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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Aug 15. 2020

직장에서 남보다 뒤처지는 법

반대로 했어야 되는데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만은 저도 후회라면 남부럽지 않게 많이 하는 편입니다. 이것도 자랑이라고 떠벌리냐고 웃으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후회할 일을 후회하지 않고 잘못한 일의 잘못을 모르고 넘어가는 대신 과거를 되돌아보며 후회하고 반성하며 사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기왕 후회할 거면 찔끔찔끔 곱씹을 게 아니라 여한이 남지 않도록 마음 놓고 후회하여 이미 지나간 것은 속 시원하게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직장생활에 대한 후회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짤리지 않고 근근이, 길게 버텨나가고는 있으나 성공적이라고 평하기에는 상당히 모자란 저의 직장생활에 대한 후회가 이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변명과 함께입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직장생활은 자기계발서에서 혹은 선배들이 성공을 위한 길이라고 일러준 것과는 대부분 반대로 걸어온 여정이었습니다. 반대로 했으면 어쩌면 성공적인 직장생활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둔하게도 제가 이런 반대의 길을 걸은 것은 제 성격이 치밀하고 전략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조직생활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감상적인 데가 있었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제 실적을 챙기거나 어필하는 데 약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혹은 상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든 말든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항상 먼저 했습니다. 보이는 실적만이 실적이고, 인정받는 성과만이 성과라는 사실을 저도 알기는 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우선순위와 중요도 기준을 정할 때 저에게 유리한지는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필요한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저의 승진과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면서도 몸이 먼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일례로 제안서를 쓰면서는 받는 사람이 제대로 읽지 않거나 심지어 빠진 사실 자체도 모르는 항목이지만 제 기준에 반드시 필요한 파트이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디테일을 얻기 위하여 밤을 새우기까지 했습니다. 힘이 들고 고생이 됐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결과에 대해서 혼자 만족하고 끝이었지요.


건드리면 나만 손해이지만, 회사 전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제 명분에 맞는 일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든 적도 있었습니다. 모른 척 넘어간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건드리지 않고 놔두면 일을 팽개치는 것 같은 찜찜함이 저를 몰아세우는 것도 같습니다. 한 번은 상급자에 유리하고 하급자에는 박했던 해외법인 근무자의 월급 체계를 개혁하려다 파견 나가 있던 임원과 대판 싸우고 찍힌 일이 있습니다. 타 부서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주관부서의 갈팡질팡으로 일정관리가 엉망이 되어 모두들 야근과 휴일 근무를 밥 먹듯이 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뒤에서 투덜대는 다른 부서 사람들과는 달리 저는 전체 이메일로 그 무능을 질책했습니다. 30분 만에 그 부서 임원이 쫓아와서 죽일 듯이 저를 질책했을 때 속으로는 무지하게 떨면서도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자존심에 한 번 더 대들었다가 완전히 찍혀버렸습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회사 내에도 힘이 있는 부서와 힘이 없는 부서가 따로 있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약은 동기들은 신입시절부터 승진 잘 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힘이 있는 부서로 몰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분을 찾아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지만, 별로 빛도 나지 않고 지원도 부족하여 고생이 확실하게 보장된 험지 부서를 지원하는 미친 짓을 했습니다. 당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고 나중에 확실한 성과를 내면서 화려하게 전면에 등장하는 혼자만의 꿈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화려한 귀환 대신에 고군분투 혹은 일대십팔의 정신으로 간신히 버티는 실정입니다.


저는 윗사람과도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전도유망한 상사라면 그 줄을 타서 떡고물을 얻어먹을 방법이 있었을 텐데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코 그들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상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기다려면 자기 사람으로 끌어주거나 최소한 자기 말을 잘 들은 배려를 받을 기회도 있었는데, 저는 참고 기다리는 대신 수틀리면 '당신과는 같이 못한다'며 대놓고 제 머리에 스스로 미운 털을 박았습니다. 잘 나가는 사람과 친할 기회를 낯간지럽다는 이유만으로 차 버리기도 했습니다. 사내 사적 모임 금지는 잘 지켜지지 않는 회사의 지침이지만, 저는 사내 정치에 대한 혐오를 내세우며 사내의 모임이란 모임에는 하나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제가 용감한 게 아니라 무모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막상 일을 저지른 순간에는 속 시원하고 후련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잘 나가는 동기들과 후배들의 높은 위치가 부럽거든요. 그래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고 가지 않은 길은 실제보다 좋아 보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며 마음 편하게 남은 직장생활을 계속하렵니다. 다만, 직장생활 초반에 계신 분들은 저와는 반대로 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세상에는 저같이 유불리를 분간 못하는 사람보다는 자기계발서와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충실하게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고 그래야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라는 조직이 잘 돌아갈 테니까요.


2020년 8월 15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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