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묵묵 Nov 07. 2020

당당하게 자연스럽게 구걸하기

공짜와 동정이 일상화된 르완다 

르완다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2018년 기준 1인당 GDP 820달러로 전 세계 순위 159위, 아프리카 대륙의 54개국 중 34위입니다. 1962년에서야 벨기에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이기도 하고, 독립 후 다수인 후투족과 식민지 시대 지배층이었던 소수 투치족 사이의 내전과 그로 인한 1백만 이상이 희생당한 1994년 대학살의 처참한 역사 이후 경제발전의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천연자원도 빈약하고, 바다와 완벽하게 격리된 내륙국이라 물류비용도 많이 들고 주변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무역 자체에도 애로사항이 많아 미레에도 잘살기는 힘든 나라입니다. 온통 언덕으로 이루어진 국토는 대규모 농작물 재배에 불리하고 우기와 건기 사이의 편차가 큰 강우량은 농작물의 질과 수확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고용창출형 산업보다 금융이나 ICT, 관광 같은 자기네 수준에 어울리지 않지만 보기에 좋은 산업에 집중하고 있는 정부의 발전 방향도 경제발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원조 덕택에 해외에서 공부한 엘리트들이 정부의 눈을 너무 높여놨습니다.


돈이 없으나 하고 싶은 일은 많은 정부는 예산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자꾸 벌립니다. 계약금 줄 돈만 겨우 마련해서 일단 민간 사업자들을 참여시키는데 중도금과 잔금 지급에는 기약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몇 년씩 미루는 걸 보면 아예 빚을 갚을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돈을 늦게 줘서 미안하다는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정부 예산이 없으니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하면서 또 새로운 일을 꾸밉니다. 국가 예산의 거의 반 가량이 해외원조로 채워지는 상황이라 정부의 어려움도 이해는 가지만, 사업자들을 힘들게 하면서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 않은 공무원들을 보면 정나미가 뚝뚝 떨어집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외국인 고용주에게 수시로 손을 벌립니다. 집에 불이 났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돈을 요구합니다. 한국인들 특히 회사 파견 근로자들이 후한 편이기 때문에 돈을 쉽게 뜯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돈을 받으면 빈 말로도 갚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일상입니다. 심지어 적게 도와준 데 대해서 원망하기도 합니다. 동료 하나는 현지 청년에게 학비를 대줬다가 '돈이 많지 않은 당신이 도와주는 바람에 더 크게 지원받을 기회를 놓쳤다'는 황당한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테니스 코치에게 몇 번 금전을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딸을 출산했다고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데 아는 처지에 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경사에 초대하면야 당연히 부조하는 게 맞지만, 코치가 저를 초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행사의 참석 인원에 30명 제한이 걸려 있어서 저는 참석 대상에 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코로나 사태로 테니스장이 문을 닫아서 밥을 굶는다고 해서 또 돈을 줬습니다. 역시 언제 갚겠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원을 받았으면 공짜 레슨을 한 두 번 해주거나 아니면 레슨비를 깎아줄 텐데 빈말이라도 그런 제안은 절대로 없습니다. 돈 많은 외국인이니 일방적으로 돈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휴가로 인원이 모자라 현지인을 한인들의 주말 테니스 게임에 끼워준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었고 시간당 2천 프랑씩 주기로 했으니 임시 고용한 셈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딱 2주 나오더니 자기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알려 왔습니다. 초대도 하지 못하는 결혼식을 알리는 것이니 그냥 돈을 달라는 소립니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지나가다 만나면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 할 정도의 관계밖에 안되는데도 그런 요구를 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지난주에는 일 때문에 정부 청사를 방문했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주차장에서 경비가 차에서 내리는 저를 불러 세우더니 이빨이 아픈데 돈이 없어서 치과에 못 가고 있다면서 제 턱 밑에 빈 손을 내밀었습니다.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자기 직장에서도 그렇게 과감하게 구걸을 한 것입니다. 하도 황당해서 대꾸도 못하고 고개만 흔들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가난한고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게 생각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고마워 하기는커녕 마치 맡겨놓은 돈을 되찾는 것처럼 요구하는 사람들들을 보면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집니다. 그래도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지갑을 열기는 하지만...  르완다가 언제 이 원조와 동정의 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니 벗어나기는 할지 걱정됩니다.


2020년 11월 7일

묵묵

작가의 이전글 위험한 르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