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어려운 집사람과 대화
집사람은 제가 '남의 편을 드는 남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집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의 편을 들려고 의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집사람이 제가 다른 사람의 편을 들었다고 우기는 그 상황이 누가 누구의 편을 들고 말고 하는 상황이었는지 자체에도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집사람은 제가 다른 사람의 편을 들었다고 섭섭하다는 데, 의도하지 않은 일로 남의 편을 드는 이상한 남편으로 오해받고 바가지 긁히는 제가 더 섭섭합니다.
최근에 제가 남의 편을 드는 걸로 오해받은 상황입니다.
집사람: A가 '심심하지 않게 가끔씩 해외를 돌아줘야 해요'라고 고상한 척을 하잖아. 웃기지 않아?
나: 그 여자 말투가 원래 그런가 보지.
집사람: 고상하지도 않은 여자가 고상한 척하는 거잖아. 근데 자기는 왜 그 여자 편을 들어?
나: 누가 누구 편을 들었다고 그래. 그 여자가 고상한 척하려고 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지.
집사람: 내가 멀쩡한 사람을 고상한 척하는 여자로 만든다는 거잖아. 그 여자 편을 들은 거 맞지?
나: 편드는 거 아니라니까. 그냥 고상한 척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기분 나빠할 필요 없다는 뜻이지.
집사람: 하여간 당신은 맨날 이런 식이야. 결혼하고 평생 내 편을 들은 적이 없어
이게 제가 집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 편을 들은 걸까요?
집사람이 친구와 싸운 일로도 남의 편을 드는 남편이 된 적도 있습니다.
집사람: B 걔는 이상해. 약속도 안 지키고, 지 힘들 때만 전화해.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야 뭐야.
나: 힘드니까 친구한테 전화했나 보지. 당신이 이해해 줘
집사람: 힘들 때 전화하는 친구면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전화해야지. 좋은 소식은 페이스 북 보고 알게 되잖아.
나: 힘든 일을 페이스북에 올릴 수는 없잖아
집사람: 몰라. 기분 나빠. 걔 하고는 이제 연락 안 할 거야.
나: 그렇다고 인연 끊으면 남는 친구도 하나도 없겠네
집사람: 뭐야! 또 내 편 안 드는 거야? 왜 힘들 때만 친구한테 연락하는 얌체 같은 얘 편을 드는 건데?
이것도 제가 집사람 대신 집사람이 원망하는 못된(?) 친구 편을 들은 걸까요?
여자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의 대상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결혼생활 초기에 격렬하게 싸운 대가로 얻어낸 소중한 교훈이니까요. 그래서 아내와의 대화에서는 지적질이나 가르치려는 태도는 무조건 지양하자는 주의입니다. 맞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반대 의견 혹은 제 입장에서는 중립적인 의견을 표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평화로운 가정생활에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몇 마디에 남의 편을 드는 이상한 남편이 되는 것은 좀 억울하지 않은가요?
2020년 9월 5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