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by 요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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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오늘,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저는 다른 사람의 집에서 무릎을 꿇고 주방의 더러워진 대리석 바닦을 닦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사립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제가 왜 남의 집 바닥을 닦고 있었을까요?

원하던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서 5년 동안 연기자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영화와 드라마, 광고에도 출연했지만,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2년 가까이 일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파랑새'를 찾아 도쿄로 갔지만 8개월 만에 특별한 소득이 없이 돌아왔습니다.

3년 정도 회사를 다녔으나, 조직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영어라도 배워오면 좀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것 같아서 뉴욕에 갔습니다.

그러다 요리를 배우고 싶어 요리학교에 다녔지요.1년 동안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무급으로 하루 10시간을 일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으나, 요리사로는 취업이 바로 안되어 요리 마케팅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밥먹듯이 하는 야근과 적은 임금, 다른 이유로 3개월의 수습 기간을 마치고 퇴사를 했습니다.

3개월 동안 유명한 셰프들과 요리 강사분들과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 나도 요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요리를 강사가 될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퇴사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한 요리강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지희씨, 나 좀 도와줘요!"


함께 일하던 어시스턴트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다며, 당분간만 자신의 수업 준비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나의 롤모델 중에 한 명 이었습니다. 나보다 겨우 세 살이 많았지만, 요리 강사로서 각종 문화센터와 수업을 진행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지요. 저는 기꺼이 그녀와 함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녀 가까이에서 어떻게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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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눈 앞의 기회만 보느라,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는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녀가 요리를 하는 이유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지요.

같이 일을 하기 전에,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녀의 어시스턴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어시스턴트는 이제 고작 스무살이 넘은 사람이습니다.


"선생님, 샌드위치 빵은 어느걸로 사야할까요?"


"야! 그것도 아직 몰라?!! 저번에 했자나!!!"


어시스턴트의 질문에 버럭 성을 내는 그녀를 보며, '그게 화를 낼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한테 그런 것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몇 주 후에 어시스턴트가 월급을 받자마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는 급하게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빈자리를 대체했지요.

처음에는 "지희씨는 어시스턴트가 아니고, 파트너에요. 강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라는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첫 수업부터 그녀는 수업 중에 요리 도구가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놓여있지 않다며 짜증을 냈습니다. 이후로도 수업 중에 나를 부를 때 종종, "야." "쟤"라고 불렀습니다.

혹여 실수를 하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 나의 실수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큰소리로 화를 내며 혼을 내기도 했습니다. 전에 도망간 어시스턴트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뉴욕의 레스토랑 키친은 모든 것이 매우 바쁘고 거칩니다. 그런 치열한 분위기에서도 세계적인 셰프들은 무료로 와서 일을 하는 인턴을 항상 존중하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주방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가르쳐주려 하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자기것을 하나라도 더 배워갈까봐 경계하는 것 같았습니다.

레시피는 수업 전에 도구와 재료를 준비할 때만 잠시 보여주고, 수업 시간에 실수가 있으면 화를 냈습니다. 메모를 하면, "그걸 왜 적어요?!"라면서 적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오전 수업 한 번, 오후에 수업 한 번을 했는데, 한 수업 당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업 준비를 위해서는 적어도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해서 일을 하고, 수업 중에는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잔뜩 쌓인 설거지와 더러워진 주방을 청소했습니다.

오전 9시에 그녀의 집이자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오후 9시 반이 되어야 나왔지요.외부 문화센터나 기업에서 출장 수업이 있을 때도 함께 가서 일을 했습니다.

월급은 한 달에 70만원을 받았습니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그녀는 "우리 함께 세 달 동안 일을 해보고, 서로 잘 맞아서 더 일하게 되면 그땐 월급을 올려줄게요."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세 달이 지나도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응? 나는 솔직히 지희씨가 없어도 괜찮아요."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한 말을 빈대떡 뒤집듯이 바꾸었습니다.

(때마침, 그녀의 졸업논문이 끝났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이대로 일을 그만두면 강사가 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그녀가 문화센터에 나를 소개해줄 때까지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계속 했습니다.

몸이 힘든건 괜찮습니다. 하루 10시간도 무급으로 서서 일을 했던 나니까요.

정작 힘이 든건 정신적인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험담을 자주 했습니다. 자신에게 요리를 배우러오는 학생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주로 삼았습니다. 다른 잘나가는 요리 강사들의 음식과 수업을 비하하며 자신이 더 낫다고 말을 했습니다.

한번은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욕을 하길래,

"아...네..."라고 미지근한 반응을 했더니,

"아니 지희씨! 왜 맞장구를 안쳐줘?!"라며 성을 낸 적도 있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맞장구를 치라는건지...)


당시에 그녀는 한 대학원을 다니며 졸업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그 교수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온갖 욕을 해놓고, 논문 심사 때 교수에게 줄 선물을 산다며 샤넬 매장에 가서 비싼 지갑을 샀습니다.

나에게는 카드 값이 많이 나와서 월급을 올려줄 수가 없다던 사람이, 교수의 뇌물을 사는데 왜 나를 데리고 갔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던거겠지요.

'나보다 경험도 실력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도 배려하고 존중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면,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한가지 약속은 지켰습니다.

00백화점 문화센터에 나를 소개해주었고, 덕분에 베이킹 수업을 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그녀의 항의로 문화센터 수업이 폐강되는 결과도 얻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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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개월 동안 그녀와 함께 일하는 시간은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요리에 대한 즐거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루가 시작되면 그녀의 날선 공간으로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에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매단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고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버틸 수 밖에 없었지요.


그녀는 고급 식기 세척기를 두고도 손으로 설거지를 하는게 더 빠르다며 식기 세척기는 그릇 보관용으로 쓰고, 나에게 매일 수북하게 쌓인 요리 도구며 그릇을 씻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그녀는 요리 수업에서 만든 음식을 우아하게 학생들과 먹으며, 또 누군가의 험담을 하며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더러워진 테이블 밑의 대리석 바닥을 닦을 때는, "나도 예전에 00선생한테 요리 배울 때, 내 집처럼 바닥을 닦았어."라며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때만큼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부모님께서 기껏 좋은 교육을 시켜주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나 자신이 못나보여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깊은 구덩이에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희망이란건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언젠가 요리 강사가 되어 여기서 나가겠다는 생각만이 절실했습니다.


결국 저는 내 블로그에 '오코노미야끼'를 올렸다는 이유로 짤렸습니다. 자신이 수업에서 오코노미야끼를 만들었으니, 오코노미야끼는 자신의 레시피라는 논리였지요.

'일본 요리'책에는 빠짐없이 나오는 레시피도, 자신이 하면 다 '내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짤리고 나서도 그녀는 간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어렵게 시작한 LL문화센터 수업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내꺼야'라는 큰소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잘 드는 무기와 같았습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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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법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서 살고 있으니까요.


'타산지석'

하찮은 남의 언행일지라도 자신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녀와의 시간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세가지를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첫째, 일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둘째,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다.

셋째,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특히 자신의 배우자를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어떤 누구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가치관은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합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어려움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뉴스에서 직장내의 어려움으로 인해 자살을 한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그때의 제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래도 포기하지 말지......'

지금은 이 순간이 계속 될 것 같아서 막막하고, 답답해도 반드시 시간은 흐릅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 좋은 날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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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좋은 시절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다르게 보낼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기억해 두기 바란다.

당신에게도 봄은 꼭 올 것이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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