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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Feb 27. 2017

32. 문라이트

달빛은 흑인소년을 푸르게 물들인다

in the moonlighting Black boys look blue

바닷가에 선 작은 소년은 달빛의 반사를 받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그 소년의 검은 피부도 푸르게 빛나고 있다. 흑인이라는 도드라지게 빛나는 피부색으로 다른 누군가와 특별한 삶을 살아야 하는 샤이론. 그 뿐만이 아닌 흑인이 겪어야 하는 현실은 다른 백인, 황색인종보다 각별하게 혹독하다. 차별적인 인생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의 삶의 현실은 같은 피부색을 가진 또래로 부터의 따돌림과 괴롭힘. 멸시, 비웃음. 그런 어린 샤이론은 위축될 수 밖에 없고, 약에 취한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로부터도 외면받는다. 그러다 만난 후안은 쉽게 마음과 입을 열지않는 샤이론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를 아들처럼 보살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려 노력한다. 왠만한 흑인들의 인생이 도돌이표 처럼 반복되듯 후안도 비슷한 어린시절을 보냈기에... 지금의 샤이론이 현재의 자신과 같은 마약상이 될 것 같기에 더욱 그는 샤이론을 보듬어 안는다. '달빛 아래 흑인은 푸르게 보인다'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어린 샤이론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지만, 지금의 무지막지한 삶에서 샤이론은 공감할 수 없다.  그에게는 지금 오늘을 사는 것 마저도 벅차고 힘들다.



다른 피부색과 다른 삶들

흑인, 황색인, 백인... 지구 인류를 아주 간단하게 써머리 하고 싶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분류. 동양은 천체와 자연과학에 주목하고, 아프리카는 신과 자연에 주목할 때 유럽은 기초과학에 눈을 뜨면서 지구는 둥글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면 온세상을 모두 정복할 수 있겠다는 허황된 꿈으로 배를 띄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던 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을 신대륙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그곳에 원래 주민들인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철저히 이기적인 역사관을 가진 그들로 세상은 같은 종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게되고 그들이 단순히 과학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들에게 적대감을 갖지않는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무기가 그들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배에 실어 노예로 삼고, 철강, 목화, 사탕수수 등 자본주의 희생양으로 삼아 철저히 유린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세상에 정착한 그들의 삶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역사의 굴레에 얽혀들며 지금도 어려운 삶의 숙제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후안은 어린 샤이론을 보면서 너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보살피며 애정을 쏟는다.  어쩌면 후안도 어린 샤이론에게 해주는 지금 이말이, 지금 이 사랑이 헛된 것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본인의 인생도 그러하니 말이다.

하나도 변하지 않는 삶. 그런 인생을 여전히 고되게 살아가는 샤이론은 결국 소년원에 가게 되고, 오래전 자신을 돌보던 후안처럼 거리의 인생을 살게 된다.

때가 되면 스스로 뭐가 될지 정해야돼 그결정을 다른 사람이 할 순 없어

영화 '문라이트'는 마치 흑인의 인생 역경을 이겨내는 한 사람의 다큐와 같은 메세지를 던질 것 처럼 이야기 하지만 철저히 현실에 대한 혹독함 만을 느끼게 해준다. 주인공이 달빛아래 푸른 꿈을 실현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후안이 말한 것처럼 내가 스스로 무엇이 될지 정해서... 역경을 이겨나가는 인생 스토리를 전개 할 것처럼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주지만. 정작 현실은 이렇다.라는 그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흑인의 삶을 그대로 그려낸다.  어쩌면 감독이 그런 기대감을 주고, 결과적인 현실의 혹독함을 보여줄 수록 우리는 더욱 더 흑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그게 감독 배리 젠킨슨의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푸른 꿈을 가진 흑인 소년들의 혹독한 현실. 새삼 이 영화로 깨닫게 되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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