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상황의 윤리 문제
트롤리학(trolleyology)은 윤리학의 대표적인 사고 실험 혹은 쉬운 말로 상상 실험 중의 하나입니다. 개인과 집단, 의도와 선택에 관련된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안에 내재된 '윤리'와 '정의'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과 선택의 아이러니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여기서 트롤리는 허공에 달린 전선으로부터 폴을 통하여 전력을 공급받아 달리는 전차입니다. 다양한 변종의 실험 방식이 존재하는 데 대표적인 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운전사가 트롤리를 운행하다가 선로 위에서 인부 5명이 작업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불행히도 인부들은 트롤리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마침 피할 데도 없습니다. 따라서 운전사가 트롤리를 그대로 나아가게 하면 이 인부 5명은 다 죽습니다. 다행히 운전사는 트롤리의 선로를 변경할 기회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운전사가 선로를 변경하면 다른 선로에 있는 인부 1명이 죽게 됩니다. 운전사는 선로를 바꾸지 않고 5명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대안도 찾았습니다. 옆에 있는 조수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만일 운전사가 그 뚱뚱한 조수를 선로로 밀쳐 버리면, 아래로 떨어진 조수가 바퀴 앞에 끼어 트롤리를 급정거시킬 수 있게 됩니다. 과연 운전사는 다른 선로 위의 1명이나 조수 1명을 희생시킴으로써 인부 5명을 살려야 할까요? 두 가지 방식 중에 선택하여 4명을 더 살리는 게 사회정의라고 볼 수 있을까요? 혹은 윤리적으로 옳을까요?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두 경우 모두 동일하게 1명을 죽이고 5명을 살리는 게 윤리적으로 옳으냐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실제 행해진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양쪽 질문 사이에서 서로 다른 답을 선택합니다. 첫 번째 질문 즉 선로를 변경하여 1명을 희생시키고 5명을 살릴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변경하겠다'라고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대안 즉 뚱뚱한 조수를 선로로 밀어 5명을 살리는 대안에서는 '밀지 않겠다'라는 대답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즉 첫 번째 대안을 윤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 반면, 두 번째 대안은 의도적인 살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두 대안 모두 한 사람의 선택으로 1명은 살해되고, 5명은 생명을 건지는 것은 동일하니 말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실현'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에 따르면 두 대안 모두 윤리적으로, 또 사회정의 차원에서 선택하는 게 맞는 대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사고 실험이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바로 무인자동차 때문입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위 트롤리 사고 실험에서 벌어진 상황들과 유사한 상황들을 가정하고 어느 대안을 선택할지 무인자동차의 운행 장치를 사전에 프로그램해야 됩니다. 즉 어느 대안이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옳은지 사전에 자동차 회사에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들을 한 번 가정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아래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하고 자동차 회사들이 무인 자동차가 어떤 선택을 하도록 미리 정해놓아야 하는지 판단해보기로 합시다.
상황 1. 바닷가 도로
당신은 한적한 바닷가 도로를 무인자동차를 타고 달리고 있습니다. 운전을 무인자동차에게 맡기고 당신은 눈을 감고 모차르트의 음악에 심취해 있습니다. 무인자동차가 급한 곡선구간에서 커브를 도는 순간 무단횡단을 위하여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5명의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여기서 무인자동차가 선택할 수 있는 순간적인 대안을 2가지로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코스대로 직진함으로써 어린아이 5명을 죽이는 대안을 택하고 유일한 탑승객인 당신을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바다로 핸들을 급격히 꺾어 아이들을 구하는 대신 당신과 자동차 스스로를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운전자인 당신이 원하는 대안은 어느 것입니까? 자동차 회사는 어느 대안을 선택해야 할까요? 법원과 여론을 포함한 사회는 어느 대안을 지지해야 할까요?
상황 2. 테러리스트
이번에 당신은 시내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타고 있는 무인자동차에는 테러 방지 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마침 그 시각 근처에서 테러가 발생했고, 용의자가 차량을 이용해 도주하고 있습니다. 우연히도 그 용의자가 탄 차량이 바로 당신의 차 뒤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인자동차의 선택을 2가지로 단순화해봅니다. 첫 번째 대안은 그냥 당신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경우 무사히 도망친 테러범을 잡기 위해 국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크게 낭비되며 이 테러범은 또 다른 테러를 꾸밀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대안은 당신의 무인자동차가 그 테러 용의자가 탄 차 앞에 급정거하여 도주로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테러범은 뒤쫓아온 경찰들에게 곧 붙잡히고 당신은 사회의 안전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목덜미 부상의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될지도 모릅니다. 테러리스트 집단의 타깃이 되어 평생 마음 졸이며 숨어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은 똑같습니다. 운전자인 당신은 어느 대안을 원하십니까? 자동차 회사는 어느 대안을 선택해야 하고 법원과 여론을 포함한 사회는 어느 대안을 지지해야 할까요?
상황 3. 희생자 선택
다시 당신은 무인자동차를 타고 복잡한 시내를 달리고 있습니다. 멀리 횡단보도가 보여 무인자동차 스스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달려오던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당신의 차를 받아 버렸습니다. 아마도 음주운전인 것 같습니다. 마침 횡단보도에는 아주 늙으신, 아마도 90세가 넘으신 할머니 한 분이 건너고 있습니다. 또 당신의 오른쪽 앞에는 건강한 청년이 운전하는 중형차가 신호를 받고 서있습니다.
여기서의 두 가지 대안 중 첫 번째는 차가 밀리는 데로 그냥 직진하여 할머니를 받아버리는 것입니다. 연로한 할머니는 즉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대안은 핸들을 급하게 오른쪽으로 꺾어 청년의 차를 들이받는 것입니다. 이 경우 청년은 죽지 않겠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지도 모릅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청년을 다치게 하겠는가 아니면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장애를 입지 않도록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가 무인자동차에 놓인 것입니다.
무인자동차가 아니면 우리는 이런 선택을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황이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선택하면 되고, 선택의 책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 선택해 놓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자위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무인자동차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변명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실수할 수 없는 무인자동차는 사전에 프로그램되고 스스로 기계적으로 학습한 방식에 의해서만 대안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세 상황 모두에서 어느 대안이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답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또 저는 제가 이런 상황들에 처하게 되면 판단 기준을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두어야 할지 어느 쪽이 제게 유리한 지를 따져야 할지 조차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인자동차가 어떤 대안을 선택하게 할지도 선택이지만, 저는 무인자동차를 상용화시키는 게 옳은지부터 결정하는 게 선택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목숨에 대한 판단을,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업의 손에 맡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고 하는 것을 미리 정해놓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잔인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돈벌이가 최고의 목표인 집단의 손에...
2020년 8월 12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