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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Aug 19. 2020

60세에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며

180도 바뀔 은퇴 생활   

지금 삶에 크게 불만은 없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가끔씩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제게 넘겨진 역할을 놓지 않고 따라가며, 얻어낸 것을 지키고자 아등바등하면서 소시민으로서 주어진 시간을 정신없이 채워나가고 있습니다만, 부족한 데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많이 갖지는 않았지만 불편할 만큼 부족하지도 않고, 쉽게 이루며 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남들 하는 만큼의 중간쯤은 성취하는, 지나치게 평범한 삶이라는 불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적이고 굴곡 없이 평탄하게 전개되는 삶에 안도하면서도 바닥을 구르며 웃었던 순간이, 하루를 가득 채우는 재미를 좇던 시절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달리 살았다면 아니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삶의 모습과는 다른 혹은 나은 결과를 가졌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릴 때 꿈꾸었던 직업, 재수라도 해서 갔어야 하는 대학과 학과, 부러워만 했던 친구나 지인들의 도전적인 취미, 가진 게 있든 없든 즐기는 주변인들의 생활 모습으로 갈아타기에는 지금은 많이 늦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 순간에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할 만큼 시간의 여유는 계속 줄어드는 대신, 이미 단단해진 삶의 기반에 대한 부착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다고 믿습니다. 몇 년이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직장에서 은퇴한 후의 삶을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체질이 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몸에 붙은 습성이 있으니 은퇴 후라고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당일보다 소풍을 기다리던 전날 밤, 그 전전날 밤이 더 설레었던 것처럼, 새로운 삶을 꿈꾸는 설렘이라도 지금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은퇴 후 서울을 벗어날 겁니다. 부실한 신체 능력과 집사람의 비협조로 귀농 귀촌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고향을 일찍 떠나셨고, 일 때문에 다른 도시에 잠깐 계실 때 태어나는 바람에 저는 돌아갈 고향도 없습니다. 대신 휴가나 친척 방문으로 스쳐가며 아쉬워했던 곳들로 길게는 몰라도 몇 년씩은 살아보고 싶은 고장들은 있습니다. 후보지들은 제가 태어나 딱 6개월을 살고 떠난 출생지 충북 제천, 한적하고 숲이 가까우면서도 관광객들로 심심하지는 않은 전남 담양, 일주일마다 하나씩 올라가야 할 오름이 있는 제주, 매일 밤바다를 볼 수 있는 강원도 속초, 도시도 시골도 아닌 향수의 고장인 충북의 옥천,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전북 군산, 음식은 맛없지만 여유가 넘치는 안동, 제가 좋아하는 꼬막과 굴이 있는 전남 고흥 등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순서를 정해 2년씩 살면서 동네 구석구석을 2년 동안 집사람 손을 잡고 누벼볼 작정입니다.

 

어디에서 살든 하루 4 ~ 6시간 정도 육체를 쓰는 아르바이트는 꼭 할 겁니다. 퇴직하고 얼마 못되어 돌아가시거나 환자가 된 선배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제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노동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과 의자에 깊이 묻힌 엉덩이 때문에 먹고살고 있지만, 나중에 직장을 떠나면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일하는 순간에는 잡념을 갖지 못하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집중할 수 있고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되 근무시간이 끝나는 순간부터 머리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되는 단순 육체노동으로 이루어진 아르바이트를 찾으렵니다.

 

제가 거쳐가는 동네를 위하여 뭔가 보람 있는 일도 찾아볼 겁니다. 거창한 자원봉사는 아니어도 동네가 제가 찾아간 이유에서 더 발전이 되도록 하는 일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지자체에서 벌이는 모든 온라인/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고 고장에 특화된 시민 단체가 있으면 가입해보려 합니다. 평소에는 마을을 위하여 등산로나 관광지의 쓰레기 줍기, 잘못된 간판이나 시민 불편사항을 찾아 신고해주기, 행정기관과 이웃 돕기를 위한 자원봉사에 참여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새로운 삶의 모습을 열심히 상상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살려고 할 때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살게 되면 늙어가시는 어머니를 자주 뵙기 어려울 것이고, 딸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손주를 봐줘야 되는데 멀리 떨어져 지방에 있으면 이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결정적으로는 제가 늘 자기 몸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나이인 70세까지만 깔끔하게 살고 가겠다고 주변에 입버릇처럼 떠벌려온 점입니다. 이렇게 2년씩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70세가 너무 금방 다가와 이 세상을 완전히 떠야 할 시점이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올 테니까요. 70세 마감을 좀 미뤄도 되지 않을까 변덕이 생기는 요즈음입니다.

 

2020년 8월 19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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