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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먹고 싶다

보스턴 사우스 스테이션 식당가



여기서만큼은 뭐가 되었는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가 있다.

보스턴 사우스 스테이션 식당가.

3년째 이어지는 공사 때문인가. 갈수록 더 별로다.

프로비던스 역에서 기차 타고 신나는 마음으로 보스턴에 도착할 때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후다닥 바깥으로 나가버리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반면, 집으로 돌아갈 때는 기차 시간보다 보통 한 시간 정도 일찍 역에 도착한다.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기도 하고, 기차 시간이 식사 시간과 겹치면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도 하고, 화장실에도 들른다.


역사 안은 음침하다.

벤치에는 노숙자들이 누워있다. 불편한 높은 테이블에는 먹고 치우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가 그대로 놓여 있다. 그나마 몇 개 있는 낮은 테이블에는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남은 의자에 다리를 올려놓기까지 했다. 멀쩡한 사람도 그 공간에 있으면 우울해 보인다.

그래도 잠시 있다가 떠날 거니 견딜만하다. 가장 싫을 때는 음식을 주문할 때다.


3주 전, 보스턴 일본 축제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아이들이 배고프다길래 맥도널드에 갔다.

메뉴를 보고 있는데, 젊은 흑인 직원이 "다음 사람!" 외쳤다. 카운터 앞에는 더 이상 주문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기다리는 사람도 우리 포함해서 6명 정도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계속 소리를 지를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사람! 다음 사람! 다음 사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애플리케이션으로  리워드와 포인트까지 써서 직접 주문하고, 음식을 받는 5분 동안 "다음 사람!"을 8초 간격으로, 적어도 35번 이상은 들은 것 같다.

그 소리가 굉장히 신경에 거슬렸다. 언어로 하는 폭력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다음 사람을 부른 것은 고객을 향해서 계속 빨리 주문하고, 빨리 꺼져버리라고 것 같았다. 음식을 담은 종이봉투를 집어 돌아서면서 '다시는 여기 오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저께, 시애틀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에 자정이 넘어 도착했다.

호텔에서 하루 묵고, 보스턴 사우스 스테이션에 기차를 타기로 했다. 마침 바로 앞에 퀸시 마켓(맛있는 음식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거기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역에 갈 계획이었다. 남편과 아이가 자는 사이에 혼자 마켓 안에 음식들을 보며 무엇을 먹을지 시뮬레이션도 해봤다.


그런데 남편과 나단이가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오후에는 남편 직장에서 부부 동반 행사가 있어서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역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갔던 맥도널드 옆에 레지나 피자가 있었다.  나단이가 피자가 먹고 싶다길래, 주문을 하려고 기다렸습니다. 피자를 굽던 아저씨에게 먹고 싶은 피자를 이야기하고, 옆에 있는 여자 직원에게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아저씨에게 "페퍼로니 피자 하나요." 하고 말했다.

아저씨는 2분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여직원에게 "원, 페퍼로니!"라고 외쳤다.

기다리는 동안 계산을 하기 위해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원 페퍼로니 피자 포 키즈 메뉴 (키즈 메뉴로 페퍼로니 피자 하나요.)"

키즈 메뉴에는 피자 한 조각, 어린이 주스 한 팩이 포함되어있었다.

그러자, 중년의 여자 직원은

"치즈 피자? 페퍼로니 피자?"라고 따지듯 물었다.

"원 폐퍼로니 피자. 잇츠 포 키즈 메뉴."

그러자 그 여자는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치즈 피자? 페퍼로니 피자?!"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원 폐퍼로니 피자. 잇츠 포 키즈 메뉴."

내가 다시 말하자,

그 여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왓?! 치즈 오어 페퍼로니?????" 물었다.

듣고 있던 아저씨가 "페퍼로니!"라고 말했는데도, 여자는 날 보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짜증이 나서, "잇츠 포 차일드!"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그 여자는 계산을 하고 봉지에 아이 주스를 넣어서 건넸다.

짧은 5분 동안 혈압이 올랐다.

그 여자도 나도 외국인이라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말투나 표정을 봐서 투박하고 거친 사람인 것 같기는 하지만, 고객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자기 말만 하며 직접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게 싫었다.



맥도널드 여직원도, 레지나 피자 가게 여직원도.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최대한의 권력을 휘두르듯,

최선을 다해 불친절을 건네는 사람들이 싫다.



나 역시 언제나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사람들이 나와 만나는 순간만큼은 기분 좋았으면 좋겠다.







2025년에 사우스 스테이션 확장 공사가 끝난다고 한다.

역사 안이 좀 더 밝고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사람도 빛이 잘 드는 곳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남에게도 좀 더 친절해지지 않을까?

그전까지는 다시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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