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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May 11. 2017

사내연애(社內戀愛)

초단편소설 3.

계단을 내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바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구조였다.  


그래서 아랫층에서 누가 올라 오는지 살짝만 고개를 돌리면 알수 있었다. 터벅 터벅 내려가는 한계단 한계단에 누군가 '또각' '또각' 구두소리가 들렸다. 살짝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였다. 희정. 그녀는 아랫층에서 근무한다. 나는 이층 사무실에서 일한다. 우리 둘은 사내 커플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연애 사내커플.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친다. 그녀의 눈가에 눈웃음이 함박이다. 나는 크게 눈을 뜨고 입모양으로 '어디가' 라고 묻는다. 그녀가 하얗고 가느란 두번째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키며 두번 허공을 찌른다. 그녀도 입모양으로 소리없이 '어디가' 라며 묻는다. 나는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손가락을 아래로 쭈욱 뻗어 지하 창고를 가르킨다. 적당한 걸음으로 나는 아래의 그녀를 그녀는 위의 나를 눈빛으로 눈웃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마주치며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선다. 그리고 마침내 교차점으로 스치는 순간 서로 손을 살짝 스치며 그녀는 위를 감시하고 나는 아래를 감시하며 조심스럽게 집게로 집듯 서로의 손가락을 잡아본다. 그녀의 손이 차다. 그녀는 부드럽게 '따뜻해. 당신 손' 이라고 말한다. 나는 한번 살짝 그녀를 보며 '같이갈래? 창고?' 하며 말한다. 그녀는 대답없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찾아요. 급하게' 라고 말한다.  이층 사무실에서 찾는구나 그래서 가는구나 생각한다. 살며시 잡은 손가락을 놓으며 살짝 손을 흔들어 보이며 아쉬움의 인사를 한다. 그리고 조금 높은 톤으로'오늘 이뻐요.' 하자 계단 공간이 따라서 '이뻐요' 하며 저음으로 메아리 친다. 그녀는 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 '쉿, 쉿, 쉿.' 세번을 말한다. 나는 약간의 소리를 내며 웃어보인다. 동시에 아랫층 문이 열리자 후다닥 계단을 올라 사라지는 그녀. 귀엽고, 안타깝다.  사내연애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참아야 하는 심정. 표현도 어려운 불편함. 눈치. 새삼 한숨이 나온다.


그녀와 나의 사랑은 운전연습으로 시작되었다.

 

또래라 편하게 지내고, 같이 집에 바래다 주고, 가다 쉬면서 커피 한잔에 이야기도 나누던 정이 사랑이 되었다. 사내연애든 아니든 나는 불나방이 불에 달려들 듯 장미 꽃다발을 주고 고백을 했다. 그때는 이런 불편함과 아쉬움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원래 한가지에 몰입하고, 콩깍지가 씌어지듯 다른 아무런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게 사랑에 빠지는 진리이다.  사랑을 할때는 한가지 이유만 있으면 되고, 미워할때는 백가지 천가지 이유도 만들수 있다. 만약 내가 어떤 사랑을 다시 할때 여러가지 이유로 상대를 설득한다면 나는 얼마후 이별을 하지않을까 생각했다. 그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고,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수작'일 뿐이라고 그러니 그렇게 순수하지 못할 사랑이라면, 목적을 달성하면 금방 식어버릴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가지 이유밖에 떠오르지않는다. '그냥'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다시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다. '그냥'이라는 말은 빼고.그녀는 '그냥'이라고 하는 대답이 싫지는 않았나보다.  음. 나는 잠깐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때 생각나? 운전연습하러 어떤 대학캠퍼스에 갔을때."

 

"음. 거기 생각나."


"그날이 날이 좋아서 해도 참 좋았던것 같아 덥지 않고 따뜻했지.  그런데 내가 옆에서 운전을 가르쳐줄때 운전에 열중하는 당신을 살짝 돌려 보았는데, 그 해가 비쳐서 당신 얼굴에 반사되더라고.  묶은 긴머리에서 몇가닥 머리카락이 당신 뺨과 턱으로 내려왔는데, 햇살에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콧끝에 맺힌 땀방울도 '송, 송, 송.' 귀엽게 보이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사람 참 사랑스럽다. 근데 그때 당신볼에 살포시 보조개가 피더라. 나도 모르게 앞을 봤다. 내 생각을 당신이 읽힌것처럼 느껴져서 부끄럽다라고.  그리고 다시 봤을때 운전하느라 신경쓰는 당신의 미간도 보이고, 핑크빛이 감도는 입술도 보이고. 코와 턱과 머리카락과 당신 얼굴이 부분 부분 확대보이더라. 그러더니 자꾸 내심장이 뛰었어. '쿵, 쿵, 쿵.'  심장소리가, 내 심장소리가 내 귀에서만 '쿵, 쿵, 쿵.'  들려서 창문을 열어놓은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고, 라디오의 노랫소리도 들리지않고. 당신이 따라 부르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러더라. 그때 생각나? 내가 갑자기 당신 손을 잡아 놀래서 급브레이크 잡았던 그때."


"어 생각나. 그때가 그때였다. 나는 당신에게 갑작스런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면 테스트 한거라고 했지.  난 진짜줄알있는데."


"아니 나도 모르게 그랬다. 미안 거짓말해서.  내가 참지 못해 그랬다.  만약 그때 운전연습중이 아니라면. 그저 둘이 산책하는 길이라면. 내손이 아닌 입술이 당신의 볼이나 입술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에이 그럼."  그녀는 손을 살짝들어 따귀를 때리는 제스처를 취해본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때야 그거야 당신을 사랑하게 된게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후로 쭉 당신을 사랑하게 된게."


그녀는 고맙다며 나의 고백을 받아주었고 살며시 눈을 감아 서로의 시작을 알리는 첫키스를 나누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고 안아주었다. 그녀의 떨림이 멈추었다. 그게 우리의 1일이었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불편함을 가득 안은 커플이었다. 회사에서 단체 회식을 할때도, 야유회를 가서도, 선배들이 그녀에게 짖궂은 농담을 던져도, 우리가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말하자. 라고 했고, 그녀는 '참자. 지금도 좋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데로 해주어야지 했지만 쉬운일은 아니였다. 참는것이, 사랑을 참는다는게 말이 되냐고 속으로 되뇌였다.


이층창가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녀의 책상.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맘이 통했는지 그녀도 나를 올려다 본다. 그리고 문자 한통 '사랑해'. 가끔은 짜릿하게 비품창고에서의 1초 입맞춤. 회의시간 옆자리에서의 손가락 맞춤. 식사시간 식당에서의 반찬 놓아주기. 그렇게 사내커플의 비밀연애는 깊어만 간다.


하지만 사랑이 힘들어지면 조건이 생기고 이유가 생긴다고.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는 것이. 오지않을거라 생각한 그 순간이 우리에게도 왔으니. 우연히 가게된 공원에서 있을수 없는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 닥치게 된 후 우리는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회사안에서 날봐도 모른척 하거나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눈맞춤. 입맞춤. 손가락 맞춤은 먼 옛일 이었다. 회사안에서 우리는 직원사이도 아닌 남남이었다. 다그치는 나에게 그녀는 '퇴근후에 만나면된다.'고 말하였고. 나는 '신경쓰지말고 이전처럼 지내자.'고 했다. 그녀는 '안된다'고 했다. 사랑을 하자는데 안된다고, 우리의 허락된 사랑은 퇴근후였다. 하루 24시간중 잠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을 빼고 세시간정도. 그게 우리의 사랑의 시간이었다.  회사안에서는 추측이 난무하고, 우리는 손사레를 치며 부정했다. 아니라고. 사랑하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그저 운전연습을 할 뿐이라고. 그렇다고 말했다. 퇴근후에도 눈치를 보다, 서로 떨어져 돌아돌아 만나다 보니 세시간이 한시간으로 줄었다. 우리의 사랑은 하루에 한시간만 가능하다. 집안이 원수도 아닌데. 내가 소를 키우는 목동도 아니고 그녀가 베를 차는 선녀도 아닌데. 잠깐 목욕하러 내려왔다 금방 올라가는 선녀처럼. 우리의 사랑은 제한시간이 생겼다.  


찬바람이 불던 어느날 그녀는 여느때와 같이 '같이 걸어가자고, 집까지 바래다 달라.'고 했다. 나는 '오늘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그녀가 아무말없다.  화가났나보다. 그녀가 '왜'라고 물었다. 나는 '춥다'고 했다. 춥다고. 춥다는 이유가 생겼다.  이유가 생겼다. 그 이후로도 나는 자꾸 이유가 생겼다. 야근이라서. 출장이라서. 팀회식이라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그냥.  '그냥'이라고 이유를 댈때는 그녀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내 팔을 힘껏 잡아, 날카로운 그녀 손톱에 상처가나 피가 손까지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맞는 말이었다. 헤어지자니, 이유가 열개는 넘었다. 사랑할때는 하나였는데.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헤어질 열가지 이유를 만들고 있었던 걸까. 사랑을 시작할때 부드러웠는데 헤어질땐 서로 악에 받쳐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는 떠나야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같은 공간에서 그 상처를 바라봐야하는 아픔. 그게 더 오히려 힘든시간이었다. 그녀는 '이층'이라는 공간이 마치 지옥이라도 되듯이 올라오지 않으려 했고. 나는 '지하'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서늘하게 느껴졌다. 창고에 있다' 또각, 또각.' 구두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가 사라질때까지 가만히 창고벽에 기대어 기다렸고,  '터벅, 터벅.' 내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돌아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누군가 떠나야한다. 누군가 떠나야 한다면 그건 나일 것이다. 내가 떠나야한다.


그렇게 나는 떠났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배웅도 해주지않았다. 나는 사내커플 비밀연애를 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그 공간을 떠났다. 지금도 그곳을 찾아간다면 그 계단에서 조용한 웃음소리와 저음으로 울리는 '이뻐요.' 라는 그 소리가 들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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