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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Jul 04. 2020

누나도 없고 여동생도 없고

여자 형제에 대한 로망

저희 집은 남자만 사형제입니다. 불행히도 어머니가 딸을 하나도 낳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젊어 아이를 낳던 시절이야 남아선호 사상이 지금보다 심할 때이니 남자아이만 넷을 낳고도 어머니는 칭찬을 많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더구나 저희 아버지가 2대 독자로 집안에 아들이 귀한 집이었으니, 아들을 넷이나 낳은 어머니는 집안에 큰일을 하신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저는 자라면서 여자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가만 보면 누나들은 연필도 예쁘게 깎아서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주고, 예쁜 스티커로 가방이랑 공책도 꾸며주었거든요. 또 형들과 달리 누나들은 말도 상냥하게 해 주고, 아기자기한 놀이로 심심치 않게 해주는 것도 같았습니다. 또 여동생들은 어떤지요. 자신을 의지하는 귀엽고 깜찍한 여동생과 손잡고 가게에 가면 얼마나 흐뭇하겠습니까? 여동생이 오빠 오빠 하며 깡총깡총 따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저는 입이 헤벌레 해졌습니다. 셋이나 있는 남동생들과는 허구한 날 싸우기 바쁘고 뻔히 아는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라 신비감이란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는 삭막한 형편에서 여자 형제들의 존재는 셋을 다 주고라도 바꾸고 싶을 만큼 부러웠습니다. 


여자 형제가 아쉬웠던 저는 연애 시절 아내에게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낳아주시지 않은 여동생을 제 스스로 만들려고 했었던 겁니다. 억울하게도 저는 이 소원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자기 남자 친구를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오빠라고 스스럼없이 불러주던데, 호불호가 분명한 저희 집 사람은 여자 친구의 신분을 망각한 채 저를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다섯 살이나 차이나 징그러운데 어찌 오빠라고 부를 수 있냐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서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면서 말입니다. 치사해서 삐진 저는 오빠라 불리기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요구를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자 형제가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가족 모임은 처가에서 더 쉬웠습니다. 1남 3녀에서 위로 셋인 아내의 자매들은 서로 연락도 자주 하고 뭔 일 있으면 득달 같이 모이기도 잘합니다. 휴가도 같이 가고 세 누나들은 제 처남인 막내 동생도 잘 챙깁니다. 장인, 장모께도 훨씬 자주 연락하고 필요한 물건도 자주 사다 드리고 하는 걸 보면 딸 가진 부모는 해외여행이고 아들 가진 부모는 국내 여행이라는 현대판 속담이 전혀 그른 게 아니었습니다. 남자만 넷이 있는 저희 본가야 명절, 어버이날 혹은 어머니 생신에나 기껏 모이고, 저희 형제들이 어머니한테 전화도 뜨문뜨문이라 차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저는 아직 여자 형제가 그립습니다. 만약 여동생이나 누나가 하나 있었다면, 코로나바이러스로 오도 가도 못하고 혼자 해외에 떨어져 살고 있는 저를 얼마나 위로해줬겠습니까? 오빠 혹은 남동생의 건강을 생각하여 식료품이나 영양제도 보내줬을 것 같습니다. 딸은 혼자 계신 어머니께도 아쉬울 때 하소연의 대상이 되거나 심심할 때 수다 떨 말동무가 될 수 있으니 노후도 덜 적적하실 수 있겠지요. 며느리가 아무리 잘해도, 자주 연락해도 결코 딸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어쩌겠습니까? 제게는 없는 여동생이나 누나, 어머니에게는 없는 딸을 갑자기 만들 수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없는 여자 형제 탓할게 아니고, 저라도 동생들에게는 형이 아니고 누나처럼 잘 챙겨줄 일이고, 어머니에게는 딸만큼 자주 연락하여 말동무해드리며 살아야지요. 한데 이런 상상만 해도 낯이 간지럽기는 하네요. 상남자는 못돼도 뻣뻣하게 세월을 쌓아온 제가 갑자기 '여자처럼'으로 바꿀 수 있으려나요?


2020년 7월 4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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