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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 느낌을 그 때도 느꼈지.

변화에 따라가기 벅찬, 막막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by 그로잉업


나이가 들어도 느끼는 감정이 다르진 않다.

그 감정을 느끼는 상황이 다를 뿐.


AI 모르면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오늘도 AI 툴 무료강의가 있길래 신청해서 열심히 쫒아가며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멍~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듯 흔적은 틀림없이 남았는데, 실속은 크게 없다.

이러기를 반복하고 있는 요즘...

이런 느낌을 똑같이 받았던 적이 있었다.


90년대 초 촌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은 그때의 나에겐 너무나 두렵고 막막한 곳이었고,

수업마다 강의실 찾아 이 건물 저 건물 넓은 캠퍼스에서 헤매는 것부터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어려운 몇 과목이 있었는데, 그 중 최강이 전산학 개론이었다.

1학년 1학기 교양필수과목으로 전산학 개론 수업이 있었고,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전산동 강의실에 커다란 컴퓨터을 앞에 두고 우두커니 앉아 교수님의 설명을 듣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국민학교 5학년때 어머니회 모금으로 학교에 컴퓨터가 처음 들어왔었는데, 난생 처음 컴퓨터가 이런 거구나 구경만 했지 그걸로 뭘 했는지 기억이 없다.

아무튼 그 뒤로 컴퓨터를 만져볼 일은 1도 없었기에 전산학 개론 시간에 앞에 놓인 커다란 모니터는 나를 숨막히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리 이해를 못 했을까 싶기도 한데, 당시의 나에겐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첫 수업시간 때의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입학하고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했던 서울친구에게 살포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돼? 나 좀 가르쳐 줘."

그 친구는 대학 입학 전 컴퓨터 학원을 잠시 다녔던 모양이었다.

앞에서 교수님이 계속 진도를 나가고 있는 상황이니 친구도 나에게 살뜰히 신경을 써 줄 형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난 친구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자, 여기 이 버튼 눌렀다 껐다 하면서 부팅 연습하고 있어."

아직도 그 때 그 느낌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 굉장히 서운하면서 동시에 막막했다.

부팅하고 그 다음이 도대체가 모르겠는데...

나만 남겨두고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뛰어가 따라잡고 싶은데, 뛰지도 못하는 기분.


그렇게 한 학기내내 전산학 개론시간은 나에겐 너무 힘겨웠다.

하면 되는 공부가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공부라는 느낌이랄까.

너무 답답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해 여름방학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고, MS DOS반에 들어가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난다. 참 어려웠고, 그럼에도 나를 옥죄던 막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쁘고, 해방감을 느꼈다.


모든 과제를 200자 원고지나 리포트지에 손으로 써서 내던 시절이었으니 전산학 개론 과목을 수강한 뒤로는 나를 힘들게 할만한 컴퓨터 관련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 졸업이 가까워 올 무렵 인터넷이 등장했고, 난 방학동안 두꺼운, 참 어려운 컴퓨터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시 전산동을 들락거렸었다.


최소한의 컴퓨터 활용만으로도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AI 등장 후로 커다란 숙제가 떨어진 느낌이다.

사용자의 편의에 맞게 빠르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AI 툴들이 생겨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씩 익혀 가야 할 것이다.

그래, 돌아보니 그때도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배워서 잘 살아오지 않았든가.

그렇게 또 이 시대에 적응을 해 보련다. 너무 조바심만 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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