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좋은 자신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
2005년 일본 유학시절에 만나 5년간 사귀던 남자와 2009년에 혼담이 오갔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고위 간부직 공무원이셨기에 현직에 계실 때 하나뿐인 장남의 결혼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서둘러 주변 인맥을 동원하여 명동성당에서의 예식을 준비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우리의 결혼 성사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물 흐르듯 모든 분위기는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신의 뜻과 인간의 뜻은 달랐다.
2009년 6월. 예상치 못한 피부과 의료사고를 겪으며 함께 하던 패션 사업마저 멈췄다. 그로 인해 내 마음에도 제동이 걸렸다. 사실 당시 일어난 모든 일들이 결혼 진행에 있어 크게 문제 될 사안은 아니었다. 피부과 의료사고는 눈에 띌 만큼 큰 흉터를 남긴 것도 아니었고, 패션 사업은 양가 부모님의 능력에 비하면 아이들 소꿉장난에 불과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과는 상관없이 당시 내 마음은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세상은 그러한 감정을 두고 ‘낙심’이라 불렀다. 사전을 찾아보면 낙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마음이 상함’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낙심이 인간의 마음으로 옮겨와 새겨질 때면 영혼을 죽게 만들고, 삶에 새겨질 때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낙심이란 단어가 내 마음과 삶에 점점 깊이 새겨질 때쯤 예지몽을 꾸었다.
화창한 어느 날. 가족 모두가 예복을 차려 입고 결혼식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꿈속의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일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웃고 있는 가족의 표정을 보니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실체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함 그 자체일 뿐이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더 이상 슬픔을 참지 못하고 멈춰 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 이 결혼할 수 없어요. 모두 집으로 돌아가요.” 그렇게 말하며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동안 말할 수 없이 큰 바위가 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꿈속의 나처럼 용기 내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또다시 꿈을 꾸었다.
사귀던 친구가 자신의 신혼집이라면서 우리 가족을 데리고 높은 계단 위로 올라갔다. 힘들게 올라가서 방문을 열자마자 마주 보이는 벽면에 그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신부 측 사진에는 내 모습이 아니었다. 액자틀만 있는 하얀 빈 공간이었다. 그 순간 지금은 결혼할 때가 아니라는 것과 당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사귀던 친구와 가족 모두에게 파혼을 선언했다. 예상했듯이 모두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나는 한순간 불효자식이 되었고 상대측 부모님과 사귀던 사람에게도 상처를 남겼다. 모두가 울면서 마음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마치 감정이 없는 냉혈인간처럼 차갑게 굳어져 갔다. 그런 내 앞에서 하염없이 울면서 ‘어떻게 해...어떻게 해...’만 반복하며 말하던 그가 말했다.
은영아. 내가 더 멋진 남자가 되어 네 앞에 다시 설게.
그렇게 가슴 아픈 이별 후 함께 사업을 하면서 생긴 금전적 빚마저 모두 그가 떠안고 갔다. 그 뒤로도 그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시대에 흔치 않은 그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은 나에게 수많은 영감을 선물해 주었다.
그와 헤어지고 2년 후 ‘내 인생에서 이런 사람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그에게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그러자 평소처럼 매우 신중한 태도로 말했다.
은영아. 지금은 신이 너에 대한 내 마음을 가져가 버리신 것 같아.
그의 어머니는 5년의 시간 동안 내게 안부전화를 하시며 단둘이 만나 참사랑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렇게 나 역시 5년의 시간 동안 다른 남자를 사귀지 않으면서 자신을 성찰했다.
그동안 나는 모든 것을 내게 맞춰주며 나 밖에 모르는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야 행복하다고 믿고 살았다. 그리고 그런 이기적인 마음과 믿음으로 그와 재회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사건, 한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사랑의 신은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얘야. 여전히 많은 여자들이 안정과 행복을 결혼에서 찾고자 한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과 안정은 결혼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감정이 아니란다. 오히려 그러한 마음으로 결혼을 하게 될 때 더 큰 허무함과 고통의 눈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너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기 위해 집중하는 삶보다
네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라.
그렇게 때가 되면 반드시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인연이 나타나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기에 완벽한 인연 또한 없음을 기억하라. 완벽해 보이는 인간조차 불안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라. 수시로 변하는 인간의 감정과 타인의 삶 안에서 완전한 행복과 안정을 찾으려 하는 이는 죽는 순간까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무엇보다 사랑에서 오는 지혜를 구하여라. 완벽한 연애와 결혼 생활은 불가하지만, 지혜로운 연애와 결혼 생활은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이탈리아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그 사람에게 선善과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다.’
사랑은 호르몬 이상 작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설레는 감정이 아니었다. 주변 기혼자들의 조언처럼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어 정 때문에 또는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관계도 아니었다.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처럼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와 결혼은 서로에게 행복한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선을 베풀겠다는 약속의 실현인 것이다. 이처럼 자신 안에서부터 사랑의 약속이 자라나 그러한 삶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올바로 자신과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얘야. 주변에 연인들을 잘 살펴보아라. 불행한 사람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서로의 불행에서 건져 줄 구원자이길 바라며 만나게 되면 더 큰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게 될 뿐이다. 오히려 행복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더 행복하고 사랑해주기 위해 함께 할 때 진정한 협조자가 되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란다.
사랑, 인연이란 단어를 섣불리 내뱉지 마라.
사랑, 인연이란 시작할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완성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좋은 인연과 참된 사랑을
만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좋은 자신을 만들어 가는
좁은 길 위에 있다.
언젠가 헤어진 남자친구의 손에 들려져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IQ84’란 책 표지를 보았다. 지금까지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우연히 그 책 안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이 이 몸을 에워쌌사옵니다. 머리카락보다도 많은 나의 죄에 덜미가 잡혀 낙심천만 눈앞이 캄캄합니다. (시편 40,12)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해하는가?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나를 구해 주신 분, 나의 하느님, 나는 그를 찬양하리라. (시편 42,5)
*실망한 사람 옆에 야훼 함께 계시고 낙심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신다. (시편 34,18)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 “ (신명기 31,8)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히브리서 12,5)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루카 복음서 18,1)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겪는 환난 때문에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환난이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에페소서 3,13)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코린토 2서 4,16)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끄러워 숨겨 두어야 할 것들을 버렸으며, 간교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를 드러내어 하느님 면전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 앞에 우리 자신을 내세웁니다.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코린토 2서 4,1-3)
*그러자 주님의 천사가 포도밭들 사이, 양쪽에 담이 있는 좁은 길에 섰다. (민수기 22,36)
*지혜를 얻고 예지를 얻어라. 내가 한 말을 잊지 말고 어기지 마라. 지혜를 저버리지 마라. 그것이 너를 보호해 주리라. 지혜를 사랑하여라. 그것이 너를 지켜 주리라. (잠언 4,5-6)
*지혜의 교훈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영광에 앞서 겸손이 있다. (잠언 15,33)
*제 마음을 신뢰하는 자는 우둔한 자이지만 지혜 속에 걷는 이는 구원을 받는다. (잠언 28,2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하셨습니다. (토빗기 8,6)
*나는 야훼라, 나는 변하지 않는다. (말라기 3,6)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13,8)
*지혜는 비록 홀로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 모든 세대를 통하여 거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하느님의 벗이 되게 하고 예언자가 되게 한다. (지혜서 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