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인간
패션에 관심 많던 여중생이었을 시절, 2살 터울인 친오빠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일본어가 전공인 오빠 덕에 교환 학생이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 정도 살았다. 그런데 남고생이 아닌 여고생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トキコ. 마치 볼 터치를 한 듯 유독 두 뺨이 발그레한 수줍음 많은 소녀였다. 일본 여자는 다 저렇게 상냥 열매를 백 개씩 먹고 예의가 바른가 싶을 정도로 친절했다. 그런 토끼꼬가 우리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내 선물까지 사서 왔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사쿠라가 새겨진 동전 주머니와 한 달 앞선 최신판 논노 잡지였다. 세상에! 그렇게 토끼꼬는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와 한방을 썼다. 큰 리본이 달린 세일러 교복에 니삭스를 신은 일본 여고생과 한 방을 쓴다니... 너무나 신기하고 설레어서 달빛에 토끼꼬 얼굴을 쳐다보며 혼자 웃다 걸리곤 했다. 그때부터 일본을 향한 동경은 더 크게 자라났다. 언젠가 일본에서 마음껏 패션을 보고, 입고, 만지고, 누리며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앙큼한 다짐은 대학에서 4년간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게 했고,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 유학까지 가게 했다.
생의 첫 도쿄 여행은 다니던 디자인 회사에서 일주일 출장으로 갔던 것인데, 사표를 쓰게 만든 계기가 됐다. 사장님은 충직한 일꾼이 되라며 출장 겸 여행을 보내주셨지만, 나는 더 늦기 전에 일본에서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것이다. (사장님 잘 지내시죠? 마지막에 웃으며 보내주셔서 감사했어요)
오사카에는 중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가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결론은 아무 연고도 없는 도쿄로 떠났다. 그리고 도쿄에 도착해서 무촌도 일촌으로 만든다는 싸이월드에 이런 글을 남겼다. 며칠 전 먼지 쌓인 싸이월드를 뒤져서 찾아낸 원문 그대로를 복사하여 붙여넣기를 해본다.
25 내 나이...
어떤 이들은 많다 할지 모르고
또 어떤 이들은 적다 할지 모른다.
세상엔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모두 느끼는 것이 다른 것처럼
내 인생을 두고 좋다 나쁘다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일본유학을 간다며 한심하다 하는 이도 있고
너 하고 싶은걸 하기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말하는 이도 있다.
사실 난 그 어느 말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일본에 온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나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 속에 얽혀서
기죽지 않고 이은영 자체로 살아보고 싶었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이곳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됐다 싶으면
유럽 쪽으로 가서 또 그들의 말을 배우고 문화를 배우며 살고 싶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단지 돈을 벌기위해 아등바등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죽을 때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지금 내게 그럴만한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생각과 감정을 풍요롭게 만들고
정말 인생을 아름답게 즐기며 살고 싶다.
경력을 쌓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에겐 아직 그것보단,
해보지 못한 것을...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그것에 손을 뻗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한때는 내가 남자였으면 했다. 내가 남자라면 좀 더 과감히 행동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서였지만 지금은 여자로 태어난 걸 감사한다.
내가 남자라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에 지금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남자들에게까진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 돈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양보하지 마라. "
우리 엄마가 늘 내게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딸아...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마음껏 누리며 살아라."
난, 이 세상 모든 딸들이 그랬으면 한다. 미래의 내 딸아이도...
당시 많은 학생이 3~6개월쯤 되면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나는 그럴 일 없다고 말했으나, 유학원에서는 장담하지 말라며 오픈 티켓을 끊어주었다. 오픈 티켓이란 존재를 알게 된 건 그때였다. 가는 날짜는 정해져 있어도 오는 날짜는 OPEN. 1년 안에 언제든 공석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때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티켓이다. 그렇게 오픈 티켓을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둔 채 일본 생활은 경쾌하게 시작됐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로 가득했기에 지금 떠올려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어떤 추억들은 입 밖으로 꺼내 마구 자랑하고 싶지만, 알맞은 주제를 만나 제대로 자랑하기(응?) 위해 지금은 진정하겠다. 대신 삶의 시선을 바꿔 놓은 일화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은 2015년 sns에 끼적였던 글인데 그대로 불러와 보겠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