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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Oct 17. 2016

21. 범죄의 여왕

걸러지지 못하는 엘리트들 사회를 망치다

수도요금이 115만원이라고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공간은 외적인 보이는 것만 아닌 내적인 마음의 공간도 있다. 큰 아파트, 주택.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타인에 대한 과시나 타인의 부러움에 대한 개인의 대리만족으로 감당하지 못할 넓이를 선택하고 큰 큰공간에 자신을 가두기도 한다.  오히려 사회적 영역을 넓게 갖는 것이 더 큰 공간을 갖는 것임을 모른체.  사실 덩치가 크고 외형만 크게 갖는 사람의 마음의 그릇은 오히려 작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본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가지고 있는 공간도 작고 마음의 내적 공간도 작게 가질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경제적 개념으로 인한 그들의 작은 쉼터,  그리고 각박한 세상을 살기위해 그들이 선택한 작은 마음의 공간은 현대사회의 개인적 심리적 문제로 다양하게 표출되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서울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미경의 아들 익수가 사는 공간이 그렇다. 오랜된 '맨숀'을 고시촌으로 개조하여 다양한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인간으로 가득찬 쾌쾌한복도에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 햇빛도 혜택받지 못하는 공간. 그들은 그 공간에서 자신과 그리고 그들간의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어느날 아들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 "수도요금이 120만원이 나왔어" 사건은 여기부터 시작한다.

403호 그리고

미경은 관리사무소를 통해 403호와 같은 수도 계량기를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403호를 의심하게 되고 '개처럼 태어나서 개태'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인 직원 개태. 미경은 개태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위해 "내가 엄마 해줄게"라는 "뭐 그런 말이 다있어"라는 자신만의 보상으로 하나둘 접근을 시작한다.

미경은 사법고시 1차 시험을 통과한 아들을 뒷바라지 한다. 그녀도 다른 부모들과 같이 아들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는 아주 흔한 래퍼터리로 인생을 살고 있다. 시골 미장원에서 청담동 숍 못지않은 시술을 뽐내며 불법을 자행하는 지극히 서민적인 어머니. 당연히 '120만원' 이라는 -상수도가 민영화된 영국에서나 볼 수 있을까? - 수도세에 화를 내고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난데없는 정의심까지...  아마도 후에 판사가 될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발동해서일까.  그러나 정작 아들은 그런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뒷바라지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그저 과도한 수도세-시험으로 너무 예민해져 과도하다는 판단도 못하는- 만 내주고 가주길, 그런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 정의를 심판할 사람이 자신의 태생도 무시해버리는 어리석음. 지금 상태는 시험에 쫓겨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오로지 한가지 목적만이 남은, 그것을 방해하면 금방이라도 물어버릴것 같은 밥그릇에 열중한 사냥개와도 같다. 마치 종말로 치닫는 403호 인간같은.

어쩌면 아들의 협박같은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그 공간에 남게 한것은 그런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403호 처럼 변해가는 고시원 모든 사람들에 걱정으로 다가오는 '촉' 때문일지도

 개인의 성공에 몰두하느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전혀 잃어버린 철창에 갇힌 맹수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려 으르렁대는 고시촌.  저기에서 정의를 실천할 판사, 검사, 경찰관, 공무원 등등 나올텐데 마치 영화 '부산행' 의 대전역 창문이 깨지며 우루루 쏟아지듯 달려드는 좀비들 처럼 사회로 쏟아진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될것인가. 그공간이 그들의 마음을 작게 만들고 그들이 살아야 할 사회마져 망각하게 만들었다. 어이없는 수도세에 대한 엄마의 집념만이 그런 어리석음으로 성공하려는 그들에게 한줄기 빛줄기가 되어 내려올 뿐 .

어디서 내새끼한테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강연과 책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덜.  유독 한국에서 그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사회가 정의로웠으면 하는 바램.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갖는 갈증. 진정한 정의에 대한 궁금증. 으로 인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일거다.


법은 우리사회를 보호하기위해 존재한다. 법은 우리를 통제하기위해 존재한다. 법이 단순히 문서로 이루어진 규칙이라면 법은 우리를 통제할 것이다. 법이 사회를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사회와 같이 움직인다면 법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다. 과연 어떠한 법이 더 정의로운가? 과연 법이 이 두가지에 한정되어 집행되고 있는가?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저 정의의 여신상은 이제 안대를 풀고 사회를 보아야 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고시촌 안, 학원 안이 아닌 밖의 세상을 보는 덕구는 비록 시험을 포기하지만 진정 사회를 향하는 그가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녀가 맞선 칼날에 엄마는 "어디서 내새끼한테...." 말한마디 눈빛으로 정의를 보여주고 막아낸다.  그녀가 생각하는 정의는 시험이 임박해 다른 아무것도 신경쓰기 싫은 나 자신이 아닌, 당연히 시험을 보고 정의를 집행해야 할 사람으로서,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마음.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며 당연히 정의스러운 것이다. 그렇기에 그 칼날은 정의에 맞서지 못하고 힘을 잃고 만것이다.

광화문 시네마의 놀라운 능력

족구라는 소재로 청춘의 삶을 해석한 "족구왕", 수도요금하나로 세상의 정의에 대해 일깨워주는 "범죄의 여왕" 그리고 광화문 시네마 그네들의 신선함과 지극히 독립스럽고 주제가 있는 영화가 다시 기다려진다. 광화문 시네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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