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좋아졌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끝이었다. 선생님이 매일 알림장이나 일 년에 한두 번 성적표에 적어주는 몇 줄. 또는 학교에서 사고가 났을 때나 아이가 아플 때 갑작스럽게 걸려오는 전화.
그 정도가 학교와 학부모가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부모가 자녀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자세하게 알려고 하면 유난스러운 엄마, 아빠로 여겨지기도 했다. (요즘 학교 관련 기사를 보면 많이 달라진 거 같긴 한다.)
지금 학교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솔직히 나는 아이를 한국 학교에 보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한국 학교는 어떤지 잘 모른다. 가끔 뉴스로 이슈가 된 선생님과 학부모의 경우를 접할 뿐이다. 그러니 내 경험과 생각은 세대 차이도 있지만, 미국과 한국의 차이도 있을 거다.
내 아들은 공립학교에 2년간 다녔다. 지금은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일주일이 조금 안되었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도 차이가 있었다. 공립학교에서는 안전상의 문제로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헤어졌다. 선생님과 만날 기회도 적은 편이였다. 대부분의 정보나 알림은 이메일을 통해서 받았다.
학교 행사가 있거나, PTO(적극적인 학부모 모임), 자원봉사자가 아니면 학교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일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반면, 사립학교(학교마다 방침이나 분위기는 다르겠지만)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교실까지 함께 들어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침 7시 50분에 학교 문이 열리고, 8시 15분까지는 부모와 아이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종이 울리고, 두 사람은 여유 있게 헤어진다. 부모는 학교 로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로비에는 항상 커피가 준비되어 있다. 와이파이도 있다. 학부모가 원하는 만큼 학교에 머물 수 있다.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다. 책을 대여할 수 있고, 반납은 지역 도서관에 할 수 있다. 거의 매달 부모들을 위한 모임이 있다. 모임은 부모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특히 초등학생 1학년(1st Grade)의 학부모의 경우에는 학교생활이 새롭다. 아이들이 배우는 과정도 유치원 때와는 차이가 있다.
부모들과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따로 있다. 만약, 학교생활이나 프로그램 등,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하고, 면담을 요청할 수 있다. 담임 선생님은 매일 늦은 오후에 이메일을 보내준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공유한다. 집에서 부모가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도 알려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부모와 선생님은 최대한 만날 일이 없는 게 좋은 거였다. 보통 선생님이 부모와 이야기하고 싶어 할 때는 아이가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과 교육에 대한건 선생님에게 맡겨두고, 부모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학교에서도 부모의 참여를 유도한다. 선생님과 부모가 힘을 합쳐 아이를 교육하려고 한다.
특히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나단이를 통해서 함께 배우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립학교의 친밀하고, 보살핌 받는 분위기가 도움이 된다.
나 때와 다른 또 하나는 책상의 위치였다.
교실에는 항상 내 책상이 있었다. 1인용 책상을 쓴 적도 있고, 짝꿍과 2인용 책상을 함께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자리가 있었고, 40명 여명의 학생들은 전부 앞에 서있는 선생님을 봐야 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자리를 뜨면 안 됐다.
나단이 학교에 갔을 때, 육각형 책상 모양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여럿이서 책상을 공유했다.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함께 뭔가를 만들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선생님들이 보내주는 사진 속 아이들은 한곳만 보고 있지 않았다. 교육자가 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의논하고 토론하는 환경이었다.
'교실에서는 조용히!'가 아니라, "너의 생각을 말해볼래?"
30년 전 라때 학교와 지금 미국 학교에서 본 가장 큰 차이는 아이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