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아는 대학 생활 내내 교직이 자기에게 맞는 직업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학교에서 듣는 전공과 교육학 수업들로는 학교 현장이 어떤 곳인지, 나와 잘 맞을지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행아는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뿌리 없는 식물처럼 흔들리는 자신과는 달리 회사라는 기반이 생긴 그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친구들 목에 걸려 있는 플라스틱 사원증이 인생에 대한 합격 목걸이처럼 보였다. 그래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없는 경력을 긁어모은 후 이리저리 버무려 자기소개서를 냈고 두 개의 회사에서 채용전환형 인턴이 되었다.
첫 번째로 일하게 된 무역상사에서는 멘토들이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배웠다. 임원 면접 전 날 멘토들은 이대로만 한다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행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행아는 멘토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울며 감사했다고 얘기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 탈락한 후 무수히 많은 회사에서 떨어졌다. 교직에서도 이미 많이 멀어져 있었고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리를 코앞에서 놓쳤다. 너무 조급해서 닥치는 대로 원서를 냈고 많은 회사에서 그만큼 많은 탈락 메일을 받았다.
두 번째 회사는 지친 행아가 교직의 길로 되돌아오기 직전 마지막으로 넣어본 곳이었다. 행아가 가장 원했던 방송콘텐츠 분야의 유명한 회사여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인턴십에도 합격하고 정직원 전환도 보장받았다.
행아는 한 때 합격만 시켜주면 어느 회사든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막상 정직원이 되려고 하니 이 회사에 들어가는 게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겼다.
전체 인턴 교육이 끝나고 팀에 배정받던 날 행아는 부모님이 사주신 투피스 정장을 잘 차려입었다. 같이 지내게 될 선배 직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누군가의 이직을 축하하는 날이었고 행아는 처음으로 회사 회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1차 식사가 끝나고 자연스레 빠지는 선배를 따르려는데 그녀가 말했다. "행아 씨는 팀장님이랑 멘토님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좀 더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선량한 그녀의 조언에 대부분의 젊은 팀원이 빠진 2차 회식에도 행아는 남아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새로운 이를 소개받으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분위기를 맞추려고 연거푸 들이킨 맥주에 치마 단추가 살을 죄어왔지만 그래도 웃었다. 그리고 행아는 다음 날 새벽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곁에는 밤새 경기도에서 달려오신 부모님이 계셨다. 팀장과 멘토가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행아가 의식을 잃었고 기나긴 회식을 예상하지 못한 휴대폰은 배터리가 간당간당했다고. 택시기사는 행아 상태에 화를 냈고 겨우 걸린 전화에 대고 부모님은 제발 응급실로 이송해 달라고 간청했다 한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졸아들게 한 끝에 행아는 응급실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머릿속은 엉켜있었고 속은 뒤집어졌다. 행아는 다 그만두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열심히 하고 그러고 나서 생각하라고. 부모님 차에 실려 자취방에 돌아간 행아는 간밤의 기억들을 씻어 내렸다. 힘 있는 자들에게 자신을 맞추며 느낀 비굴함,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 지경이 되었었다는 자괴감, 가족들을 걱정시켰다는 데 대한 미안함과 분노 그 모든 기억과 감정들을 씻어버렸다.
그리고 행아는 팀원들의 몫까지 숙취해소제를 사들고 제일 먼저 출근했다. 행아의 아버지에게서 응급실 행을 들어 알고 있던 팀장과 멘토는 괜찮냐고 뭘 그렇게까지 무리했냐고 걱정스레 말했다. 그들은 미안해했지만 행아에게 닿을 정도는 아니었고 행아도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시작한 이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우습게도 최종 합격을 거머쥐게 되었다.
여름 인턴이 끝나고 행아는 잠시 멈췄던 임용 1차를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1월에 회사 입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행아는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자꾸 스스로를 낮추게 되는 그 상황에 자신을 다시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1차 시험을 쳤다. 합격 발표 날은 입사 연수 출발일이었다. 행아는 합격 발표 전날 인사팀에 연락해서 입사 포기를 알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홈페이지에서 탈락했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