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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Aug 11. 2016

14. 도리를 찾아서

희망적인 장애어류들의 감동스토리

니모와 도리

주황색 몸에 흰줄, 광대물고기라 불리어 'Clown fish' 라고 불리우며 말미잘속에서 사는 물고기, 우리는 "니모"라고 부른다.  파란색에 노오란 꼬리를 가진 아름다운 물고기, '블루탱' 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도리"라고 부른다. 니모는 소실적 -알이었을때- 곰치의 공격으로 형제와 엄마를 잃고 한쪽 지느러미가 작게 태어난다. 아니 부화되었다. 도리는 선천적으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 금방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 '니모'를 아빠는 조심스레 안전하게 키워왔고, 그러다보니 니모를 향해 항상 '안된다'라는 말만을 해왔다. 도리의 부모는 도리를 위해 노래로 '기억'을 되살리는 노력도 하고, 조개껍질로 도리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그리고 숨박꼭질로 친근감 있는 교육을 하였다. 니모와 도리의 이 영화는 바로 장애와 장애아를 돌보는 부모,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제 두번째 '도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요

도리는 어려서부터 금방 기억을 잃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는 어린 블루탱 물고기 였다. 사실 우리는 물고기가 금방 기억을 잃는다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낚시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는 말이다. 놓아주면 또 잡히고, 놓아주면 또 잡히고.


사실 과학적으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모두 오류이다. 여러 실험결과를 보더라도 물고기의 기억력은 그리 낮지 않다. 심지어 현재이 인간의 집중력은 8초, 물고기의 집중력은 9초라고 한다. 어쩌면 도리라는 물고기가 탄생한 배경도 우리가 잘못생각한 물고기에 대한 오해때문이 아닐까.  어째튼 도리의 부모는 도리의 이런 지적 장애(?)로 인해 길을 잃는 불상사를 겪지 않도록 아이친화적인 교육으로 도리를 보살핀다. 그래서 도리에게 이야기하도록 한 단어는 바로 "단기기억상실증" . 마치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하철에서 다 큰 성인으로 성추행범으로 몰린 초원이가 외친 한마디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고 항상 엄마가 이야기하는 말이다. 장애아를 양육하고 보호한다고 하는 것은 또다른 사회를 살아가는 심정일 것이라. 직접 경험한 사실은 없지만 많은 장애아의 부모들은 그대로의 상실감과 걱정,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사회의 편견, 이 아이가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일 클 것 같다.



항상 그렇듯 우리가 걱정하는 사건은 늘 일어나고, 그것은 아무리 준비해도 막을 수 없는 필연적인 사건이다.  그런 도리는 집을 찾아 헤메고, 희미한 기억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단기기억상실증은 그녀에게 상실감만 안겨준다. 그러다 니모의 아빠를 만나고, 니모를 구하면서, 그녀에게도 가족이 있음을, 돌아갈곳이 있음을 깨닫게 되며, 긴 여정에 오른다. 그녀에게는 이미 또 다른 가족이 생겼으니, 바로 니모와 니모의 아빠. 니모의 아빠는 도리의 도움으로 니모를 구했지만, 정작 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그 고마움도 잊고 도리의 말을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 이유는 니모를 위한 것. 어쩌면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편견때문에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여곡절끝에 찾아간 해양연구소에는 의외로 많은 장애를 가진 물고기들과 동물들이 있다. 근시로 고생하는 고래상어, 정작 자신의 초음파 능력을 믿지 못하는 돌고래, 촉수가 하나 부족한 문어, 걱정은 하지 않는다지만 걱정거리와 바위에 집착하는 물개들, 대단한 집중력은 보이지만 허술해보이는 베키.  마치 우리의 사회를 축소시켜 놓은 듯 한 모습이다. 그런데 어쩌면 신체적, 정신적 장애보다 더 안스러운 모습은 심리적인 장애를 가진 비장애인인 듯하다. 화를 내고, 집착하고, 무시하고, 상처주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많은 부류의 사회인들. 현대 사회는 단순히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편견을 갖기에는 뭔가 답답하다.


헤엄쳐

그런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도리가 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엄마가 가르쳐준 한마디 "헤엄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어려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가 아니다. 누구나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헤엄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헤엄치다 보면 이 드넓은 바다에서 쉴곳도 찾게되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만나게 되고, 내가 살아던 곳, 잊혀지내던 고향으로도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한 사람들, 잊고 지내던 내 사람들,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계춘할망"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바다는 경계가 없다. 그런 바다를 헤엄치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찾던 그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만남도 소중하게 생각해야하며,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여 대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만남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이정표가 되고, 배의 노도 되고, 나를 감싸줄 부드럽고 따뜻한 담요도 되는 것이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나에게 받은 배려가 그에게 힘이되고, 사랑이 되고,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도 어쩌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도리가 만난 여러 물고기들은 모두 상처가 있다. 물론 도리도 상처가 있다. 도리의 단기기억상실은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단점이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찾아내는 장점도 같이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상처와 아픔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마치 심연의 자아에 가라앉아 지금은 우리의 기억에 떠오르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 아픈 기억으로 떠오른다. 우리는 이것을 '트라우마'라고 이야기 한다. 가끔우리는 기분이 우울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가라앉는다'라고 말하고, 기분이 좋으면 '떠오른다'라고 말한다. 대부분 좋은기억은 오래가지 않지만, 아픈기억은 오래도록 각인되는 불편함을 겪는다.  도리도 어릴적 좋은 기억보다는 부모와 떨어져 홀로 떠돌던, 집을 찾아헤메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럼 왜? 우리는 아픈기억만 남아있게 될까? 그것은 우리의 뇌가 우리가 닥친 아픈기억의 사건들로 인해 다시 다치지 말기를 바라는 그런 면역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되면 머뭇거리고,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 사건이 나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걸, 우리의 뇌는 깊은 곳에 저장해놓았다 다시 꺼내 경고이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다. 행크가 어린이들의 체험관에서 당했던 상처와 아픔으로 그곳으로 가기 꺼려하고 겁을 먹는것, 그래서 우리는 이 아픔을 이겨나가야 하며, 그래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의 의미 그리고 동정심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그런 가족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내가 가진 모든것을 내 옆의 형제들, 부모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때 가족을 찾고, 아픔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어한다. 그런 가족을 잃은 사람의 마음은 우리는 도리만큼 잘 알고 있다. 대구지하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마지막 전화를 받은 가족들, 깊은 심연의 바다로 가라앉으며 얼마나 "엄마, 아빠"를 불렀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나는 세월호 우리 단원고 아이들.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저 남의 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장애아와 그 부모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쇼페하우어는 "동정심은 모든 도덕성의 근본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여기서 동정심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닌, 상대방의 상처가, 아픔이 나도 같이 여겨져서 나도 같이 슬퍼하는 동정심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동정심은 배려를 낳고, 그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로 도덕성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도리를 찾아서... 재미있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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