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같은 신년회
"우리 일요일에 신년회 할까?"
"그러자!"
"간단하게 샤부샤부나 해 먹을까?"
"좋지!"
평소 또래 아이들을 키우며 친하게 지내는 이즈미와 사나에와 신년 모임을 하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라디오에서 폭설 예보가 흘러나온다.
"내일 눈 온다는데?"
"얼마나?"
"많이 올 것 같은데?"
아쉽지만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다. 예고한 대로 토요일 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연기하길 잘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멈췄다. 밖을 내다보니 쌓이지도 않았다.
긴급하게 연락을 돌렸다.
"눈 그쳤는데?"
"그러네?"
"그냥 모일까?"
"그러자!"
"근데 샤부샤부 재료를 안 샀는데. 그냥 집에 있는 거 갖고 올래?"
"남편들도 데리고 갈까?"
"응! 그래!"
정오가 지나자 집 드라이브 웨이(차고와 이어지는 진입로. 차를 주차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에 차가 한 대씩 들어온다.
셰프인 이즈미 남편이 오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먹을 펜네 파스타를 만들었다.
사나에는 집에서 다시시오(일본에서 자주 사용하는 조미료. 맛소금에 다시 가루를 섞은 것)를 넣은 오이 다시마 샐러드를 만들어왔다.
간단한 음식들이지만 토마토소스와 오이의 궁합이 잘 맞아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냉장고에 있던 배추, 당근, 버터 스쿼시(서양식 호박), 부두, 고기를 꺼내 샤부샤부를 만들었다.
사나에 남편은 아껴두었던 일본주를 열었습니다.
신나게 먹고 있는데,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송이가 점점 커지더니 금방 지면에 두텁게 쌓여간다. 바람에 휘날리며 눈발이 사나워진다.
슬슬 출근한 남편이 걱정된다.
'미끄러운데 어두워지기까지 하면 운전할 때 위험할 텐데......'
전화를 걸었다.
"여보, 눈이 많이 와요. 얼른 와요."
"진짜요? 근데 여보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아직 못 먹었어요. 이것만 먹고 갈게요."
"아니, 지금 그걸 왜 먹어요. 얼른 와요!"
20분 후, 남편이 재킷에 묻은 눈을 털며 들어왔다.
"오다가 큰일 날뻔했어요... 길이 미끄러워서 브레이크가 밀리더라고요. 하마터면 다른 차랑 부딪힐 뻔했어요."
남편은 재작년에 크게 차 사고가 났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매일 출퇴근을 할 때마다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온 가족이 다 모이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어느새 저녁 8시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원래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평소라면 사람들과 모여도 7시면 슬슬 정리를 한다.
그런데 친구 남편들이 기분이 좋은지 술을 더 사 와도 되는지 묻는다. 차마 안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모처럼 다들 기분 좋고 아이들도 잘 노는 걸 보니, 오늘 하루 정도는 늦게까지 놀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 마시는 거, 술안주로 반건조 오징어 버터 볶음을 만든다. 5월에 친정 엄마가 한국에서 갖고 온 귀한 반건조 오징어다. 양이 많지는 않지만 맛있는 음식을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먹으면 좋지 않은가.
아이들은 오랜만에 내린 눈을 갖고 노느라 신이 났다.
춥고 바람이 부는 데도 해가 질 때까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친구 남편들은 체스를 하고, 우리 내 남편은 아이들을 챙겼다.
문득, 어릴 때 한국에서 친척들과 모여서 보냈던 명절이 떠올랐다. 남자 어른들은 모여서 화투를 치고, 여자들은 부엌 식탁에 모여 앉아 계속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언니와 나는 사촌 동생들과 해가 질 때까지 밖에서 놀았었다.
미국에 와서 십 년 가까이 살며 잊고 지냈었다. 사람들과 모일 필요가 없어지니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북적대니 즐거웠다.
"길 미끄러우니까 자고 가도 돼."라고 제안했지만, 다들 늦은 밤에 집에 가겠다며 나섰다.
헤어지고 보니, 술이 많이 남아있다. 이건 왠지 조만간 또 오겠다는 무언의 제안 같다.
사실 남편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으면 금방 피곤해한다. 그래서 대부분 명절을 우리 가족 셋이서 조용하게 보냈다. 특히 우리 부부 주량은 한 달에 와인 반 잔 정도라 술자리에 가지도 않고, 사람들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이번 신년회를 하고 깨달았다.
가끔은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도 좋다는 것을.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어낸 활력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언제나 익숙한 하루를 보내면 편안하지만 자극은 없다.
사람은 다른 경험을 했을 때, 흥분하고 설렌다.
한 달에 한 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거나, 색다른 곳에 가보면 어떨까?
호기심을 자극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