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입담으로 숨 돌릴 틈 없이 밀어 붙이는 유혹의 세계, 홈쇼핑. 만약 드라마가 끝난 뒤 돌리던 홈쇼핑 채널에 이재용이 나와 삼성 에어컨을 팔고 있다면? 그걸 믿냐? 하는데 중국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기업의 CEO가 중국의 홈쇼핑에(즈보,直播) 양 옆으로 쇼호스트들을 끼고 제품 팔이에 나섰다.
중국의 홈쇼핑(즈보)은 한국의 홈쇼핑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의 홈쇼핑은 TV채널을 통해 물건을 사는 형식이지만 중국의 홈쇼핑 격인 즈보(直播)는 어플을 통해 생방송을 시청하고 물건을 사는 형식이다. 한국과 같이 TV 채널에 기반을 둔 TV 구매(电视购物)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처럼 흥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스마트 폰이 보급되고 SNS 어플들이 어플 안에서 구현되는 생방송 채널을 탑재하면서 그 안에서 많은 SNS 스타(网红,왕홍)와 인기 상품들이 탄생했다.
립스틱 사랑을 전파하며 중국판 이사배로 떠오른 리자치(李佳琦), 이연복 못지않게 불과 칼을 다루며 쿡방을 선보이는 마라더즈(麻辣德子) 등 왕홍들이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브랜드들이 이들에게 러브콜을 넣었다. 그리고 홈쇼핑 종사자들이라면 제일 좋아할 그 말, '완판'을 이끌어 내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1분 만에 냄비 4만 개를 팔고, 방송 한 회에 립 틴트 15만 개를 팔고, 하루 만에 3.3억위안(한화 560억원)어치를 판다. 인생 한 방? 아니 즈보 한 방이다.
2019년 중국즈보시장규모는 4338억 위안에 이르고 시장 침투율은 50%가 넘는다.* 즉 온라인 매출의 절반은 즈보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즈보가 소비와 유통의 큰 축으로 성장하면서 왕홍들 뿐 아니라 가수, 배우들도 앞다투어 즈보에 뛰어들면서 판매 신기록을 경쟁적으로 경신하고 있다. 더욱이 올 초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로는 기업의 CEO가 즈보에 출연해서 기업 제품을 설명하고 판매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즈보구매소비자만족도온라인조사《直播电商购物消费者满意度在线调差报告》
중국 한방 화장품 린칭쉬엔(林清轩)의 CEO 쑨라이춘(孙来春)은 2시간 즈보에서 40만위엔(한화 6800만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린칭쉬엔의 오프라인 매장 4개의 한 달 매출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가전제품 제조사인 거리전자(格力电器)의 CEO동밍주(董明珠)는 즈보 3시간 만에 매출 7억 위안(한화 1200억원)을 올렸고 최대 동시접속자 300만 명을 기록했다. 알리바바(阿里巴巴) 그룹의 식품매장 허마시엔셩(盒马鲜生) CEO 호우이(侯毅)는 즈보에서 직접 샤오롱샤(小龙虾) 까는 모습을 선보이며 샤오롱샤 판매에 임했다.
기업가들이 즈보에 출연해 단순히 제품 판촉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 향후 비지니스 계획까지 전한다. 그리고 쌍방향이 가능한 즈보 형식을 빌려 실시간으로 공개적으로 올라오는 고객의 질문과 불만사항에 대한 대답과 개선할 부분에 대해서도 직접 답변한다. 거리전자 CEO 동밍주는 즈보에서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하더라도 오프라인 매장 감소와 감원을 통한 위기 타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허마시엔셩 CEO은 실시간으로 올라온 소비자의 배송 불만사항에 대해 물류 방식 개선을 통해 불편을 없애겠다고 답변했다.
기업가들이 직접 즈보에 나와 제품을 팔기 시작한 시기는 왕홍들의 인기가 품질불량 문제, 위생안전 문제, 허위 광고 문제로 금이 가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인기를 얻은 왕홍들이 판촉 하는 물건이 많아지고, 범주가 다양해지면서 제품 관련 문제들이 더 많이 불거졌고 왕홍들의 평판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즈보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이 '기업가의 즈보' 출연이다.
최근 '기업가 즈보' 바람은 중국인들에 중국 '기업'과 '브랜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던져준 셈이다.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중국산 제품의 진가는 '적당히 쓸만한 싼 맛'에 있다. 중국에게 브랜드는 없다. 상표라는 표식만 있을 뿐. 중국산 제품을 사면서 브랜드 값을 프리미엄으로 쳐주는 경우는 없다. 중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근래 기업가들의 즈보 출연은 중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각 기업의 CEO들은 직접 얼굴을 내밀고 나와 결제창까지 나를 이끌기 위해 친히 설득하는 모습을 통해 고객을 대하는 진정성, 제품에 대한 자신, 기업 총수로서의 책임감 등을 보여주었다. 즈보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는 윈윈을 한 셈이다. 기업은 매출과 이슈를 얻었고 소비자는 '신뢰'혹은 '신뢰하고픈 마음'을 얻었다.
중국의 여름 최대 쇼핑 행사인 618이 시작되었다. 행사가 끝난 뒤 매기는 브랜드별 매출 순위 결과에 따라 기업들과 협력업체들의 희비가 갈릴 것이다. 순위 명단에서 점점 위고 치고 올라오는 중국 브랜드들, 그 사이에서 잊혀져 가는 한국 브랜드들. 올림픽은 아니지만 순위 명단 위 한국 브랜드가 몇 개나 있나 세어보는 나는, 조용히 한국기업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