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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Oct 24. 2016

22. 곡성

살인의 콜라보레이션

곡성 X 종의 기원  콜라보레이션

벌써 넉달이나 되었나. 독서를 시작하기 위해 고르고 고르다 선택한 정유정 작가님의 "종의 기원". 미루고 미루다 오늘 탈독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지루하게 시간을 끌게 된 것은 이런 소재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 탓이겠다.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이 너무 기대를 갖게한 책임도 있겠다. 하지만 탈독을 한 느낌은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내용과 이책이 현 시대에서는 단연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만든 여러매체에서 특히 발빠른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신문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문제들. 너무나 파렴치하고,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사건들이... 그런 소재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우리로 하여금 "종의 기원"을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참담한 심정이다.

'곡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 관람한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소재, 사건들이 너무나 참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지인들이 '영화 어때?'라고 물을때마다. '보지마, 개쓰레기 같은 영화야.' 확신에 차서 이야기 했었다. 그랬던 가장 큰 이유는 극중 '종구'의 딸이 이유도 모를 '개병'을 얻어 가족을 살해하는 후반부 장면. 아무리 참신한 소재, 마음 먹은 주제가 있더라도 '어린 딸', '가장 사랑스런 딸'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가족을 죽이고, 딸바보 아빠를 죽이는 그런 영화는.... 이제 이런 한국영화는 없었으면 하는 그런 이유 모를 분노였을 것이다. 평온한 시골마을을 피비릿내가 나는 살인현장으로 만드는 '나홍진'감독이 원망스럴 따름 이었다.


'종의기원'의 유진도 마찬가지, 단순히 '개병'을 얻어 심리정신적 문제로 인해 이유도 안되는 지나던 여성을 살해하고, 그 현장을 목격한 어머니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찾는 이모를 살해하는 몸쓸 인간, '개쓰레기' 같은 인간에 대해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이글을 전개하였을까? 이전의 작품은 읽은적이 없으나 단순히 인기에 기대는, 현대 문화매체의 잘못된 흐름 같은 폭력, 살인 같은 정도가 지나친.. 인기에 영합한 작가는 아닌지. 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이해를 해보려 노력도 했었다. 곡성과 관련된, 곡성에서 이야기하는 악에 대해 여러 전문지식과 성경까지 인용한 블로그의 해설도 보게 되었고, 무명의 의미에 대한 여러해석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의 분노는 몇달동안 가라앉지 않았으며, 만약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면, 실컷 욕이나 해줘야 겠다 라고 마음 먹었었다.  

'종의 기원'의 중간부분을 지나  후반부로 들어가며 나의 눈은 바빠지고 있었고, 점점 빠져드는 주인공 '유진'의 심리상태, 그를 둘러싼 사건들. 예상했던 결말과 다른 진행, 그리고 마지막 '악'에 대한 작가의 주. 그리고 글을 쓰면서도 '유진'이라는 인간에 대한 캐릭터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 그녀가 고민한 것은 내가 그동안 '악'에 대해 증오했던, 그래서 글을 쓰기 싫어 했거나, 악랄하게 비평하고 싶어했던 나의 마음과 일치하였다.


선 그리고 악

선과 악. 여러분이 갖는 선입견은 선이다. 악을 갖고 있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선한가?' '악한가?'라는 질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책을 쓰시고 많은 경험도 하신 분들의 주된 주제이었다. 우리는 어디서든 선과 악을 만난다. 특히 종교에서는 항상 우리가 섬기는 신은 선이며, 그를 괴롭히는 악이 있다. 혹은 그 악마저 선의 신이 다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의 안에는 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악을 단순히 풀이한다면 사회적 도덕심에 반하는 행동, 심리라고 할까? 현대사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즉 부도덕한 존재를 악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태고적 사상에는 선과 악은 공존하는 것으로 선은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고, 악은 변화를 갖게하는 것이다. 그 악은 변화를 통해 세상을 정제하고 깨끗하게 하여 다시 선의 세상이 오도록 하는 필수불가결한 행위였다.  내 안의 악은 누군가와 좋지않은 일이 있을때 속 시원하게 때려주고 싶은 마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속 시원하게 욕해주고 싶은 마음. 지극히 소극적인 반항이다. 하지만 안다. 나는 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엄격한 기준을 가진 나는 그저 속으로만, 뒤로만 '벙어리 냉가슴'을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도 악을 행할때가 많다는 것도 안다.

요즘 나는 단편소설을 쓰고있다. 그 소재는 주변인들에게 악을 행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나는 그녀를 '마녀'라 지칭한다. 주변인들로부터 상처를 받아 홀로 깊은 고민과 자기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우울증'여성의 이야기 이다. 그녀의 행동을 나는 악하다 본다. 하지만 그녀는 주변사람을 악하다 본다. 관점의 기준에서 누구든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사회. 또 그런 '악인'들이 표출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곡성'과 '종의 기원'이 주목받는 이유일 것이다. 항상 선하다 생각하고, 나쁜 악을 멀리하려는 현대인들, 우리. 우리는 그런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우리의 현실은 악의 모습, 행동을 보여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순수의 악

곡성의 일광은 악을 불러오나, 직접 집행하지 않는다. 일광은 알지모를 '개병'을 이끌고, '외지인'을 앞세워 그 악을 실행하도록 하며,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그 '악'으로 평온한 마을은 피로 물들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수렁으로 빠져든다. 일광은 절대적인 악이다. 그가 악을 수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의 기원의 유진은 어린 시절 형을 죽였다는 이유로 그가 가진 심리적 문제를 단정짓고, 그를 악인으로 만들어 간다. 그를 악인으로 만드는 중심인물은 바로 어머니이다. 일광이 외지인을 조종하듯이, 이모는 어머니를 조종하여 유진의 '사이코패스'의 강력한 포식자 '프로데터'로 인정토록 하여 악인으로 만든다.

만약 일광이 없더라면 외지인은 순수한 악인으로 남았을 것이며, 이모가 없었더라면 유진도 순수한 악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순수한 악인이란 쉽게 말해 간염 보균자로 아무런 외적 요인이 없다면 단순히 균을 보유하는 사람일텐데. 그것을 활동하게 함으로써 숙주를 죽이고, 다른 숙주에게 까지 옮기는 감염균이 되는 이치라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 바로 우리가 그런 순수한 악인인 것이다. 사회적 규범으로 길러진 우리는 도덕으로 이세상을 살아가고, 도덕이라는 울타리에 악을 가두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게 이 사회를 사는 안전한 길이기에.

선은 또한 우리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준다. '그렇게 하면 안돼', '그러면 너에게 좋지않아', '사회의 낙인이 찍힐 수 있어.'. 무명이 종구에게 보내는 수많은 돌멩이는 바로 선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세지와 같다. 던진돌이 기껏 종구의 발밑에 미치는 미미한 정도로 우리는 그것이 선의 신호인지 잘 모르게 되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영화 블로그에 올라왔듯이 악은 '의심'으로 생겨나고, 힘을 얻는다. 사람을 악하게 하는 수 많은 이유중에서 '의심'보다 더 대단한 힘은 없을 것이다. '의심'은 뚜렷한 사실없이 인간의 상상력으로 더하고 더해 더욱 큰 악을 만들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한다. 종구의 무명에 대한 의심, 신부의 악마에 대한 의심, 마을사람들의 '외지인'에 대한 의심, 그리고 '개병'에 걸린 마을사람들의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의심이 바로 악을 거대하게 만들었다.  

종의 기원에서도 어머니의 유진의 병에 대한 의심, 형의 죽음에 대한 의심, 유진에 대한 의심이 바로 유진이 악이되는 데 크나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뭣이 중헌디

사랑하는 딸의 이 한마디는 아버지의 의심을 떨칠 수 있는 첫번째 메세지였으며, 무명의 '가지마'라는 만류는 두번째 메세지 였을 것이다. 바로 의심을 떨쳐 버리게 하는 '선의 메세지'. 딸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무명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나약한 인간이듯이 종구도 나약하여 모든 것을 잊고 '의심'으로 악을 맞이하게 되었다. 만약 '의심'이 된다면 오히려 더 냉정해야 할때가 아닐까? 그때 내가 나에게 던질 수 있는 한마디는 '뭣이 중헌디...' .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고가 필요하며, 주변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하다. 내가 순수한 악인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 내안의 악을 내가 사는 동안 온전히 악을로만 남게 할 수 있는 방법. 던져라, 질문하라. 나에게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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