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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Nov 20. 2016

27. 로봇소리

치유되지 못한 인정

미친 소리 같겠지만, 이 녀석이 제 딸을 찾아 줄 것 같습니다

2013년 어느거리 이쁜 여성의 사진이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실종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단지의 주인공은 자신의 딸이며, 전단지를 나주어주는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2003년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 거리의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누어줍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혹은 드라마에서 보듯이 거리의 사람들은 전단을 무심히 받아들었다. 길거리에 버리거나, 전단지를 나누어준 사람의 눈치를 보면 살며시 구겨 쓰레기 통으로 버리고 맙니다. 가끔은 청소를 하시는 분들이 눈치를 주기도 하시지요.  '드라마' 에서 말이에요. '음악'을 하고싶다며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의 생활이나 외모에서도 알듯이 매우 초췌하고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온 상태입니다. 누구보다 사랑한 딸인데, 세상 어느 "딸바보"아빠보다 더 큰 사랑이었는데, 그 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성장한 딸의 원하는 꿈을 외면하면서 벌써 사랑을 잃었을지 모릅니다. 그가 사랑을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현실"이라는 커다란 전쟁터를 모르는, 순수한 딸을 위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아빠들은 압니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거대한 정글인지. 정글에서 사는 법은 '생존의 법칙'입니다. 그 법칙을 어기면 정글에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으니깐요. 전염병에, 맹수에, 독을 품은 많은 동식물, 그리고 외지인을 싫어하는 원주민들.... 수많은 위험이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 정글을 단지 상상만으로 '꿈의 무대'로만 생각하는 딸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아빠는 딸에 대한 사랑을 '생존의 법칙'으로 바꾸어 딸에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그렇게 아빠와 딸의 싸움이 시작되고, 그리고 딸은 사라졌습니다.


소리와 만나다

그렇게 딸을 찾아헤매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소리'를 만나게 됩니다. '소리'는 미국의 위성에 탑재된 인공지능 로봇, 누군가의 목소리든 듣곤 전화번호도, 위치도 알아내는 아주 똑똑한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소리'도 누군가를 찾아 스스로 지구로 추락하였습니다. '소리'도 아빠 '해관'처럼 실수를 하고 말았거든요. 미국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공격한 지점에 민간인이 있었고, 거기서 그녀는 '도와달라'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철저한 어떤 실수도 하지않는 그런 인공지능 로봇의 실수는 스스로의 자각으로 지구로 추락하여 그녀를 찾으러 가려 합니다. 아빠 '해관'의 현실화된 사랑이 딸을 잃어버린것 처럼... 이둘은 책임감, 그리움, 사랑으로 그녀들을 찾아나섭니다.

영원히 포기하지 못할 아빠의 사랑

사실 해관은 알고 있습니다. 딸은 이세상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잃은 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2003년 2월18일 오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우울증을 앓던 50대 남성의 방화로 사망자 192명 등 340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의 '대구지화철화재참사'. 단순히 방화로 인한 것보다 지하철 공사 관계자들의 무책임하고 서툰 대처 능력, 비상대응기관 직원들의 허술한 위기 대응, 전동차의 내장재 불량 등 전반적인 안정망의 허점과 정책상의 오류가 참사를 발생시킨 ‘인재’였습니다. 모두 사고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 졌을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임을.  그것이 바로 '하인리히 법칙, 1 : 29 : 300 ' 입니다.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그날의 슬픔을. 기차와 배라는 운송수단은 우리에게 편리를 주는 동시에 아픔도 주었습니다.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마지막 그들의 간절한 문자와 음성메세지를. 그것이 남기도록 된 이 통신기계의 진화가 때로는 너무나 원망스럽도록 밉고도 싫습니다. 우리는 알고 싶습니다. 저 바다속에 가라앉은 진실을.

후회하지않겠다 자신하는 자 누구인가


바로 이 사고로 해관은 딸 "유주"를 잃었다. 그가 딸이 남긴 마지막 음성메세지를 듣지 않은 것은 그 메세지를 듣는 순간 현실이 되는 그런 두려움을 겪고싶지 않은 까닭이요. 그런 두려움에 맞서고자 10년동안 딸의 실종전단을 나누어주는지도, 어쩌면 그런 딸의 사고가 자신에게 비롯된 자책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를 위해 소녀를 찾기위해 지구에 불시착한 '소리' 는 소녀에게 가기전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해관'을 거쳐갈 의무가 있었으며 나를 '소녀'에게 데려다 줄 유일한 믿을수있는 인간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해관의 소리를 듣고 그를 찾아온 소리의 의도적인, 계획적인 만남이었을 것이다.

소리가 건네준 유주의 마지막 목소리. 마지막 메세지. 해관은 그동안 용기내어 듣지 못한 유주의 마지막 메세지 그리고 목소리를 듣는다. 소리를 통해서. 이제야 그 마지막 메세지로 모든걸 내려놓는 해관.

우리는 왜 가족끼리, 사랑하는 가족끼리 말하지 못하는가? 너무 사회에 집착하는 우리는 가족보다 회사동료나 상사가 우선이 되고 가족과의 시간보다 일과의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에게 사랑의 칭찬을 받기보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다. 서로가 사랑하는 방법의 문제인가? 내 개인의 욕망과 욕심이 문제인가? 정조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임박하고나서야 후회한다. "너와 나는 이찌하여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비와 자식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되었는가?"  어찌하여 우리는 이렇게 변했는가?


아직 많은 이시간 먼훗날 후회하지 않을 자신하는자 누구겠는가. 우리는 또 망각할것이다. 하지만 다시 기억하자. 늦기전에, 더 후회하기전에, 먼훗날 우리는 이시간으로 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기전에 사랑하자. 충분히 넘치고도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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