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절대정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정의가 있다는 정의부터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절대정의, 절대선으로 분류되는 개념이 존재한다.
자살하려는 남자를 만류하는 시민.
2천원만 갖고 온 아이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주는 식당 주인.
지하철을 밀어 지하철에 깔린 취객을 구하는 이름 모를 시민들.
이런 장면에서 우리는 세상의 절대정의를 느낀다.
머리로는 표현 못하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자기와 아무 이해득실 없이 상대방에 무조건적인 도움을 줄 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이 정말 절대정의이고 절대선일까?
혹시, 몇 천 년동안 쌓아온 인류의 생존기술 중 하나는 아닐까?
그 근저에는 내가 도움을 주는 대상이 혹 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조건적인 절대선이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있다면 몰염치 범죄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요즘은 착함마저 상품으로 포장되어 팔린다.
착한기업, 착한가게....
무수한 곳에서 '착한' 이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다수결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편가르기에 능하다.
좋다 나쁘다는 개념이 아니다.
다수. 혹은 강한 편에 묻어가는 편가르기는 생존 본능인 것이다.
다수쪽에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이 태어날부터 인간의 뇌 깊숙히 박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정의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 간의 이해득실을 더 믿는다.
무조건적인 절대선보다는 서로간의 이해충돌을 통해 도출된 합의점을 더 신뢰한다.
절대정의, 절대선은 다른 말로 다수와 강자로 이루어진 집단의 횡포라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