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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해간잽이 Oct 26. 2020

마윈도 롤 모델이 있을까


21세기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손꼽히는 마윈(马云)도, 아시아의 워런 버핏이라고 불리는 리카싱(李嘉誠)도 '따거!(형님)' 이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하는 인물이 있다. '파산을 모르는 남자', '설탕왕', '호텔왕' 등으로 불리는 말레이시아 국적의 화교(华侨) 궈허녠(郭鹤年,Robert Kuok)이다.


궈허녠(郭鹤年, Robert Kuok)    출처:百度


 궈허녠은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푸젠 출신의 아버지의 밑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쌀과 대두 장사를 하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가 아버지의 성공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가족회사인 궈 형제회사(Kuok Brothers Limited)를 설립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설탕 무역을 하면서부터다. 궈허녠은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100여 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된 국가로 세워지는 대서 기회를 포착했다. 그는 일찍이 말레이시아 공산당 무장단체와 영국 연방군 사이의 충돌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해 있었는데 이때 선물 시장, 특히 설탕 선물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후 말레이시아로 귀국해 궈 형제회사의 전 재산을 털어 설탕 무역과 제당 산업에 투자한다. 궈허녠의 제당 경영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지향했던 수입품을 대체할 자국 상품 생산, 공업 위주의 산업 육성이라는 목표와 맞아떨어졌고 1959년 정부의 승인을 받아 말레이시아 최초의 제당 공장을 지었다. 1968년에는 사탕수수 재배 사업에도 뛰어들어 사탕수수 재배, 수확, 가공, 판매에 이르는 제당 산업 전반을 아우르며 말레이시아 '설탕왕'의 자리에 올랐다. 오래 지나지 않아 궈 형제회사는 매년 150만 톤에 달하는 설탕을 생산하며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설탕 시장의 80%, 세계 설탕시장의 10%를 점유할 정도로 성장했다.



샹그릴라 호텔(Shangrila Hotel)  싱가포르, 방콕    출처:百度



70년대 들어서 궈허녠은 '설탕왕'에 이어 '호텔왕', '부동산왕'으로 변신했다. 1971년 싱가포르에 지은 샹그릴라 호텔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빠르게 미국, 캐나다, 중국 등의 유명 도시로 연이어 진출해 글로벌 체인 호텔로 확장해 나갔다. 동시에 홍콩 부동산 투자와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홍콩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궈허녠은 현재 홍콩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침사추이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고 샹그릴라 호텔과 오피스텔, 아파트를 지으며 부동산 사업에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상하이 징안 캐리센터(上海静安嘉里中心, JingAn Kerry Centre)    출처:百度


궈허녠의 비즈니스는 여러 분야와 산업을 넘나들며 확장해 현재는 해운 및 물류(Pacific Carrier Limited; Pax Ocean), 식량 및 식품(丰益国际有限公司, Wilmar International Limited;嘉里酒香,Kerry Wine), 호텔운영(香格里拉, Shangri-La), 부동산 개발 및 관리(Kerry Properties, 嘉里建设) 등을 영위하고 있다.


 궈허녠이 중국에서 존경받고 환영받는 이유는 그의 사업적 성공 외에도 항상 자신이 중국인임을 강조하고 중국인과의 민족적 유대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1973년 중국 상무부는 궈허녠을 찾아와 중국에 설탕과 돈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이 요청한 설탕 30만 톤은 설탕왕 궈허녠이 판단하기에 시장 가격을 20%나 뛰게 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게다가 당시 국제적으로 설탕 수확이 줄어든 탓에 설탕 가격은 오르는 추세였기 때문에 타국의 눈에 띄지 않게 대량을 설탕을 사들이기 위해서 파리와 스위스, 뉴욕 등을 돌아다니며 첩보 작전을 펼친 끝에 30만 톤의 설탕과 함께 500만 달러를 중국에 보냈다.



중국 국제무역 중심(中国国际贸易中心, China Trade World Center)     출처:百度


 후에도 중국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전주(錢主)가 되어 중국을 도왔다. 1980년대 들어 중국이 무역을 부흥시키려는 과정에서 해외 파트너를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궈허녠은 흔쾌히 자신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국의 일은 중국인이 알아서 할 수 있다. 외국이 중국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우리의 힘으로 해내자'라며 말이다. 그는 곧바로 5억 달러 상당의 돈을 현재 베이징의 가장 대표적인 비즈니스 지구인 중국 국제무역 중심(中国国际贸易中心)을 만드는데 투자했다.


金龙鱼     출처:百度


 궈허녠은 1923년생으로 올해 만 97세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기업 운영과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국민 식용유'로 불리는 브랜드 '진롱위(金龙鱼,300999)'를 중국 증시에 상장시키며 다시 한번 화인(华人) 궈허녠의 일생과 지난날의 성공대로가 회자되었다.


 "세상에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똑똑하면서 높은 집중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16시간을 일하면 매우 집중해서 빨리 일을 끝낸다. 

하지만 또 다른 똑똑한 사람은 8시간을 설렁설렁 일한다. 나와 경쟁이 될 리 없다."


 그가 성공의 비결로 꼽는 가벼운 말이 무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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