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식물에는 물을 주는 게 아니다
42년 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중이다.
실수라고 생각했던 일, 실패라며 괴로워했던 일, 행운인 줄 알았던 일.
그러다 힘들었던 시간에 멈췄다. 꼬박 3일을 미운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은 떠올리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괴롭고 상처받았던 일은 잊으려고 애써도 방금 일처럼 생생하다.
그 사람의 표정, 말투는 물론이고 당시 내가 느꼈던 굴욕감과 좌절감까지.
처음에는 그 사람이 싫은 이유를 생각했다. 모순과 불합리함. 비윤리적인 행동과 뻔뻔함.
'그래, 그 사람은 이런 점이 나빴어. 내가 미워할만한 사람이야.'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대로 인정하고 그 일을 어떻게 정의하고 남길 것인지 고민했다.
왜 그런 사람과 일을 했는지 생각했다. 나는 그와 함께 일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미 그가 믿고 따를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꿈을 이루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상한 음식인지도 모르고 일단 입에 넣고 본다. 그러다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한다.
돈, 사랑, 인맥, 권력, 물질. 욕심은 우리의 오감을 무력하게 만든다.
한 번 잘못된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조심하게 된다. 음식이 상하면 어떤 맛과 냄새가 나는지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쁜 인연과 경험을 통해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서 받았던 느낌을 기억하고, 새로 알게 된 사람에게 그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면 조심했다.
이성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전에 나쁜 남자를 만났다면,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사람은 피했다.
지난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면 반복적으로 해로운 사람을 만나고 상처를 받는다.
과거에서 배워야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
사흘 동안 미운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제 그 사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당시에 나는 일을 시작하지 얼마 안 된 초심자였고, 그 사람은 업계에서 꽤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 관계가 불편해지면 일하면 분명 불이익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한동안은 실제로 그랬다.
내가 새로 일하는 곳에 전화를 해서 내 험담을 하고, 가족을 시켜 나를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에 집중을 하다 보니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더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가 더는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개인 요리 스튜디오를 열었고, 더 많은 곳에서 강의를 했다. 다시는 자기 것을 카피했다는 누명을 씌우지 못하도록 다른 메뉴를 개발했다. 사람을 사귈 때는 실력만 보지 않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봤다. 일 년 반이 지나 주변을 보니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났다. 그와 산지 곧 십 년이 되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그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다. 우린 여전히 서로 존댓말을 쓴다. (나는 가끔 장난과 애교를 핑계로 말을 놓는다.) 사랑스러운 아이도 있다.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진즉에 그 사람은 내 삶에서 없어졌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죽은 식물에게 계속 물을 주고 있던 거다.
구정물을 이미 넘어왔는데, 계속 뒤돌아가서 발을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신발에 계속 더러운 오물이 묻을 거다.
이제 현실에 집중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때다.
그건 내 선택이다.
지나온 흙탕물에 계속 머물며 신발을 보며 불평할 것인지, 오물을 깨끗하게 닦고 보송보송한 푸른 잔디 위를 신나게 뛰어다닐 건지.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과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 무엇보다 지금 존재하는 나를 위해 쓰겠다.
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