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세상에 넘겨주지 마라.
수 천년 간 내려오는 통계학이자 천문학인 사주학.
2009년 29살. 아홉수에 삼재. 의료사고로 사업이 망했고 오랫동안 사귀던 사람과도 이별했다. 기가 막히게도 이 모든 일이 그 해에 일어났다.
“보통 사람은 한 개도 내려올까 말까 한데 이 처자 사주팔자에는 하늘에서 3개의 동아줄이 내려와. 흔히 천운이라고 하는데 불행도 녹여서 행운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 보통은 노력한 만큼 얻지만 이런 사주는 자신이 기울인 노력보다 더 많은걸 얻지. 행운이 비껴가는 게 아니라 늘 따라붙어. 전쟁터에 총 없이 내놔도 살아 돌아와. 하늘의 신이 너는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있으니 지금 죽어서는 안된다 하며 번쩍 들어다가 안전한 집에 들여놓는 형국이거든. 장수하면서 평생 하늘의 신을 제 아버지로 여기고 사는 팔자니 걱정할 거 없어. 지금이 삼재에 아홉수야. 그냥 나 죽었소 생각하고 참고 견디면 돼. 이 시기만 잘 지내면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이 처자는 지금 결혼할 마음이 없어. 올해에 결혼운이 들어 있지도 않은데 무슨 결혼이야. 결혼만 늦게 하면 만사형통이니깐 딸내미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게 내버려두어. 때가 되면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할래요'하며 신랑감을 데리고 올 거야. 그땐 아무 소리 말고 무조건 보내.”
엄마가 힘들 때마다 찾아가던 중앙시장에 용하다는 철학관 아저씨의 말이었다. 만사형통萬事亨通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그 말은 모든 인간이 바라는 사주팔자를 쥐고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옥불에 빠진 내 귀에는 ‘지금은 나 죽었다 생각하며 참고 견뎌라.’는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살면서 매번 원치 않는 일을 겪을 때마다 지금처럼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 옳거니! 역시 사람은 타고난 사주팔자대로 사는 거야. 지금까지 제대로 성공한 적 없이 실패만 하고 살아왔어. 억울하고 자존심 상해서라도 이대로 무너지지 말자. 아... 잠깐만. 아니지? 온통 좋은 말 뿐이잖아? 만약 나쁜 말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난 또 한없이 절망스러웠겠지? 그래서 그걸 막으려고 부적이나 굿판이라도 벌이려 했겠지? 그래. 아무리 좋은 말로 내 사주를 도배한다 해도 사주팔자란 그저 통계학일 뿐이야.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야. 의료사고 역시 통계상 낮은 확률이고 의사도 부작용 없다고 안심하라 했는데 거기에 내가 당한 거 아냐! 통계학은 결코 불변하는 진리가 될 수 없어. 더 이상 진리가 아닌 말에 소중한 내 인생을 맡길 수는 없지. 그럼 불변하는 진리는 뭐지? 무슨 이야기에 내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걸까?
그나저나 인간을 재앙으로부터 지켜준다던 신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미련할 만큼 또다시 살아보겠다고 일어서는 나를 두고 어디에 간 거냐고! 차라리 5만 원짜리 철학관이 일러주는 사주팔자가 지금의 나에게는 더욱 위로가 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야. 언젠가 젊은 신부가 신학을 열심히 공부하자 연로한 신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어. 신학은 알면 알수록 허탈하니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말라고. 역시 신이란 존재는 나약한 인간이 만든 허구일 뿐인 거야. '
그 순간 내 안에서 또다시 따뜻한 음성이 들려온다.
얘야. 악마가 '자살?'이라고 물으면
지금처럼 반대로 '살자!'라고 답하고
세상이 'NO?'라고 물으면
지금처럼 반대로 'ON!'이라고 답해라.
지금 이 순간.
좌절하여 어두워진 네 마음에
사랑으로 희망의 등불을 켜라.
세상을 살면서 좋은 날,
나쁜 날이란 없단다.
어리석은 인간이 자신의 유익과
판단에 따라 나누고 있을 뿐이란다.
네 고집스러운 마음을 열어
자연의 섭리를 바라보며
진리를 깨달아라.
탐스런 사과 한 알이 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지내왔는가 헤아려 보아라. 사과는 비 오는 날을 궂은날이라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태양빛이 내리쬐는 날을 뜨겁다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부는 날에도 그러하다. 벌레가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와 파 먹어도 사과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그제야 비로소 가장 달고 맛있는 사과 한알이 이 땅위에 탄생한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과는 비 오는 날이 궂은날이라 원망하며 태양빛을 원한다. 그 결과 태양빛만 쫓은 사과는 바싹 말라 땅에 떨어진다.
반대로 태양빛이 뜨겁다 불평하는 사과는 비 오는 날을 원한다. 그 결과 주야장천 비만 쫓은 사과는 썩어서 또다시 땅에 떨어진다.
좋은 날, 나쁜 날을 구분 지은 사과는 말라비틀어지고, 썩어 문드러져 땅에 떨어진다. 인간은 물론 동물들도 먹지 않는 사과는 농부조차 거들떠보지 않는단다. 그렇게 불평, 불만만 쏟아놓던 사과들은 모조리 쓸모없이 썩어버려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의 인생도 이와 같단다. 좋은 날, 나쁜 날을 나누며 불평, 불만하는 인간은 결국 어리석은 사과의 운명처럼 된다. 이 땅 위에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쓸모없이 썩어 흙으로 돌아간단다. 그러나 삶의 모든 날들이 자신을 견고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 인간은 신의 지혜를 선물로 받는다. 그리하여 그는 이 땅 위에서 빛나는 신의 예지력과 통찰력을 갖추고 세상을 이롭게 만든다. 이 땅위에 태어나 제 구실을 다한 후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살아있는 후손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빛을 내며 살아간다.
그러니 얘야. 지금은 나 죽었소 하고 참고 견디라는 말은 신의 가르침이 아니란다. 네 유익과 판단에 따라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편견의 알을 깨고 나오너라. 그리하면 고통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희망을 바라보며 감사함을 발견하는 혜안을 얻게 될 것이다. 신의 시선으로 우주 만물을 바라보는 이는 평화 속에서 행복하다.
신이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인간이 바라는 상황 속에서만
평화를 느끼게 하지만,
신이 주는 평화는
인간이 바라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느끼도록 만든단다.
거친 풍파 속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평온 속에 고요히 머무는 인간은 신과 함께 세상을 걷는 이다. 사랑하는 너희들은 반드시 거친 파도 위를 신과 함께 가라.
얘야. 사주팔자나 점은 인간의 마음과 생각 안에 스스로에 대한 한계를 짓게 한다. 그들의 말처럼 인간에게 일어났어야 할 재앙이니깐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면 너희는 결코 실패 속에서 아무런 지혜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평생을 좋은 날, 나쁜 날로 구분 지어 구두굽이 닳도록 철학관과 점집을 드나들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그들의 말에 휘둘리며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될 것이다. 너희는 진정 소중한 자신의 삶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느냐?
얘야. 점쟁이를 찾아가지 마라. 그들은 죽은 귀신의 영으로 사람의 인생을 점친다. 너희는 죽은 신이 아닌 살아 있는 신을 믿어라. 신들의 신이라 불리는 저 높고 고결한 사랑의 신을 믿어라. 사랑의 신이 빛으로 감싸 안은 인간은 점쟁이를 찾아가도 점괘를 봐주지 않는다. 귀신은 자신의 영보다 높은 신을 섬기는 자들의 운명을 함부로 점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만사형통의 팔자를 원한단다. 또한 나이 들어도 초라해지지 않고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성공한 인생의 대기만성형 인간을 원한단다. 그러나 만사형통의 운명은 이미 신성神性을 품고 있는 인간의 마음 안에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고집스러운 편견의 세상을 깨고 나올 때 살아 숨 쉬는 모든 날이 좋은 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대기만성이란 실은 대기 면성이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흔히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뤄진다는 의미로 대부분 알고 있다. 그래서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 고대에는 만晩자와 면免자가 통용돼 쓰였고, 옮겨 적는 과정에서 그 뜻이 와전된 것이다. 도덕경 원문에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아니라, 대기 면성大器免成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릇에 인위적으로 한계와 경계를 짓는 순간 큰 그릇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노자가 말하는 큰 사람은 우주처럼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 모든 사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뜻한다. 진정 큰 그릇에는 한계가 없고 완성이란 없다. 진정으로 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생각과 삶에 한계를 두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이란 벽을 진리의 망치로 깨부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기억해 두어라.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불변하는 비밀이 하나 있다.
현실은 인간의 마음속을
그대로 반영한 세상이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너희는 영매들과 점쟁이들에게 가지 마라. 너희가 그들을 찾아다녀 그들이 너희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레위기 19,31)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콜로새서 2,8)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집회서 4,17-18)
*그들이 그 고통 중에서 울부짖자 야훼께서 사경에서 건져주셨다. 광풍을 잠재우시어 물결을 잠잠케 하셨다. 이윽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모두들 기뻐하며 하느님의 인도를 받아 바라던 항구에 다다랐다. 그 사랑, 야훼께 감사하여라. 인생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 모두 찬양하여라. (시편 107,28-31)
*좋은 일과 궂은일, 삶과 죽음 가난과 부, 이 모두가 주님에게서 온다. (집회서 11,14)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코헬렛 7,14)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집회서 2,5)
*보라, 나는 너를 단련시켰으나 은을 녹이듯 하지는 않고 고난의 도가니 속에서 너를 시험하였다. (이사야 48,10)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히브리서 11,1)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복음서 14,27)
*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하고 말씀하셨다. (루카 복음서 17,19)
*신들의 신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시편 1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