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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에게 이로운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 1

by 그로잉업


이 질문의 위력은 대단하다.

뭔가 선택을 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기준이 되어주는 질문이다.


이것이 과연 나에게 이로운가.

그렇다면 '이롭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맛있는 음식이 눈 앞에 놓여 있다고 하자.

그것을 먹었을 때 느끼는 달콤함, 기분좋은 배부름을 당장의 이로움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든, 건강을 위해서든 체중감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잠시의 식욕을 눌러야 하는 괴로움은 있겠지만 먹지 않는 것이 이로운 행동일 것이다.


그럼 먹을까 말까. 먹는 것이 이로울까, 먹지 않는 것이 이로울까.

그건 내가 원하는 가치가 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식욕보다는 날씬한 몸매, 건강이 더 큰 가치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어떤 순간에는 그때의 식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나중의 폭식을 막기 위해 좋은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에게 이로운가라는 질문은 매순간 살아있는 질문이지, 해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답은 없지만, 보다 좋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슨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스스로의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할 때는 매순간 분명 자신이 선택을 하고도 선택의 주체라고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뒤늦게 후회를 하기도 한다.


주위의 바램, 남들이 쫓는 가치,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이 아닌,

진짜 내가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나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바로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평소 자신의 내면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안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을 더 나은 가치로 여기는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겠다.


기준이 없는 삶은 혼란스럽다.

그 기준은 남을 해치지 않고, 나를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좌충우돌 겪다보면 좀더 궁극적으로 이로운 기준에 도달할 것이므로.


이것이 나에게 이로운가.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가.

난 갈등의 순간에 이 질문을 떠올린다.

그리고 선택한다.

결과는 어떨지 몰라도 그 답은 그순간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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