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 리와인드
제1차 세계대전,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가 ‘메켄지’ 중령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중심 플롯이자 로그 라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쩌면 매우 단순하면서도 전쟁영화에서 많이 다뤄졌던 혹은 다뤄질 수 있을법한 소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샘 멘데스 감독은 할아버지 전쟁담에 살을 붙여 생동감이 넘치는 연출과 촬영으로 익숙할 수 있는 소재를 더욱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어 전쟁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스코필드'가 명령을 전달하러 가는 길에 아무런 동의 없이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그가 동료 병사 '블레이크'의 지목으로 전장의 소용돌이로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그는 왜 목숨을 걸고 달려가야만 했을까. 적어도 '블레이크'는 자신의 친형을 위한 이유라도 있다. 하지만 '스코필드'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기 때문에 나아간다.
우리도 때로는 내가 왜 가야 하는지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곤 한다.
그냥 어쩌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상황이 되었거나, 어쩌다 보니 이미 많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냥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달려가다 보면 이유를 알아가고, 목표를 찾아낼 수도 있다. '스코필드'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모습을 담아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감이다. 여러 번 나눠 찍었지만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만드는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이 현장감을 살려준다. 이 숏으로 8시간 안에 미션을 달성해야 하는 주인공의 사건을 가장 긴박하고 사실감 넘치게 담아 놓을 수 있다.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연극무대를 보는 것처럼 관객은 이야기를 함께 따라간다. 연극에 비해 스크린이 갖는 제약인 현장감을 영화를 통해서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철저히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혹은, 함께 따라가는 병사가 된 것처럼 카메라는 컷(cut)을 하지 않으며 따라간다.
이러한 촬영으로 전쟁터에서 보이는 시체들은 더욱 전쟁을 잔혹하게 보여주고, 갑자기 총알이 날아오거나 적군의 위협이 있을 때, 관객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몇 배로 더하게 된다.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져 버린 ‘전쟁’이라는 단어와 소재를 현실감 넘치는 촬영으로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피부로 와 닿도록 해준다. 브레히트처럼 ‘낯설게 하기’를 통해 문제를 문제로써 생각하게 할 수도 있지만, 샘 멘데스는 이와 반대로 너무나 가깝게 이입시켜 전쟁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스코필드'가 미션에 성공하면 과정 중에 잃은 동료 병사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고, 오히려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다음 주면 또 다른 병사가 다른 메시지를 가지고 찾아올 것"이라는 대사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인간의 목숨을 나약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는지 실감할 수 있다. 영화 속 전장의 여러 시체들은 소품처럼 전쟁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인간의 욕심과 잔혹함은 한 인간이 가진 모든 아름다운 기억조차 쓸모없게 만든다.
그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모든 미션을 완료하고 나서야 적막한 나무 아래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휴식을 한다.
우리는 전쟁을 배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전쟁을 역사책의 몇 줄로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영화 속 수많은 병사들처럼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소중한 인연들과 추억, 빛나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욕망의 산물인 전쟁에겐 그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며, 그곳은 별들의 무덤이다.
어쩌면 전쟁이 짓밟아 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 채 밤하늘의 별자리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