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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사랑 앞에서, 운명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by 이은영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10년 전 우린 이제 끝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비로소 듣게 되었다.






△△: 은영아 내 이야기 못 들었겠지...

나 곧 결혼해...

시작과 끝을 사람인 내가 알 수 있을까 싶지만, 곧 결혼한다는 건 사실이야. 은영아 질문에 답이 됐는지 모르겠네. 내가 직접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될 줄 몰랐는데 내 마음이 편하질 않네...


다행이었다. 그의 결혼 소식을 그에게 직접 전해 듣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니 다행을 넘어 기쁘고 감사했다. 3개월 동안 매일 그의 행복을 위해 기도한 후 연락한 것도 신의 한수라고 느껴졌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상실감에 내 삶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랑이 아닌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의 기도는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마음을 선물했다. 10년 가까이 꿈속에서도 그의 행복을 진정 바랐으므로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오랜 시간 내 기도는 이루어진 것이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와 결혼할 그녀를 존중해 준비해온 말을 삼켰다. 그의 어머니에게도 마지막 안부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마법에서 풀린 듯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와 삶을 통찰할 수 있었다. 비로소 기적처럼 상처가 치유되며 과거에 묶여있던 내 영혼은 자유로워졌다. 훗날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그때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으리라.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을 읽고 낯선 사람들과 독서토론을 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다. 아마도 읽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한 사람의 세상이 1000자라는 글자 속에 녹아 나에게 다가오고 나의 세상도 그들에게 그렇게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같은 공간에서도 각자의 시선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겠지.

그래서일까? 타인 앞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일은 언제나 떨린다.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저마다 살아온 환경과 현재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같은 목련을 바라보고도 누군가는 지저분하다 손가락질하지만, 누군가는 목련의 낙화를 지지할 것이다. 이처럼 곱지 않은 또 다른 시선에 대해 두려움은 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과 같이 그 사람의 모든 삶을 알지 않는 이상 너도나도 편협한 시선은 마찬가지일 텐데, 그것이 두려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보다 처량한 인생이 또 있을까?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도 성장한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다양한 시선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서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면 서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됨은 재앙과도 같다. 하여, 오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세상에 반짝이며 사랑도 미움도 받을 용기를 낸다.

울음과 웃음처럼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들이 사람에게는 존재한다. 사랑하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사랑 고백 또한 모두의 가슴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한이 소리가 되어 노래하듯, 흑인들의 애환이 랩이 되어 노래하듯,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모든 이의 마음이 바로 시가 된 것이 아닐까?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 속에는 다양한 시와 노랫말이 소개되며 다채로운 삶을 재조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목련 후기의 시를 읽으며 떠올랐던 한 편의 시와 같은 IKON의 ‘사랑을 했다’를 소개해 본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볼만한 멜로드라마
괜찮은 결말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우리가 만든 LOVE SCENARIO
이젠 조명이 꺼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조용히 막을 내리죠
에이 괜찮지만은 않아 이별을 마주한다는 건
오늘이었던 우리의 어제에 더는 내일이 없다는 건
아프긴 해도 더 끌었음 상처가 덧나니까 Ye
널 사랑했고 사랑 받았으니 난 이걸로 됐어
나 살아가면서 가끔씩 떠오를 기억
그 안에 네가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사랑’이란 키워드는 나에게 있어 삶을 살아가는 존재 이유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하고 돈 벌며, 사람을 만나고 취미 생활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 말씀처럼 사랑은 나에게 하느님이어서 평생을 귀 기울이고 배우며 체험해가는 존재다. 사람에게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존재가 곁에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도 내 삶의 이유인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지난날의 어리석음과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중이다. 어리석음과 실수는 고통을 동반하고 슬픔을 선물했다. 그리고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세상을 소개하며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후기를 마친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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