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비던스 실버타운에서 함 선생님을 만나다

by 요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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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2015년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인 로드아일랜드로 이사를 했다.처음 왔을 당시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때 처음 만난 사람이 함 선생님이었다. 함 선생님의 남편이신 강 선생님은 50년 전, 브라운 대학교에 몇 명 되지 않는 한국인 종신 교수셨다. 내가 함 선생님을 만났을 때, 이미 강 선생님은 세상에 안계셨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말에서 20년 전에 떠난 남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함 선생님은 항상 조곤조곤하게 말씀을 하신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신다. 선생님을 만나고 오면, '나도 선생님처럼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야겠다.'라고 다짐을 했는데, 한 시간 후면 어느새 내 본래의 강한 어투로 돌아가있었다.

선생님은 여성이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던 시절에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셨다. 어른들 표현으로 '인텔리'었다.요즘에는 해외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워낙 많아서 '인텔리'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누가 그 말을 쓰기라도 하면 예스러워 보여 '푸훕'하고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50년 전에 유독 좋은 교육을 받은 분들을 칭할 때 '인텔리'만한 단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텔리=그 시절의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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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뚜벅이 배불뚝이였던 시절, 선생님은 우리 집까지 와서 나를 태워서는 브라운 대학교수의 사모님들이 하는 차 모임에 데리고 가주셨다. 이전에는 나이 든 분들과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노인들은 따분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적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식까지 키워낸 분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분들은 나의 롤 모델이었다. 그중에서 함 선생님은 가장 닮고 싶은 분이었다. 나단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프로비던스에서 교외로 이사를 했다.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동안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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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선생님은 실버타운으로 이사를 하셨다. 미국에서는 실버타운을 Nursing Home(너싱홈)이라고 부른다. 너싱홈에는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실버타운과 간병인의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이 사는 요양원이 있다. 함 선생님이 계시는 곳은 실버타운이다. 빌딩 안에는 식당, 카페, 도서관, 강의실 겸 영화관, 오락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너싱홈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왔다면 고급 아파트라고 생각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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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망덕하게 몇 년 동안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던 나를 함 선생님은 반갑게 반겨주셨다.

"점심부터 먹을까?"

카페 메뉴는 다양해서 한 가지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보통 5~7달러 정도. 요즘은 어디 가도 이 정도 값에 점심을 먹을 수 없다.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봐."

한참을 고민하다가 야채를 듬뿍 넣은 오믈렛과 작은 샐러드를 주문했다. 우리는 마치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서 식사를 하는 분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국말로 이야기를 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을거다. 그분들의 눈에 나와 선생님은 모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함 선생님 아들은 나랑 동갑이다. 선생님은 2년 전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녀답게 처음 이상 느꼈을 때부터 암 선고를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심지어 웃으시면서, "내가 그래도 할 건 다했지? 하고 싶은 공부도 실컷 해보고, 파리에서 유학도 해보고, 노처녀도 해보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워봤잖아. 지금 삶은 선물이지."

나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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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만으로는 부족했다. 선생님 댁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작은 키친, 꽤 넓은 거실, 화장실 2개, 방 2 개가 있는 집이었다. 마치 한국의 아파트 같은 느낌이었다. 채광이 좋은 거실이었다.

혼자서 지내시기 적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아들이 오면 함께 지내기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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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가구가 적었는데, 나무로 만든 한국의 전통장이 놓여있었다. 곳곳에 놓인 소품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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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입체적인 배 작품이 걸려있었다. 오래전, 한인협회에서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준 선물이라고 했다. 이전 집 구석에 처박혀 있던걸, 이곳에 와서야 걸어두셨다고 한다.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쌓아놨던지. 정작 강 선생님은 이걸 걸어둔 걸 못 보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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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 룸 벽에 걸린 티스푼 컬렉션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분과 함께 방문했던 나라에서 사 오셨다고 했다. 두 분이서 세계의 여러 나라를 다니시는 모습이 그려졌다.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다니셨겠지. 주변 분들 말로는, 생전에 강선생님께서 아내분을 굉장히 아끼셨다고 했다. 함 선생님은 키가 작고 아담하다. 얼굴은 동그랗고 눈은 반달형으로 웃고 계신다.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항상 미소를 짓고 계신다. 사랑스러운 분이다.

"선생님, 이렇게 많은 나라를 다 다녀오신 거예요?"

"응~아직 안 걸어놓은 스푼도 많아."

역시. 함 선생님은 나의 롤 모델이다. 나도 세상의 많은 곳을 남편과 함께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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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국에 가셨을 때, 조카분이 주었다는 자몽티를 내어주셨다. 이렇게 맛있는 자몽티는 처음 먹어본다.

(우린 한참 동안 한국에서 제품을 얼마나 섬세하게 잘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잣도 먹어봐. 호두도 좀 먹어봐." 자꾸만 뭘 내어주신다.

"아이 키우느라 바쁜데 언제 책을 썼어. 대단해. 너무너무 예쁘다!"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함 선생님은 이제까지 티 나는 충고를 한 적이 없으시다.

내 말을 그냥 재미있게 들어주시고, "좋다!"라고 맞장구를 쳐주신다.

잠시 후, 본인이 찾은 책을 추천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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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한국에서 오랫동안 문화와 영화 관련 기사를 쓰고, 뉴욕으로 이주해서 뉴욕중앙일보 기자로 일하셨던 박숙희 작가님의 책이다. 한국의 음식, 대중문화, 트렌드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책을 넘겨보는데, '응?'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글로우 레시피'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창업한 승연 언니다. 5년 전,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사업 소개하고, 투자를 받아야 하는 프로그램, <샤크 탱크>에 나와 5억 정도의 투자금을 받았었다. 지금은 1000억 가치의 회사로 성장했다. 뉴욕에서 함께 밥을 먹었던 언니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었다. 꿈은 멀리 있지 않다.

눈을 반짝이면서 흥분하는 날 보며, 함선생님이 웃으셨다.

"내가 도움이 되었지?"

네, 선생님은 존재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뵐 수 있을 때에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주름과 검버섯조차 가리지 못한 아름다운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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