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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로 Jun 14. 2023

결혼 벼락치기

47일 동안의 결혼 준비

처음부터 임신을 먼저 계획하고 결혼을 추진하고자 했던 우리. 

우리의 소망대로 임신이 되었으니 결혼 준비를 하기 위해 우선 양가에 소식을 알려야 했다. 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우리 부모님께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만(나는 사전에 미리 언지를 해두었기 때문에 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없었다.) 남자친구 집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시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 소식을 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게다가 부모님이 여든이 넘으신 보수적인 경향이 있으신 분들이라니...(나이와 보수 및 진보 경향이 항상 비례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연세가 많으신데 손주가 생겼다고 하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남자친구가 혼전 임신에 대한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우리들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른 냉담한 반응이셨단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시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십계명을 어겨 실망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결혼하지 전에 아기를 가졌다며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오갔던 모양이다. 나는 그 자리에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대화를 나눈 그 자리가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손주 소식과 더불어 결혼하겠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하튼 아기가 생겼다는데 결혼을 반대할 수는 없는 일일테니,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는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둘 다 결혼 준비는 처음이고, 가까운 지인의 결혼 과정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 것들 투성이...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막막했다. 얼핏 들을 바에 의하면 웨딩플래너를 끼고 결혼준비를 하면 당사자들은 크게 할 게 없다고 한 거 같아서... 무작정 웨딩박람회를 찾아갔다. 웨딩박람회도 여러군데서 하긴 했는데, 마침 코엑스에서 하는 행사가 있어서 방문 신청을 하고 찾아 갔다. 생각보다 행사장은 크지 않았고 입구 근처에 스튜디오 앨범 샘플들을 쭈욱 나열해 놓아 볼 수 있게 한 후, 좋아하는 스타일에 도장을 찍어오게 한 후 안 쪽에 앉아 있는 플래너들과 상담할 수 있게 해 놓은 시스템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당일 계약하면 할인 혜택 등이 있다는 유혹거리로 (물론 우리와는 다르게 사전에 충분히 이런저런 서칭을 하며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놨다면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다.) 우리의 마음을 헤집었다. 결혼 날도 아직 잡지 못한 상태로 박람회장을 찾은 우리는 얼른 진행해야한다는 급한 마음에 그렇게 당일 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잘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으로 나름 만족을 했다. 드라마나 지인들이 결혼식을 보면 식장에서 드레스 입고 주례 들은 후 밥 먹고 끝. 그 정도만 준비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남들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잡고 준비한다는 것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더라...


1. 상견례 하기(상견례를 하면서 이별하는 커플들도 제법 있다.)

2. 결혼 날 잡기(웨딩홀 예약, 스튜디오 촬영 및 드레스, 남자 양복, 메이크업 등의 모든 일정이 결혼 날짜에 의해 조정이 되기 때문에 결혼 날짜가 가장 먼저 정해져야 한다.

3. 웨딩홀 예약(단독홀인지 아닌지, 홀 컨디션, 주차장, 위치 및 교통편, 엘리베이터 편의성, 음식, 버진로드, 조명, 꽃 장식 등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의 우선순위를 정해 가격을 맞추어 결정하면 된다. 각각 웨딩홀에 대한 정보를 정리한 뒤 연락해서 방문 날짜를 정하고 직접 찾아다니면서 계약 조건들을 이야기 해보아야 한다. 나의 경우 주말 마다 하루 4~5군데씩 2주 정도를 돌아다녔다. 공개한 가격과 상황에 따라 다른 가격을 제시하기도 하니 상담을 잘 해보아야 한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비수기라 성수기보다 저렴하고, 토요일보다는 일요일이 저렴하고 완전 점심 시간 보다는 오후 시간대가 저렴한 편이다. 각자의 가치관을 잘 정립하고 예비 부부가 잘 타협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4. 스튜디오 촬영(급하면 생략 가능, 2시간 짜리 하프 촬영 가능, 야간 촬영 등 다양한 옵션이 있다. 인물 중심 혹은 소품이 화려한 곳 등 스튜디오마다 특징이 다르니 비교해보고 가격 고려해서 결정하고 일정 잡아 진행하면 된다.)

5. 드레스 샵 투어 및 예약 (플래너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말해 드레스 샵 몇 군데를 추천받고 각각의 샵과 일정을 잡아 샵 투어를 한다. 이 때 드레스를 입어보는 데에 드는 비용을 별도 현금으로 준비. 나의 경우 시간이 없어 샵 하나를 지정해 그곳에서만 드레스를 보고 결정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다. 드레스를 충분히 보며 자신의 스타일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입던 옷들과는 전혀 달라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많이 보고 입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드레스샵 투어를 마치고 결정한 뒤 메이크업과 마찬가지로 스튜디오 촬영과 본식 일정에 맞게 드레스를 셀렉하면 된다. 최대한 셀프 풀 메이크업을 하고 방문하여 촬영 및 본식의 느낌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6.  메이크업 예약 (스튜디오 촬영과 본식 일정에 맞추어 메이크업 날짜를 조정해 예약하면 된다. 메이크업 하는 샵의 특징들도 각기 다르니 비교해서 결정하면 된다.)

7. 신랑 예복 맞추기 혹은 대여 (예복 원단 및 가공 과정 등에 의해 가격이 많이 달라진다. 결혼 후 살이 쪄 체형이 달라지면 입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장이 별로 없는 사람의 경우 이참에 제대로 된 정장 하나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구두까지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8. 예물 맞추기 및 예단 (정말 case by case 이기 때문에 간소하게 하거나 과감히 생략 가능)

9. 청첩장 및 모바일 청첩장 만들기(스튜디오 사진이 나와야 작업할 수 있다. 일반 청첩장의 경우 사진이 들어가지 않으면 먼저 작업 가능. 청첩장 샘플 신청을 하여 예비 부부가 같이 결정하고 문구를 정하여 만들면 된다. 스튜디오 수정본 사진이 나오면 청첩장 만드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모바일 청첩장으로 만들면 된다. 나의 경우 청첩장 샘플 받아 만들고 받는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추가금을 내는 경우 빨리 인쇄하여 받을 수 있다. 참! 청첩장은 주변에 직접 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해야한다. 스튜디오 수정본 사진이 나와야하고, 본식 한두달 전에는 나와야 주변에 전달할 수 있으니 참고해서 진행해야할 듯.)

10. 양가 어머님 한복 맞춤 혹은 대여, 메이크업 예약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 할 것들이 많아 각자 해결하자고 했다. 메이크업의 경우, 당사자들이 바쁘고 준비할 게 너무 많아 형제 또는 자매들이 챙기는 경우도 많다고 들어 그렇게 각자 진행하자고 내가 제안했다. 

11. 주례 섭외 및 웨딩홀과 예식 순서 정하고 확인


일단 생각나는 것들만 적은 게 이정도... 중간에 생략된 것들도 제법 많다. 이를 테면, 남자 예복을 맞추는 경우에도 계약하러 방문하는 것 외 중간에 수정 및 확인 작업을 1~2번 정도 해야한다. 예식이 많이 남은 경우 그 사이에 체형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자 웨딩드레스 셀렉도 스튜디오 촬영 셀렉이 있고, 본식 드레스 셀렉이 있어서 따로 방문 날짜를 정해 2번 정도 가야한다. 예물 맞추는 것도 나의 여려번 왔다 갔다 해야할 일들이 있었고 주례 섭외의 경우도 처음 인사드리러 가고 예식 순서 맞춰 이야기 나눠야 해서 다시 한 번 찾아 뵈러 갔었다. 이렇게 챙길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많은데... 출근도 해야하고, 시험 문제도 출제해야하고, 수행평가도 해야하고, 병원도 다녀야 했다.(임신 초기에는 병원을 비교적 자주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결혼 준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들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예비 시댁과의 전쟁.


1. 날짜 잡는 데 전쟁

예비 시댁에서 결혼하는 과정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고 하여 우리 집에서도 아무 도움 안받기로 했다. 우리끼리 최대한 간소화하여 준비하기로 해 이왕이면 가성비 좋게 준비하기로 남자친구와 결정. 웨딩홀 정보를 정리하고 방문한 가운데 가격대비 깔끔하고 예쁜 곳을 추진하고자 선약금까지 걸고 왔다. 일요일 오후 시간대만 있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괜찮았다. 매력적인 가격에 아기자기한 홀이었다. 그런데 예비 시댁에서 '일요일은 신성한 예배만 드리는 날이라 안된다.', '멀리서 오는 친척들도 있으니 오후 시간대는 안된다.'등의 이야기를 하시며 반대하셨다. 물론 토요일 예식 진행이 가능한 곳도 있었지만 우리가 결정한 곳보다 천만원~이천만원 정도의 예산이 더 들어가야 했다. 상황을 설명드려도 무조건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 차액을 지원해주시겠다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반대라니. 답답해 미칠 거 같았다. 임식 극 초기에 웨딩홀을 주말마다 하루 4~5군데씩 거의 총 10군데를 넘게 돌아다녀 배가 뭉치고 땡겼는데... 홀을 알아봐주는 것도 아니고, 예산을 보태주는 것도 아니면서 상황을 설명드려도 무조건 안되다고만 하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자친구도 남자친구 나름 상황 설명을 여러차례하면서 설득하고자 했으나 소통불가. 그 집에서 전쟁을 치르는 거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웨딩홀들을 다시 리스트 업하여 하나씩 연락해 방문 날짜를 잡고 다시 주말에 10군데 이상을 투어하며 상담했다. 리스트업 한 웨딩홀들이 엑셀파일 A4용지로 몇장을 채웠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나의 컨디션을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임신 3~4주차였을 무렵이다.


2. 양가 메이크업 관련 전쟁

부모님 메이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양가 아버지는 어찌할 것인지 여쭤보기로 했다. 우리 아버지는 안하시겠다고 했고, 남자친구 아버지는 받겠다고 하셨단다. 80대 중반이 넘으신 분이 남자가 메이크업 받는 걸 어찌 아실 것이며 하겠다고 하신 것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챙길 것도 많고 양가가 원하는 바가 조금 다르니 각자 진행하자고 내가 제안했고 남자친구가 그걸 자기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난리가 났단다. 우리집 너네집 다르다는 것에 대해 니집 내집 구분해 말했다며 서운하다고 우셨다나... 게다가 자식 셋 중 하나 장가보내는 데 그런다고 서럽다고 하셨다고 들었다. 우리집도 날 첨으로 시집보내는 건데 아무 말씀 없이 너네 하고 싶은대로 하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알아서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리고 니 집 내집은 당연히 달라 구분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세상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게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라고 생각한다. 이건 추후에 다시 언급하게 될 예정이다. 여튼 그걸로 예비 시어머니가 눈물 바람을 일으켰는지 남자친구가 나한테 다시 연락하여 그냥 해드리자고 난리다. 누나가 둘이나 있는데, 장가가는 동생 위해 누나들이 엄마 메이크업 정도는 챙길 수 있지. 결혼하는데 10원도 보태주지 않으면서 자꾸 원하고 해달라는 게 많은지... 짜증이 나서 눈물이 났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임신으로 인한 호로몬 때문에 더 그랬던 걸 수도 있겠다 싶다.


3. 예물과 예단

사실 나는 남자친구에게 결혼 반지도 따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학원 다닐 때 아는 언니가 예물 3종 셋트라고 다이아 셋트, 진주 셋트, 순금 셋트를 받는 거라고 알려줬지만 그런거 난 굳이 필요 없었고, 친구들 보니 예비 시어머니한테 명품 백 하나씩은 받던데 그것도 필요 없었다. 반지는 커플링으로 껴서 하면 된다고 말하며 최대한 간소화하기로 나와 남자친구가 입을 모았었다. 짧은 시간에 챙겨야 할 게 많았고 임신 초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비 시어머니가 반지라도 해주고 싶다고 했단다. 필요 없어 괜찮다고 했는데도 굳이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약간의 예단비를 보냈다. 검색해보니 예단비는 남자가 집하는 금액의 1/10정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나오더라. 사실 이런 것에 정답이 어디있겠는가...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하는 거지... 우리의 경우 남자 집에서 그리고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일단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와 살기로 했다. 그럼 예단비는 얼마나 보내야 하는 거지? 여튼 그리고 나서 예물은 내가 직접 고르겠다고 했다. 내 마음에 들어야 끼고 다닐 거 같아서... 단순히 그래서 한 말이었다. 기껏 해주셨는데 맘에 들지 않아 반지를 끼지 않으면 무용지물. 필요 없는 물건이 되어버릴 거 같아서 그랬다. 그런데... 반지를 골라 맞추고 결재까지 했는데도 예물비를 보내주시지 않는 것이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까지도!!!  막판까지 기분 나쁘고 불안한 부분이었다.


4. 유산 다음 날, 생활비 타령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할 예정


47일 동안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주 놀이 하듯, 누구나 그렇게 결혼준비를 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아니었다. 6월은 기말고사 준비를 해야하는 시기이기에 평소 학교 업무도 많은 편인데...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며 결혼벼락치기를 하는 것이, 그리고 예비 시댁과 매일 같이 전쟁을 치르는 것이, 유산 수술하고도 충분히 쉬지 못한 채 또 시댁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것이 너무 힘들었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며 매일 매일 눈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조금의 과장 없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모든 과정을 버틴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내 아이를 원했고 가정을 꾸리고 싶은 것.


처음 우리를 찾아와 준 아가는 우리 곁은 떠나게 되었지만 

아가로 인해 일단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6개월에서 1년 동안 준비하는 결혼을 우리는 47일 만에 한 것이다.

학생 때 벼락치기 공부를 하여 시험 준비를 해 본 적은 있었지만

결혼까지 이렇게 벼락치기로 준비해서 할 줄은 몰랐다.

여튼 해냈다. 

2023년 7월 9일 토요일 드디어 '결혼식'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날을 우리 둘은 잊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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