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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로 Jul 14. 2023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했다

유산의 아픔, 계류 유산

정신없이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예비 시댁과의 마찰이 있었다. 임신 호로몬 때문인건지 이렇게 결혼하는 것이 서러워 나는 매일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고, 준비 일정도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엉망인 상태로 임신 극초기를 보내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일주일에 1번만 병원에 가도 되는 걸, 나는 일주일에 2번씩 다니며 아가가 괜찮은지 확인했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시댁에서 토를 달아 한 마디 하면 남자친구는 내게 바로 전화를 하여 시댁의 요구 사항들을 전달하였고, 그러면 나는 흥분 상태가 되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거짓말과 과장 보태지 않고 매일매일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동안 가족들의 생활비를 대느라 십년 넘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흔 살에 모은 돈, 천만원도 되지 않는 아들이 부모님과 가족들의 도움 없이 결혼 준비를 한다는데... 왜 그러시는 건지. 그런데도 아들은 부모님의 요구사항을 들어드려야 맘 편해하는 효자 중의 효자이니... 집도, 차도 내가 해결하며 하는 이 결혼... 진행하면서 임신 극초기 상태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 매일매일 눈물을 쏟아낼 수 밖에...


"그냥 부모님 요구 들어드리면 안될까?"


라면서 내심 나의 양보를 바라는 남자친구까지 짜증이 났다. 우리는 연애하는 동안 크게 싸우지 않고 지낸 편이었는데(사실 연애 중에도 남자친구의 가족 문제로 다툰 적이 있긴 하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하루가 멀다하게 싸우게 되었다. 나는 체력적으로나(매일 새벽에 출근하여 야근까지 해야하는 시기였다.)정신적으로나 방전되어 버렸다. 이러한 이유들로 남자친구와 크게 한바탕 싸워 아기가 괜찮을까... 불안한 마음에 정기검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았다. 담당 의사 선생님 비번인 날이라 다른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진료를 받았다. 


"자궁 안에 아가가 착상되어 있는 상태고 여기 반짝 하는 게 심장뛰는 건데... 아까 처음 반짝 불 들어온 거 보이셨죠? 지금은 잘 안비취는데... 이상하네요... 아직 시기적으로 안보일 수도 있는 시기니까 다음 정기검진 쯤에는 확실하게 심장 뛰는 거 보실 수 있으실 거에요."


그렇게 곧 아가의 심장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기대를 하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되돌아 갔다. 임신 6주차 접어드는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주말 우리는 또 비슷한 이유로 한바탕 다투었고 나는 주말 내내 또다시 눈물로 지냈다. 아가가 걱정되어 울면 안된다고 생각하였지만 내 의지로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다음 주 화요일은 정기검진이 있는 날. 학교 공강 시간에 잠시 외출 신청을 하여 진료를 받으러 갔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냉담하게 


"심장이 뛰지 않아요. 계류유산 같아요. 소파수술을 해야할 거 같아요. 수술 언제 하실래요?"


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 날, 들었던 이야기를 추측형 문장으로 표현한 것은... 생각치도 못한 충격적인 말에 그 때부터 머리가 멍해져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경황이 없었다. 


"심장이 뛰지 않아요? 지난 주 금요일에 심장 뛰었던 것 같았는데요...? 영상 촬영 들어갈 때 불이 반짝 했었어요..."

"심장이 안 뛰어요... 오늘(화)이나 내일(수)에 수술 날 잡는 게 어때요? 빨리 하는 게 나을 거에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가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정기검진에서 뜻 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지라... 당장 수술할 수는 없었다. 다시 들어가서 일을 해야했으므로... 그래서 내일로 날을 잡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왔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심장이 뛰지 않는대...우리 아가 심장이 안 뛴대... 유산이래... 내일 수술해야 한대..."


거의 이성의 끈을 놓고 울부짖는 듯한 울음을 터트리며 통화를 했다. 내가 진작에 말했는데... 몸이 좋지 않은 거 같으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 말아달라고...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결국에는...  사실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여유 없는 나의 마인드 컨트롤 부족 때문일테고, 어쩌면 처음부터 너무 약한 아기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유산판정을 받는 그 날까지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두지 않은, 아니 너무나 쥐어짜내는 고통속에서 울부짖게 만들던 예비 시댁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솟구쳤다. 남자친구에게 가장 먼저 알린 후 나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손주 소식에 너무나 기뻐했던 우리 엄마... 매일 같이 나에게 전화해서 몸 조심하고 좋은 생각만 하며 아가 생각부터 하라며, 세포분열하는 아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셨던 엄마에게 유산 소식을 전했다.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시어 정적이 흘렀다. 엄마 역시 나 만큼이나 마음아파하시는 게 느껴졌다. 


"니 몸 챙기고, 다시 애기 가지면 되니까... 너무 많이 울지 마렴..."


손주를 잃어 마음 아프신 와중에도 딸부터 걱정하고 챙기시는 엄마... 이런 것이 친정 엄마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을 쓰고 잠시 병원에 진료 받으러 간 것이라 금방 학교로 돌아가야 했고 바로 수업을 들어가야 했다. 마음 아픈 일이 있어도 내 상황과 감정에 솔직할 수 없는 것. 가끔 생각했다. 이런 것이 '어른'이구나. 포커페이스를 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어른이구나... 라고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급한 일을 마치곤 연차를 쓰기 위해 학년부장 선생님과 교무부장 선생님 그리고 교감 선생님을 찾아뵈어 상황을 말씀드렸다. 안타까움을 함께 해주시며 얼른 연차 올리라며 아낌없이 격려해주셨다. 최대한 덤덤하게 나의 상황을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설명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지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반 학생들에게는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만 간단히 설명하고 부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라주길 부탁하며 이래저래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했다. 


귀농하여 경기도에 살고 계신 엄마는 유산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서울 집으로 와주셨다. 집으로 와서 엄마의 얼굴을 보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엄마... 심장이 뛰지 않는대... 아가가... 심장이 뛰지 않는대..."


"괜찮아... 너무 마음 아프지만... 잘 보내주고... 건강 챙겨 결혼식 준비하고 다시 아기 가지면 되니까... 낙담하고만 있지마..."


하며 토닥여주셨다. 엄마와 나는 부둥켜 안고 서로 울었다. 남자친구도 회사 조퇴를 하고 나에게 달려와주었다. 눈가가 퉁퉁 부은 게 영락없이 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첫 아이를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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