두툼한 책 두 권을 오천 원 주고 사 올 수 있었다. 이때의 소비는 평생에 손꼽히는 합리적인 소비라는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가 없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나를 갉아먹는 사람이 없으니 행복했다.
그때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나는 내 눈앞에서 나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그의 비언어적인 대화에서까지 만족감이 뿜어져 나오길 원하고 있었다. 나를 질투하는 이에게 사랑받겠다는 마음이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그 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기에 품은 욕심이었다. 그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내 믿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부린 오욕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그도 좋고 나도 좋은 ‘윈윈’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오랜 시간 보아온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님을, 그가 원하는 것이 내 행복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에 참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기만을 원하면 안 됐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야 했다. 내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과 웃으며 대화하는 일은 내가 불행해지는 일이었다. 무례한 이와 웃으면서 대화하는 방법은 내 불행을 삯으로 지불하는 일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그에게서 연락이 온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에게 지불할 불행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참이었다. 그에게서 오는 연락은 어김없이 짧은 인사치레만으로 끝난다. 더 이상 내가 신나서 그의 이야기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요는 내가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의 연락이 인스타그램 릴스 하나 만큼도 웃기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