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다난다사한 학교 생활
마흔에 임신이라 노산 반열에 들어 선 나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겠으나
실제 생활에서 지킬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 반까지 출근.
야근수당 없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하는 바쁜 일상(법적으로는 4시 퇴근이지만 실제로는 7시 무렵 퇴근 하는 날이 많았고, 시험기간이나 생활기록부 작성 등으로 바쁜 시기에는 밤 9시까지도 종종 일한다.)
하루 4시간 이상 서서 수업하기.
그래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사 중에는 유산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사실 뭐 교사 뿐이겠는가...) 서서 일하는 게 임산부에게 좋지 않다고들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온 천사같은 아기를 이번에는 꼭 잘 지켜서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생각하지 못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졌다.
1. 가장 큰 사건은 학급 학생의 자해 사건.
학기 초에는 학급 친구들과 부모님에 대한 불만으로 부적응의 증상들이 소소하게 나타났던 학생이 2학기에 들어선지 얼마 채 되지 않아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인지를 하기 전에 학급 친구들이 그 학생의 손목 상처를 보고는 담임인 나에게 몰래 찾아와 귀띔을 해주어 알게 되었다. 조금의 시간을 두고 해당 학생을 불러 근황에 대한 상담을 하는 척하며 내가 우연히 손목의 상처를 발견한 것처럼 이야기를 꺼내며 그 학생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사비로 예쁜 일기장을 한 권 사 주며 마음이 힘들 때마다 여기에 적어오면 내가 펜팔처럼 간단하게나마 답글을 적어주며 피드백을 하기로 했다.
학생은 하루에도 몇 개씩의 글들을 써오며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었다. 학교 행사며 수행평가며 업무가 산더미 같은 날에도 일단 미루어 두고(야근으로) 일기장에 피드백 글을 적어주었다. 그런데도 학생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되었다. 툭하며 아프다며 보건실과 조퇴를 일삼았고 그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학부모님과 통화, 그리고 해당 과목 선생님께 양해를 먼저 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보건실에 가기 위해 옆자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담당 선생님께 눈도 마주치지 않은 상태에서 무표정과 아주 건방진 말투로 "저 보건실 가야할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선생님께 태도가 그게 뭐냐며, 뭐가 그리 불만인지 한 시간 동안 쓰라고 종이 한 장을 건네 주곤 나는 수업을 하러 갔다. 수업을 하고 내려왔더니 학생은 없고 내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올려져 있었는데 유서 느낌의 글을 쓰곤 아이가 사라진 것이었다. 허허... 교실과 보건실, 도서관 등 학생이 갈 만한 곳을 찾아 다녀봤는데 학생은 없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거 같아서 학급 다음 교시 담당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 드리고 학급 아이들을 동원하여 아이를 찾았다. 운동장, 강당, 매점, 체육관... 선생님들 주차장, 특별실 등 흩어져 두 시간 넘게 학교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찾았는데도 아이는 없었다. 배가 뭉쳐오기 시작했다. 임신 극초기(4주차~5주차) 무렵에 생긴 일이었다. 결국 생활지도부에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여 학교 정문 CCTV를 돌려보았다. 학생이... 학교 밖으로 나가버렸더라... 학부모에게 연락하여 사실을 알려드리고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였다. 결국 두 시간 채 되지 않아 학생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고 경찰이 학부모에게 인도하는 것으로 그 날의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만 나의 컨디션은 최악이 되어버렸다. 다시 유산이 될까 무서웠다. 내가 해야할 일을 했지만 내 아이의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아 마음이 굉장히 힘든 날이었다.
그 후로도 그 학생의 자해는 몇 차례 반복적으로 있었다... 이후 스토리는 생략하겠다. (다행히 학생은 아직까지 학교를 잘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며 지내고 있다.)
2. 코로나와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노출
유산과 직접적인 연관성 있는 일들은 아니지만 감기에 걸려도 약을 복용할 수 없는 임산부였기 때문에 늘 불안 요소가 되었던 코로나와 독감. 학교는 집단 생활이기 때문에 한 명이 걸리면 다수에게 전염될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스크도 제대로 안 한 아이들이 늘어갔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담임인 나는 학생을 조퇴시켜 해당 학생 책상 및 의자를 소독제로 닦아 정리하였다. 혹은 하교 후 확진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교과서를 챙겨 학부모님에게 건네주곤 했다.(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게. 학교에서는 오프 수업을 하며 확진자가 있는 경우 노트북을 설치해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때문에 전염에 대한 위험성이 조금 더 높을 수 밖에 없다.
3. 생활기록부 관련, 소송을 걸겠다고?
21년도 학급회장이 학기 초에는 의욕에 넘쳐 열심히 하려고 했었는데 학기 말이 되어가며 많이 흐트러졌다. 솔선수범해야할 녀석이 교탁 있는 곳에 머리를 안에 넣고 잔다든가, 온라인 수업 때 눈뜨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하여 수업 듣는 척 하고 침대에서 자고 있다든가(담당 교과 선생님이 여러 번 호명하는 데도 답이 없어 들켰다.) 밤새 미드를 보고 등교하곤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다든가, 교복 대신 본인이 원하는 사복 차림으로 등교를 한다든가(심한 건 아니고 후드티 정도) 하는 모습을 보여 학급 친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고등학교의 생활기록부가 수시 전형제도의 입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나 본래 학교의 생활을 기록하여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한 학생을 대학에서 뽑겠다는 취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학기 초에 누누히 학생들에게 설명했었다.
"생활기록부는 여러분의 생활을 기록하는 거고, 나는 여러분의 생활을 관찰한 대로 기록 할 예정입니다. 열심히 생활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생활기록부를 모두 좋게만 써 주는 것은 역차별 아닌가요? 좋지 않은 부분은 완곡하게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아예 안 쓰지 않을 예정이니 1년 동안 학교 생활 열심히 해 봅시다. 여러분이 열심히 한 만큼 그에 상응하도록 열심히 기록하겠습니다."
라고 3월부터 강조하며 설명해주었다. 생활기록부를 무기삼아 선생님인 나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게 아니다. 사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한 학생을 그런 메시지를 협박이라 느끼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여튼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한 무렵 고민이 많았다. 미드를 보느라 밤을 새고 학교에 와서 하루종일 수업시간에 졸던 아이를... 그렇다고 그대로 적을 수는 없고... 그래서 일본어, 영어 등 제2 외국어에 흥미가 많다고 썼다. 당시 다양한 영화를 보며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길 해주던 중 일본 영화도 있던 거 같아서 그렇게 적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자기는 일본어를 못하는데 생활기록부에 그렇게 기재되어 있다며 허위사실이라고 삭제 요청을 하는 게 아닌가. 생활기록부는 그렇게 함부로 삭제를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실제로 본인이 정말 그렇다면 1년 전 당시 내가 기재한 내용을 확인시켜주던 그 시기에 사실과 다르다고 이야기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그 때 난 충분히 내용을 수정해 줄 용의가 있었는데...
그랬더니 이번에는 본인이 당시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학교에 오지 못하여 기재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당시 나는 그렇게 결석한 아이들에게 PDF파일 혹은 출력물을 사진 찍어서 내용 확인 후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말하라고까지 했는데... 끝까지 보인은 확인을 못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 학생 말고도 그 시기에 결석한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내가 보내주었던 PDF자료가 있었기에 그로 간접적으로나마 사실 확인이 되었다. 그 외 다른 학생들의 증언까지 받았다. 기재 내용들을 내가 학생들에게 확인시켜주었다는...
그랬더니 학부모가 교장실에 전화를 해서 사실 여부와 다르다며 변호하 선임하여 소송하겠다고 협박 전화를 했다고 한다.
너무 화가 났다. 차라리 정말 있는 그대로 쓸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어 왔다. 완곡하게 좋게 표현해주려고 한 걸 악용해서 협박을...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컴플레인을 무서워하고, 평교사는 학교장 외 부장들보다도 힘이 없다. 위에서 그냥 수정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하자는 결정을 내리면 따라야 한다. 잘못한 것이 없어 억울했고 소송을 운운하며 협박까지 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학급 학생들 및 당시 교과 선생님들의 증언을 취합하여 맞소송을 진행하고 싶었으나... 뱃 속의 아이가 걱정되었다.
태교는 고사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 건강하게 태어나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하루하루 직장 생활을 버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