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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 삶을 더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by 이은영

“작가란 글로 남길만한 행동을 한 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로부터 작가란 직업을 가진 이들은 존경의 대상이었죠. 물론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이 가진 파급력은 상상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한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바꾸기도 하니깐요. 그래서 전 글을 쓸 때 나비효과를 생각해요.

제 육신은 죽어 땅에 묻혀도 제가 쓴 글은 이 땅에 살아남을 거예요. 그래서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전 세계 이들에게까지 전해져 그들의 삶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 믿고 있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소명 의식에 솔직한 글을 쓸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영원한 생명'에 관한 저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남들이 이 글을 통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라는 사람이 근사하게 잘 보이고 싶다는 에고(ego)의 감정에 휩싸여요. 그래서 글을 쓰기 전 기도를 하며 내가 아닌 내 안의 사랑이 드러나는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성경에서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복음 3,30)라고 표현합니다. 저의 에고(ego)는 더욱 작아지고 제 안의 진리는 더욱 커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이전 독서 모임 마지막 만남에서 ‘여러분에게 돈과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새로운 소설 하나를 쓸 수 있다면, 어떤 장르의 어떤 내용을 소재로 써보고 싶나요?’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 일부다.

내 삶의 주제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안에 세부적으로 나뉠 뿐이다. 사랑보다 기적적이고 위대한 주제를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만약 있다면 꼭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모습이다. 진정한 사랑의 체험은 어김없이 눈물과 웃음과 기쁨이란 3단 쓰리 콤보 감동을 준다. 이 모든 것을 공짜로 선물하는 사랑에 관해 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글을 쓰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찬사와 존경과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속물근성이 꿈틀대는 처자인지라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첫 고료를 받고 세금을 떼었을 때 어퍼컷을 날리며 끼야호!를 외치던 내가 아니었던가-따라주지 않는다고 해도 절필할 이유는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체험한 사랑 이야기를 직, 간접적으로 쓸 때 가장 먼저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최고 좋은 것을 나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주는 일은 그 자체로 보상이며 가치를 따질 수 없다.


‘유혹하는 글쓰기’ 저자 스티브 킹의 글을 읽으면서 어찌나 친근감이 느껴지던지... 괴짜같은 모습에 반가웠다. 우선 글을 쓰는 이유가 같았다.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 (308쪽)


그리고 작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생각도 같았다.


꿈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과연 남의 허락이나 출입증이 정말 필요할까? 누가 여러분에게 ‘작가’라는 종이 명찰을 달아주어야만 자신이 작가라는 사실을 믿겠는가?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 (291쪽)


‘강원국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작가님과 독서 모임 멤버들 앞에서 ‘글을 잘 쓰는 자기만의 비법’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 카톡 프사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에요. 자전거를 세우려면 페달을 뒤로 돌려야 하죠. 그걸 코스트브레이크라고 합니다. 초등학생 때 처음 두발자전거를 배웠는데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잘 타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다쳐봤겠습니까?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끊임없이 글을 쓰고 공개하는 있는 이유는 서툴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후배들이 '이은영 작가님도 처음엔 글을 이렇게 거지같이 썼구나.' 하겠죠. 그들에게 진정한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어요. 제가 성공하고 나서 하는 백 마디 조언보다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쓴 부끄러운 글 하나가 더 큰 의미를 부여해줄 거예요.

저는 초등학생 때 꿈이 디자이너였고 그 꿈을 이뤄봤습니다. 이루기까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원했는지 아는 순간은 그것을 가져봤을 때였어요. 지금은 어릴 때 이룬 꿈이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요.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저는 세계적인 작가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강원국 작가님. 언젠가 필드에서 뵙겠습니다."

진정 미친 것인가? 제정신이라면 대한민국이란 문화 속에서 초면에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기 쉽지 않음을 이웃집 찰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저렇게 생각하고 사는 나인 걸 별수 있겠는가. 침묵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서 어떻게 나와 같은 부류의 동료와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겠는가.

‘악플은 읽지 않는다’는 강원국 작가님의 현명함은 남달랐다. 괴짜 청년에게 ‘정신 차리고 겸손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구석에 벽보고 서게 하거나, 생각하는 의자에 앉히는 대신 이렇게 답하셨으니 말이다.

“이은영 작가님은 세계적인 작가가 될 거예요. 진짜로 세계적인 작가가 될지 안 될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작가님 같은 사람은 세계적인 작가가 될 때까지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죠. 글을 쓰려면 저런 자신감이 필요해요."


세계적인 작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글 쓰는 기술 보다, 글 쓰는 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더 많은 무게를 싣고 있다. 나도 언젠가 이은영의 글쓰기를 집필할 텐데 (예! 예 암요) 스티븐 킹과 비슷하여 ‘한국의 여자 스티븐 킹’과 같은 억울한 타이틀이 붙지 않을까 염려된다. (읭?)

미국에 사는 내 친구 스티브 킹은 (누가 여러분에게 ‘친구’라는 종이 명찰을 달아주어야만 자신이 그의 친구라는 사실을 믿겠는가?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통해 우린 더욱 친밀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자신이 옳음을 증명받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호의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 삶을 더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332쪽)


처음 글을 쓰고 세상에 드러내기를 두려워할 때 내 안의 그분이 말씀하시길


“네가 쓴 글은 반드시 그 이야기가 필요한 이에게 전달되어 네게 그러했듯이 용기와 위로를 선물해 줄 것이다. 글은 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를 찾아가 만나고, 다시 세상 끝에서부터 너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끌어다 모아 줄 것이다. 그들이 네 곁에서 천군만마가 되어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닮은 사람을 좋아한단다. 그러니 아무 염려 말고 솔직하게 네 이야기를 써라.”


어떤 사람이 미쳤을 때는 무엇이든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나는 그 말씀을 믿고 오늘도 쓴다.



https://brunch.co.kr/@yoconisoma/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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