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샤오롱샤와 꼬치를 부르는 계절인 여름에 빠질 수 없는 짝꿍은 맥주다. 하얼빈맥주(哈尔滨啤酒) ,쉬에화맥주(雪花啤酒), 옌징맥주(燕京啤酒) 등 많은 중국 맥주 브랜드가 있지만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중국 맥주는 역시 칭다오맥주(青岛啤酒,TSINGTAO)다. 칭다오맥주는 1903년 독일에서 장비와 원료(맥아, 홉, 효모)를 들여온 뒤 독일의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에 따라 맥주를 생산했다. 현재는 제조 시에 맥주 순수령에서 정하는 맥아, 홉, 효모, 물 외에도 쌀을 첨가해서 만들고 있다. 칭다오맥주는 1906년 뮌헨 국제 엑스포에서 첫 금메달을 따고 그 뒤로도 여러 번 각종 국제 맥주 엑스포에서 수상하며 세계로부터 그 맛을 인정받고 칭다오 지역의 대표 기업으로, 칭다오 맥주 박물관은 대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칭다오(青岛)와 독일, 칭다오와 맥주. 그 인연의 시작은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중국에서 2번째로 큰 반도인 북한 옆에 툭 튀어나온 랴오동 반도를 내주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러시아, 프랑스가 목소리를 모아 극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이 랴오동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은 열강들의 등쌀에 어쩔 수 없이 랴오동 반도를 포기했는데 이 틈을 타서 독일은 중국의 동쪽 항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칭다오에서 독일 선교사 두 명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를 핑계로 독일은 청나라 정부와 1898년 '자오아오 조계조약(胶澳租界条约)'을 체결하고 칭다오를 조계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독일이 처음부터 중국에 맥주 공장을 지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영국이 관할하던 홍콩을 통해 중국으로 맥주를 들여왔다. 하지만 유럽에서 홍콩까지, 홍콩에서 다시 내륙으로 이송하는데 걸리는 시간만큼 맥주의 맛은 떨어지고 공급은 불안정했다. 맥주의 원활한 공급과 최상의 맛을 위해, 1903년 독일인과 영국인이 함께 칭다오 덩저우루(登州路)에 오늘날 칭다오맥주의 전신인 '게르만 맥주 칭다오 주식회사(日尔曼啤酒公司青岛股份公司)'를 세웠다. 오늘날 덩저우루 56호로 불리는 이 곳은 칭다오맥주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
칭다오맥주는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으로 힘을 잃은 후 일본인에게로,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에는 국민당에게,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옮겨가고 난 뒤에는 중국의 품으로 주인을 여럿 바꿨지만 맥주의 맛은 변함이 없었다. 비밀은 1903년 칭다오 맥주 설립 당시 독일에서 가져온 효모에 있다. 효모는 곡물의 당을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바꿔주고 맥주의 맛과 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칭다오맥주는 1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독일에서 가져온 효모를 영하 80도의 초저온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배양하고,DNA분석을 거쳐 기준에 맞는 것만 선별해서 쓰고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효모를 2군데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는데 둘 중 한 군데는 칭다오맥주 임원들에게도 베일에 가려진 곳으로 CEO, 기술 연구주임, 그리고 비밀의 인물, 총 세 명의 열쇠가 한 곳에 모였을 때 비로소 비밀 냉동창고를 열 수 있다고 한다.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나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겪고, 중국의 개방과 성장을 지켜본 칭다오맥주는 이제 세계인의 즐거움을 위해 올려진 잔 아래 거품을 내뿜는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가운데 아직은 너무 요원한 2022년 월드컵. 그때가 되면 모두 다시 기쁨의 잔을 올릴 수 있기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