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예쁘고 봐야지..?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by 연만두

불알친구들과 술을 까며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자는 외모가 최우선이다. 나 좋다는 여자가 하나 있는데, 다 괜찮은데 외모가 별로라서 도무지 마음이 생기질 않더라. 나도 연애 한지 원체 오래되기도 했고 성격 대화 코드 등등 다 괜찮아서 한 번 잘 해볼까 했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봐. 여자는 우선 예쁘고 봐야 해.”


나의 이 말에 대부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신들의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지만, 한 명의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하기만 했다. 그는 우리가 뒤이어 여자의 외모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내내 말을 아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스타일도 아닌 그 다운 말이었다.


“그럼 너희는 정말 예쁜데 대화가 하나도 안 통하는 여자와 못생겼는데 대화가 잘 통하는 여자가 있다면 누구를 고를 거야? 난 후자를 고를 거 같아.”


나와 몇의 친구는 지금껏 우리 말을 뭐로 들은 거냐고, 당연히 전자라고 그야말로 집이 건드려진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난리 법석을 피웠다. 그는 웃으며 진정하라고 손바닥을 내저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 그는 조용하게 이 책을 선물해 주며 말했다.


“너희 얼마 전에 여자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했던 거 기억해? 그때 너희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이 생각났어. 꼭 읽어보고 같이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왜 그가 우리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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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못생긴 작가가 쓰는 가장 못생긴 여자를 위한 선물”


-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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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직장 내 인기투표에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훈훈한 남자가 문득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 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못생긴 여자, 그것이 주인공이 사랑한 ‘그녀’의 첫 모습이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도 좋아하는 데에는 보통 이유가 없다고.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러한가 보다. 주인공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처음엔 그녀가 신기했다, 이렇게 못생길 수가 있나 싶어서. 뒤이어 궁금했다, 어떻게 지내온 사람인지. 그다음엔 신경이 쓰였다, 여자들 무리에서 도통 보이지 않았기에. 그러니 찾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그리고, 못내 사랑하게 된다.

물론 둘의 사랑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떡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추하디 추한 여자는 사랑을 받는 일조차 쉬이 하지 못한다. 남자라고는 누군가 내기의 벌칙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온다든지 하는 경험밖에 없었던 그녀는 자신은 사랑받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을 받는 일이란 평생 자신을 지키고 있던 갑주를 벗는 일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진심을 전하여 갑주를 벗겨낸 뒤에도 그녀는 툭하면 다시 웅크리고 갑주 뒤로 숨으려 한다. 행복한 데이트를 한 뒤에도 자신과 함께 다니는 일이 부끄럽지 않았냐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물어온다.

사랑한다며 그래도 된다고 다독이며 겨우내 안정을 찾았던 둘의 사랑은 뭇 사랑이 그러하듯 상황이 변해감에 따라 변모하기 시작한다. 둘의 오작교가 되어줬던 이가 떠나가고, 그는 학업을 위해 떠나가고, 그녀는 아버지 병환의 악화에 집으로 떠나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편지에는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사랑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미안해만 했던 그녀가, 마지막 인사로 겨우 내비친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그가 싫어져서도 미워져서도 아닌, 그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게 되어버려 떠난다고 말한다. 그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를 보고 싶어 하는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라고, 자신은 이렇게 태어난 모양이라고.

탈무드에서는 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재채기, 가난, 그리고 사랑. 그래, 사랑은 한쪽이 떠나간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은둔하고, 그는 그녀를 찾는다. 과연,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까.

뒤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직접 알아보시길. 손을 바르르 떨 정도로 충격적인 반전이 있기에, 쉽사리 뒤 내용을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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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둘의 사랑은 참으로 절절하게 그려진다. 그 형태는 얼핏 보면 평범한 남녀의 사랑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가 구애하고 여자는 거절하는 모양새를 보이기에. 다만 거절의 귀책이 남자 쪽에 있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꽤나 의아했다.


‘못생긴 여자에게 이 정도로 사랑에 빠질 수 있나?’


나의 의문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 책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실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모리스 라벨과 밥 딜런을 좋아하고, 미셸을 좋아하고, 선인장 꽃과 더스틴 호프만을 좋아하는 여자애를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오빠 나 오늘 이뻐?’ 그래 이뻐. ‘오빠 토요일 날 행사장에 와줄 거지?’ 아니 몰라, 한 번만 봐줘 정말 집에 일이 있다니까.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너가 중요해. ‘거짓말, 와주지도 않는다면서.’ 미안, 내가 나중에 선물로 갚을게. ‘선물 살 돈 있어?’ 있어. ‘흥 다 필요 없어’ 왜 그래 또? ‘뭐가, 뭐가 왜 그래?’

이를테면

그녀를 만나기 전의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는 여자애들의 전부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쉽고, 간편한 세계였다. 이뻐와 착해, 그리고 돈 있어로 모든 것이 해결되던 세계였으니까.”

그저 모리스 라벨과 밥 딜런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난 적이 없던 것처럼, 선인장 꽃과 더스틴 호프만을 좋아하는 여자애를 만난 적이 없던 것처럼, 이토록 못생긴 여자를 만난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 외모 또한 하나의 기준이자 특성일 뿐이다. 모두에게 다른 점이 있듯이, 그 때문에 사실 모두는 서로 상이하게 이상하듯이, 못생김 또한 상이한 이상의 하나일 뿐이다. 외모가 못났기에 싫어할 수는 있어도, 외모가 못났기에 싫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외모가 하나의 명확한 근거는 될 수 있어도, 모든 근거가 외모로 수렴하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그럼에도 외모의 지배력을 난폭하게 숭배하며 이를 무기처럼 휘둘렀다.

나는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이 당연한 이치를 깨달았다. 그리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분명 이성을 볼 때 내면을 중시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외모만 보는 누군가를 보며 ‘여미새’라고 욕했었는데, 어쩌다 그 욕이 더러운 침이 되어 내 얼굴에 떨어지게 되었는가.


돌이켜보니 그러했다. 나는 여자가 예쁘기만 해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내면을 보고 여자를 좋아한다. 주변에 수많은 예쁜 여자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마음씨가 결정적이었다. 다만 지금껏 사랑이 상처뿐이었기에, 내면을 보고 마음에 품었던 이들에게 상처를 받았기에, 어차피 상처를 받겠노라면 다홍치마를 고른 것뿐이다. 나의 상처를 인정하기 싫어서, 나의 실수와 모자람에서 오는 추잡함을 드러내기 싫어서 모른 체했을 뿐이다. 풀어헤쳐진 앞의 과정이 뭉뚱그려 나타난 것이 이것이었다.

“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자는 외모가 최우선이다. 나 좋다는 여자가 하나 있는데, 다 괜찮은데 외모가 별로라서 도무지 마음이 생기질 않더라. 나도 연애 한지 원체 오래되기도 했고 성격 대화 코드 등등 다 괜찮아서 한 번 잘 해볼까 했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봐. 외모가 최고야, 우선 예쁘고 봐야 해.”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준 친구는 나의 모순을 진작 깨달았던 것일까. 우선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면서도 아무 여자나 예쁘다고 무작정 좋아하지는 않는 나를. 그간 무수한 못생김을 콩깍지를 써서라도 사랑해왔으며, 또다시 마음이 예쁜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어쩌면 그가 나보다 더 나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그가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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