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아로 Dec 13. 2023

유산 수술 3일 후 상견례
6일 후 예비 시어머니 생신

첫번 째 임신의 계류유산 판정을 받은 나는 수요일 오전에 소파수술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건네준 약을 미리 먹고 한 시간 정도 대기하고 있다가 수술실로 향했다. 남자친구는 복도에서 대기해야했고 나 혼자 수술실을 들어갔다. 서늘한 수술대 위 불이 반짝 들어오고 산소호흡기 같이 생긴 마스크를 씌운 후 숫자를 열까지 세라며 간호사 선생님께서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뱃속의 아이를 떠내보내야만 하는 나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그러다가 의식을 잃었고, 누군가 날 깨우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수술이 끝나 있었다. 입원실 같은 공간으로 옮겨져 유착방지제 링겔을 맞으며 누워 있는데 훗배앓이처럼 배가 아파왔다. 링겔을 다 맞은 후에 퇴실하여 남자친구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고, 종일 누워 있다가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으며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나이 39살에 자연 임신으로 찾아와 준, 간절히 원하던 아가를 이렇게 떠나보내야만 하다니... 이 모든 것이 예비 시댁때문인 거 같아 원망의 마음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독실한 크리스천인 것 처럼 교회를 다니시면서, 손주가 생겼다는 소식에 기뻐하시기는 커녕 대뜸 십계명을 어려서 실망이라고 하시더니 결혼 준비 과정 내내 사사건건 토를 달아 결국 이 사단이 나게 한 거 같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남자친구도 간절히 원하던 아가를 잃을 슬픔에 밥도 챙겨 먹지 못한 채 나까지 돌보느라 나날이 야위어 갔다. 


수술 다음 날, 예비 시어머니와 첫째 올케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더니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퇴근 후 일찍 집으로 오라고 했단다. 그치만 남자친구는 업무 마감 때문에 회사에서 밤샘 작업을 하느라 목요일에 귀가하지 못하고 금요일이 되어서야 집으로 갔다. 어떤 이야기를 하시려고 하기에,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일찍 찍오라고 한 걸까... 대화를 나눈 후에 알려달라고, 나는 남자친구에게 부탁을 하곤 저녁 내내 초조한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자정이 될 때까지 연락이 오지 않아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남자친구는 죽을 거 같은 느낌의 목소리로 간신히 전화를 받는 거 같았다.


"누나랑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한 거야?"

"......"

"왜... 무슨 일 있어?"

"아기가 죽었으니까... 이제 가장 아니지 않냐고... 그치만 이 집에서 난 장남이니까 다시 생활비 달라셔..."

"......뭐? 나 소파 수술 어제 했는데...? 손주가 심장이 뛰지 않아서 죽은 건데... 돈 이야기를 하셨다고?"

"그렇게 말씀한 건 아니고 돌려 말하긴 했지만 그런 내용이야."


대화 내용을 나는 광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 같지도 않게 느껴졌다. 전화를 하면서 남자친구에게 언성을 높이며 너무 한거 아니냐고 소리쳤고,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방에서 주무시다가 뛰쳐 나오셨다. 미친 듯이 울부 짖으며 엄마에게 이 결혼을 하는 게 맞냐며...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가족이 되냐며 통곡을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바꿔 받으시며 남자친구에게 물으셨다.


"대체 얼마를 달라고 하시는 건데?"

"......"


광분하며 통곡하고 있는 나를 진정 시키기 위해 엄마는 급히 전화를 끊으셨고, 그렇게 나와 엄마는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둘이 부둥켜 껴 안고 울었다.


남자친구가 모은 돈이 없는 거 알고 결혼하겠다고 한 건 나지만, 그건 앞으로 내가 같이 아껴 살면서 열심히 돈 벌면 되리가 생각한 것이었고, 그동안 십년 넘게 한 달 200만원 넘는 생활비를 대느라 본인 돈 한 푼 제대로 모으지 못한 아들, 빈털털이로 장가보내며 미안해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손주가 유산되고 수술하자마자 돈타령이라니...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열심히 교회다니는 게 사람인 척 코스프레 하는 것인가...?


다음 날, 상견례 자리에서 나는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따지고 싶었지만

사람 하나 보고 하기로 한 결혼이니 일단은 참으라며, 상견례 자리에서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나의 부모님이 신신당부 하셨다. 일단 결혼하고 그 뒤는 니가 알아서 하라고...

양가 부모님과 당사자만 만나 차 한잔 하며 이야기 나누는데, 우리 부모님은 애써 대화를 이끌어가셨고

상대 부모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런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낸 적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애들만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가식의 끝판이라 생각되며 소름이 돋았다.

여튼 내가 그 자리에서 썩은 표정이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기에 계획대로 결혼은 진행하게 되었고, 

주례는 예비시아버지가 갑자기 자기 교회 목사님에게 맡기겠다고 하여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주말이 지나고 그 다음 주 화요일은 예비 시어머니 생신이었다. 내가 수술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냥 넘기자니 마음이 불편하여 공강 시간에 외출 결제를 받아 에스티로더 갈색병 에센스를 사왔고, 그날 저녁 퇴근하고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며 예비 시댁인 광명까지 갔다.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저녁도 챙겨 먹지 못하고 도착한 시간이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그렇게 잠깐 인사만 드리고 선물만 전달해드리고 밥 한끼 얻어먹지 못한 채 나와 우리끼리 식당에 가서 저녁을 사 먹었다. 


서러웠다. 

서러웠지만 꾹 참았다.

여튼 남자 친구의 어머니니까... 챙겨드리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치만 내 몸은 온전하지 못했다. 마음까지 만신창이었다.





이전 06화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