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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Sep 02. 2020

테니스에서 배우는 인생

테니스 하수가 인생의 하수에게 

제가 르완다에 두 번이나 파견 나온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언제든지, 또 치고 싶은 만큼 테니스를 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테니스를 잘 친다는 뜻은 아닙니다. 평하자면 저는 하수에 해당하는 데 구력이 딸리는 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테니스에 입문하여 몇 년 배우다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바쁘기도 하고 집 근처에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여 중단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5년 전 르완다에 1차 부임했을 때 아파트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종합 스포츠 클럽을 발견한 덕에 테니스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살며 남는 주말 시간을 때워야 하기도 했고, 나이를 먹어가며 빈 틈을 보이기 시작한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운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예전에 해봤던 테니스에 자연스럽게 재입문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키갈리 내에는 제대로 된 골프장도 없고 다른 마땅한 운동시설이 없어서 테니스 외에 별 대안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테니스 클럽에는 한인들의 모임이 있었고 회원비와 레슨비도 부담스럽지 않아 주중 이른 아침에는 레슨을 받고 주말 오후에는 한인 모임에서 게임을 즐기는 게 르완다 생활의 가장 큰 낙이 됐습니다.


레슨으로 운동하고, 게임으로 즐기는 가운데 테니스에 대한 애정이 나날이 깊어갑니다. 직접 코트에서 뛰는 시간이 아닐 때는 자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동영상으로 테니스를 공부하고 이기는 전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 테니스가 우리 인생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테니스나 인생이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실전에 가면 엉뚱한 플레이를 하게 되고, 아등바등 해도 하수로서 이기는 게임보다 지는 게임이 더 많은 게 테니스와 인생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테니스에서 배우는 인생의 교훈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힘을 넣을 때가 있고 뺄 때가 있다

대부분의 운동에서 스윙이 그렇듯이 테니스에서도 어깨에 들어가는 힘은 좋지 않은 플레이로 연결됩니다. 과도하게 들어간 어깨의 힘은 스트로크에서 스핀이 적게 걸려 공을 상대 코트 베이스라인 밖으로 내보낸다던가, 스매싱에서 타이밍을 잘못 맞춰 공을 코트 밖으로 내보내던가 혹은 네트에 박게 만듭니다. 테니스 스윙에서는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폼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깨에서는 힘을 빼고, 강한 볼을 만들기 위하여 공을 맞추는 순간 손목에는 힘을 넣어야 합니다.


인생에서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몸과 마음에 힘을 계속 주고 긴장 속에 부자연스럽게 살면 주변 사람들도 불편하게 만들고 본인도 쉽게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쉴 때는 혹은 쉬운 일을 할 때는 힘을 빼고 몸을 릴랙스 하게 만들어야 길게 갈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온 힘을 짜내되 적당히 넘어가도 될 때는 힘들이지 않고 넘어가야 긴 인생의 다리를 삑사리 내지 않고 건강하게 건널 수 있습니다.


전진할 때가 있고 후퇴할 때가 있다

상대의 볼이 짧거나 길어지는 랠리를 발리로 끝내려면 네트 앞으로 과감히 전진해야 합니다. 스트로크로 점수를 따기는 확률이 떨어집니다. 스트로크 대결에서는 아주 정교하게 구석을 찌르거나 상대가 당해낼 수 없는 강력한 볼로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진했다가 상대의 탑스핀 로빙으로 한 방 먹는 수가 있습니다. 로빙이 넘어올 것 같으면 잽싸게 베이스라인 쪽으로 물러서야 합니다.


인생에서도 고민을 접고 과감하게 앞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완벽한 준비를 위하여 시간을 버리는 대신 실행하면서 융통성 있게 계획을 수정하는 애자일 방식의 업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미적대면서 의사결정 못하는 남편, 아버지보다는 '나를 따르라'하며 용감하게 앞장서는 가장이 더 멋있게 보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물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나 빠지는 게 전체적으로 유리할 때는 과감하게 뒷전으로 물러서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똑같이 노력하면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실력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게 요새 저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제 실력이 나날이 나아지고 있는 건 분명한데 게임에 나서면 승률은 여전히 바닥권이거든요. 제가 노력하는 만큼, 아니 일부 고수들은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유튜브와 코트에서 보내기 때문에 실력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테니스 선수로서 타고난 월등한 재질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상대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퍼붓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인생에서도 남들 잘 때 똑같이 자고 남들 쉴 때 똑같이 쉬면서 그들보다 더 잘 살 수는 없습니다. 물려받은 출발점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도 어려운 데, 노력에서마저 차이가 나면 그 간격을 좁힐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아예 남들과 다르고 우월한 접근법을 선택하든가, 같은 방식의 노력이라면 이기고자 하는 사람들보다 노력을 배가해야 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완벽한 준비보다는 실전이 중요하다

영구 거주자들보다는 파견자들이 많은 르완다 한인 테니스 모임이므로 신입회원을 꾸준히 유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같으면 실력이 안 되는 플레이어를 클럽에 가입시킬 일이 없겠지만, 여기 르완다에서는 게임 운영을 위하여 실력이 좀 모자라더라도 회원 한 명 한 명이 소중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레슨만 받고 주말 게임 모임에는 나오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실력을 더 키우고 나오겠다는 생각들인데, 이런 식으로는 영원히 게임에 못 나옵니다. 레슨에서 배우는 게 있고 실전에서 배우는 게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다들 비슷하게 노력하기 때문에 실력 차이는 줄지 않고, 레슨만 받으면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간격은 더 벌어지게 됩니다. 파트너에게 미안하더라도 받아줄 때 모임에 나오고, 끼워줄 때 못 이기는 체 게임에 참여하는 게 실력도 늘리고 테니스에 재미도 더 붙이는 지름길입니다.


인생에서도 계획만 세우고 준비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좀 모자란 듯해도 나서서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게 물러서서 궁리만 하는 것보다 시행착오 속에 배워가는 게 더 많습니다. 밖에서 보는 혹은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안에 들어와서 알게 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 것이 피상적인 지식이라면 뒤에 것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살아 있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복식 게임에서는 파트너를 믿고 함께 게임을 풀어가야 합니다. 자신이 후위에 있을 때는 믿고 전위 파트너가 포칭에 의한 발리로 점수를 따도록 서비스 방향을 정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합니다. 전위에 있을 때는 후위 파트너가 대응할 수 있도록 무리한 발리를 시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다 해결하려고 덤벼들면 게임도 잃고 파트너와 관계가 나빠집니다.


인생에서도 믿어야 할 사람들은 많고 협력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곤경에 처하면 숨기는 거 없이 다 털어놓고 배우자나 친구들의 도움에 의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시너지를 내기 위하여 동료들과 긴밀히 협업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테니스도 인생도 운칠기삼

테니스 게임에서는 운으로 따는 점수도 많습니다. 빗맞은 볼이 점수로 이어질 때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찾아오는 마음속 희열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 어이없는 실수나 볼이 네트에 맞고 상대 코트에 살짝 떨어지며 얻는 점수는 플레이에 더 큰 힘을 내게 만드는 불로소득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운은 항상 필요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귀인의 도움을 받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횡재를 얻어 어려운 일이 해결되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일확천금을 주는 로또 1등 같은 큰 횡재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자잘한 행운들은 삶에서 확실한 활력소 역할을 해주고도 남습니다. 만일 모든 게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면 예상외의 결과를 기대하기 힘든 빡빡한 인생이 되어 재미없을 것 같습니다. 운에 온통 기댈 수는 없지만, 운칠기삼이 안되면 운삼기칠이라도 되어야 저 같은 테니스의 하수, 인생의 하수에게도 할만한 게임, 살만한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2020년 9월 2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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