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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May 02. 2017

번뇌 [煩惱]

초단편소설 1.

어느날 아는분의 소개로 조그만 사찰에 가게 되었다     


그것은 한적한 시골마을 개울가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마당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뒤엉켜 장난인지 싸움인지 모르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까치밥인지 가지에 한두개 남은 감나무가 소품의 풍경처럼 다가왔다.  파란 하늘에 주황색, 아니 점점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때 등뒤에서 약간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먹으라고 남겨놨더니 올해는 이것 저것 풍년이라 안올려는가 보구먼.“

    

뒤를 돌아서자 머리가 반짝이는 스님이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님은 나를 보자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어설프게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숙였다.  

   

"올해는 참 풍성하게 감이 달렸지요. 열매가 달리면 따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요. 자연의 이치라... 나머지는 까치라는 놈 먹으라고 남겨뒀건만. 작년에 그리 아침마다 와서 울어대며 열심히 파먹더니 올해는 일찍 딴 감보다 더 잘익고 있소이다.“     


"아... 언젠가 와서 먹게 되겠지요.“     


"그렇겠죠.  그런데 저 감이 얼고, 말라서, 혹은 썩어서 떨어지기에 와야 할텐데... 아직 오지 않으니...“    

 

"스님도 별게 다 걱정이시네요.“     


"사람 사는게 그래요. 인생을 살라고 이세상에 내놓았더니.. 번뇌만 하고 있으니. 그 번뇌는 우리같은 중들이 하면 될 것을. 그러다 세상을 등지는 사람을 보니. 내가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오. 허 허 “   

  

스님은 멋적은 웃음소리를 냈다.     


"보살님도 많은 번뇌를 가지고 계시는 군요.“     


"네.. 스님. 관상도 볼 줄 아시는 가봐요?“     


마땅히 표현할 길이 없어 나는 '관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속으로 후회가 들었다.  

   

"하이고.. 별 말씀을. 파란 하늘에 저렇게 익고 있는 감처럼 보살님이 근심도 잘 보이네요. 이건 나만아니라 누구라도 알겠소. 허 허.“     


나는 부끄러운 거짓말이 들킨 것처럼 조금은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하이고 내가 보살님을 부끄럽게 했소. 미안하오. 허허. 보살님은 지금 보살님이 겪는 모든 일들이 나때문이라 생각하오?, 아님 남들때문이라 생각하오. 내가 만나 본 사람들은 모두 남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말하더라고요. 아마 보살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인생이란게 그래요. 나만 혼자 사는 것이 아닌, 같이 사는 삶으로 태어났으니, 지금 우리가 겪는 번뇌는 태어나면서 갖게된 업보이지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려고 혼자가 되신 이유도 그런게 아니겠소? 아마 부처님도 그러셨을 거요.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번뇌하게 하는 구나. 내가 떠나 홀로되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라고. 하지만 금방 깨달으셨을거요. 내가 세상을 떠나서 번뇌를 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번뇌를 벗어난 것이라고. 그러니 보살님도 잘 생각해 보시오. 과연 이 번뇌가 남이 만들어준것인지? 내가 만든 것인지?“     


"하오나 스님 그 사람들과 함께 있어 제가 이렇게 힘든건 맞는 것 같아요.“     


나도 억울하다는 듯이 스님을 향해 소리를 높혔다.     


"그렇죠 그사람들이 문제죠. 근데 그사람들은 아무 번뇌를 갖지 않고 살아갈 까요? 인생은 모두에게 번뇌를 줍니다.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는다 할 수 없죠. 저도 이렇게 한적하게 마음 편하다 하지만, 그 번뇌란 놈을 이겨낼 제주가 없더라구요. 한번은 제가 큰 스님께 여쭌적이 있죠. 이 번뇌란 놈에 대해서. 그랬더니 큰 스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여기 발구를 보거라. 여기에 물을 넣고 소금을 넣어보자. 맛이 어떨것같으냐. 나는 당연히 '짜지요. 스님'이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따라 나오라 그러시더라구요. 절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었죠. 연못앞에서 스님은 다시 한번 물었답니다. '그럼 이 연못에 아까 발우에 넣었던 소금을 넣으면 짜겠냐? 어떻겠냐? 고' 내가 아무말 못하고 놀란 얼굴을 하자. 큰 스님이 그러셨습니다. 너의 마음은 발우처럼 아주 작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지금 보살님 마음이 그러실거요 보살님 뿐만 아니라 보살님과 같은 분들도 같은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마음의 그릇이 작다 이야기 합니다. 마음은 우리 가슴속에 있는데 맞는지요? 보살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의 마음의 그릇은 마음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답니다. 아마 우리 보살님도 그런 마음의 상처로 머리가 복잡하고, 머리끝에서 열이 날거요 그리고 그 열을 식히려고 땀이 나겠죠. 우리의 머리는 저장공간이 정해져 있죠. 그 저장공간은 우리의 기억도 저장하고 지식도 저장하겠죠. 또 그 저장공간은 우리가 남들을 생각하는 이해와 배려의 공간으로도 쓰일꺼요 그 공간에 온통 나의 대한 생각만 있다면 남을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이 들어올 공간이 없을거요. 그러면 남들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요 우리는 인내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남들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조금씩 그 공간을 넓혀야 하는데 지금 사는 세상은 나밖에 모르니 쉬운일은 아니지요.“

    

"그 누구더라. 서양에 그 사람. 아! 쇼펜하우어. 그분이 그랬다 하더라고요. '동정심은 모든 도덕성이 근본이다' 도덕이라는 것이 본디 사람사는 이치에 따르는 것인데. 쉽게 이야기 한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지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다는 것은 그만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데. 그곳의 시작이 바로 동정심이라는 것이오. 지나가다 어렵고 불쌍한 사람을 한번이라도 쳐다 본 적이 있다면 그게 동정심이 아니겠오 그런 마음이 없다면 어찌 그에게 관심을 보이겠소 그러니 보살님도 그 머릿속 마음의 그릇을 키우시면 근심도 사라지고 번뇌도 잊게 될 것이오. 그러려면 그 사람들. 보살님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도 한번 헤아려 보시면 어떻겠소, 미천한 기술로 놔드리는 이 침 한방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소.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치유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소?“


난 아직도 내 마음속 번뇌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번뇌를 찾아 내 마음속 여행을 떠야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머나먼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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