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이유도 모르는 죽음들
지난 몇 년 간 저는 파견자로서 즐거운 르완다 생활을 영위해 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요즈음은 아예 회사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더더욱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르완다 생활이 마음 놓고 즐겁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 가끔씩 르완다가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죽음들을 마주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대할 때마다 섬뜩섬뜩 해지고 즐거운 마음이 조금은 움츠려 듭니다.
작년 여름에 제가 다니는 테니스 클럽의 볼보이 하나가 죽었습니다. 전해 들은 사인은 뇌에 기생충 감염이었습니다. 일차로 눈에 감염이 확인되어 두 눈을 모두 적출하였으나 기생충을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뇌에까지 감염이 되어 2주도 안되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더러운 물로 세수를 하다가 그리된 것 같으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수도 키갈리에서마저도 상하수도 시설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화되지 않은 더러운 지하수를 건더기만 가라앉힌 후 생활용수와 식수로 활용하기 때문에 위험한 병균이나 기생충의 감염 위험이 아주 높습니다. 당연히 식당에서 사용하는 물도 믿을 수 없습니다. 장이 약한 저는 외식 후에는 거의 100% 설사를 하거나 몇 달에 한 번은 아메바 감염이나 장염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는 제가 사는 아파트 관리실의 매니저 한 사람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젊은 친구였는데 배가 몹시 아프다고 쓰러지더니 바로 죽었다고 합니다. 병원에도 못 갔기 때문에 이 친구의 사인은 마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더러운 물 또는 음식에서 세균 감염이 생겼거나 복막염 아니면 급성 맹장염 같은 질병이 아니었을까 추축만 할 뿐입니다. 가끔씩 마주치던 직원이 저렇게 갑자기 죽어버려서 아주 놀랐습니다.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저희 회사에서도 위험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직원 하나가 늘 호흡이 불편하고 운동하기 어려워서 르완다에서 가장 큰 파이잘 국립 병원에 갔더니 '호흡 부족' 진단이 내려졌었다고 합니다. 며칠 입원했다 퇴원하면서 비타민과 운동을 처방받았으나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당초 '호흡 부족'이 어떻게 병명일 수 있는지 의아했었는데, 그 직원도 저와 비슷한 의심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선진국 격인 케냐 큰 병원에 갔더니, 진단 결과 폐에 구멍이 생긴 기흉임이 밝혀졌습니다. 큰돈을 들이기는 했으나 치료에는 성공하여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계속 르완다 내에서 비타민 치료나 받았으면, 이 친구 역시 죽었을 것입니다.
한국인들도 해마다 1명씩은 죽는데, 제가 아는 비극적인 죽음만 해도 여러 건입니다. 패혈병으로 케냐로 후송되다 죽은 대사관 참사 부인, 주말 내내 연락 두절에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아 찾아가 보니 이미 돌아가셨던 코이카 시니어 자문관과 독감인 줄 아고 방치했다 말라리아로 돌아가신 봉사 단원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저도 말라리아를 감기로 알고 병원에 가지 않으려 했었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경우였습니다.
의료 선교로 와계신 한국인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르완다 의료진들의 부실한 치료와 관리로 병원 내에서 억울하게 죽는 환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병원 시설이 열악한 데다 르완다 의사들이 실력은 모자라나 수술과 처방에 아주 용감하기 때문이라는데요. 심지어 복강경 수술 장비도 없어 어린 딸을 데리고 맹장 수술을 하러 케냐로 갔다 온 분도 있었습니다. 이제 코로나 사태로 케냐로 후송도 못 되는 형편이니 아프지 않도록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저 조심하는 게 위험한 나라 르완다에서 사는 현명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2020년 11월 4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