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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매일 점을 찍는다

쿠사마 야요이 무한 거울의 방


8년 전,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을 봤다.

쿠사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녀를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했다. 아버지는 불륜을 일삼았다. 

쿠사마 야요이는 열 살 때부터 환각을 봤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정신 질환을 갖고 있었는지, 환경이 병을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수많은 점, 반짝이는 빛, 아우라. 그녀가 작품에 표현한 것은 실제 그녀 눈으로 본 세상이었다. 

강박적으로 같은 패턴의 점을 찍거나, 선으로 물방을 무늬를 그렸다. 반복적인 행위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거대한 캠퍼스에 물방울을 그린 <인피니티 넷_무한망>을 선보였다. 환각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점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려냈다. 

실제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쏟은 오랜 시간과 강렬한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단순한 점들이 모여 거대한 세계를 만들었다. <무한망> 외에도 거의 모든 작품에 점이 등장한다. 

그중 노란 호박에 검은 점이 찍힌 작품은 쿠사마의 트레이드 마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한 거울의 방>이다.

그동안 뉴욕 브롱스 보터니컬 파크, 도쿄의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에서도 봤었다. 하지만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본 작품이 최고였다. 가장 넓었고, 사람은 적었다. 방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남편과 함께 한참을 서서 거울의 방에 작은 조명의 색이 천천히 바뀌는 것을 보았다. 무한한 우주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중력이 없어지고 허공에 붕-떠 있는 느낌이었다. 

쿠사마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점을 하나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찍었다. 무려 80년 동안. 그 점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세계도 확장했다. 

그녀가 찍은 점들이 모여 그녀만의 고유성, 독창성이 만들어졌다. 점은 그녀가 살아온 인생 그 자체다. 

그동안 나는 항상 고민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뭘까?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내 꿈은 뭐지? 어떻게 이뤄야 하지?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영향력이 키워 다른 사람을 도우려면 뭘 해야 하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마흔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 정체성을 만들고 영향력일 키우기 위해서는 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 있고, 잘하는 일을 하나 정한다. 매일 그 일을 한다. 온라인 플랫폼에 기록한다.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온라인 세상에 나의 점을 찍는 거다. 단, 내가 전하고 싶은 가치와 의미를 담아 정성껏.

계속 찍는다. 1년, 2년, 3년, 4년, 5년. 최소 5년 동안 멈추지 않아야 한다. 시간을 쌓아간다.

내가 바라는 나, 내가 살고 싶은 세상, 내가 돕고 싶은 사람을 상상하며, 끊임없이 찍는다.

내가 찍은 점이 모여 내가 만든 세상이 된다. 꿈이 만들어진다.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커진다. 내가 점찍기를 멈추지 않는 한, 가능성은 무한대다. 


그동안 내 세계가 커지지 못했던 이유는, 미처 공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점찍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이걸 열심히 한다고 돈을 벌 수 있을까? 먹고는 살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누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계속하고, 나의 분신을 만들고,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줘야 했다. 같은 일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며 반복한다. 시간이 쌓이고, 진화하고, 나만의 고유한 특색을 갖은 우주가 된다.

7년 동안 아이를 낳고 키웠다. 자의로 시작했던 일이지만 어느새 의무로 했다.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을 보살피는 데는 여러 가지 일이 있다. 그중 요리를 좋아하고, 많이 했더니 제법 잘한다. 가계를 꾸리다 보니, 돈을 어떻게 쓰고, 모으고, 관리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계속했더니, 나름 경험이 쌓이고, 기술이 생기고, 스타일이 생겼다.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점을 찍어왔던 거다. 


이제는 의식하고 점을 찍기로 했다. 쿠사마 야요이가 자살충동과 우울증을 이겨내고, 의식을 또렷하게 하기 위해 점을 찍었던 것처럼. 나도 요리를 하더라도, 건강과 사랑을 담아 정성껏 한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도, 그냥 옆에 있는 게 아니라, 아이 눈을 바라보고, 아이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하루를 살 때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 과정을 매일 기록한다. 온라인이라는 세계에 내 점을 찍는 거다. 그 점이 이어지면 내 인생이 되고, 내 세계가 된다. 더 많은 점을 찍을수록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 세계가 확장한다. 하늘에 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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