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얻은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2018년 10월 16일 새벽 6시. 요즘 몸이 이상하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데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진다. 그렇게 침대에 누운 채로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브런치 댓글 알림 메시지가 떴다. ‘이 새벽에 댓글을 다는 사람이 누구지?’ 어떤 글에 누가 무슨 댓글을 달았는지 클릭하여 바로 확인했다.
매거진 : 일상의 작은 메모
제목 : 2018 – 10 / 15 월요일. 날씨 : 맑음
by 이은영
먼저 이별을 말하고도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던 이유는
당시 철없는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네가 얼마나 아팠을까...’하는 자책 때문이었다.
새로운 연인을 더 아껴주고자 했던 이유도
예전과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됐다.
결국,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은
나였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하신 계명입니다. (갈라티아서 5,14)
윗 글에 달린 댓글은 이러했다.
Serim Kim Oct 16.2018
(적어도 저한테는) 커다란 목표를 여럿 이루고 나서도 다음 목표를 향해서 쉴 새 없이 살고 있는 제 모습에 회의가 느껴지던 중에, 문득 얼마 전부터 기르게 된 고양이 두 마리가 정말 큰 행복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구글에서 “행복하다고 느껴질 때” 로 검색했다가 작가님이 16년 11월 6일에 쓰신 글을 보고 울컥했네요. 브런치라는 곳도 방금 전 처음 알게 됐는데 세상 참 좋은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어두운 밤 자고 있을 때도 2년 전 쓴 글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2016년 11월 6일에 내가 무슨 글을 썼더라?’ 브런치를 뒤적거리며 열일하는 글을 다시 찾아 읽었다.
매거진 : 그대와 나누고 싶은 따뜻한 한마디
제목 : 너무 심각하게 기를 쓰고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된단다.
소제목 : 네가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행복하다 느껴지지 않을 때
by 이은영
사랑하는 얘야.
삶의 무게가 네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할 때,
지금의 말들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인생은 축제란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기를 쓰고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된단다.
훌륭해 보이는 일을 이루기 위한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인생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세운 큰 목표가
때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수 있다.
네가 보기에 그 일이 좋아 보일지 몰라도
인간적인 열정은 종종 분별력을 상실하게 한다.
타인에게 찬사와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애쓰는 삶만큼 허무한 인생도 없단다.
항상 기억해라.
사람이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란다.
이것을 기억할 때 자신을 삶의 노예로 만들던
족쇄가 풀리면서 주인의 자리를 되찾게 될 것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품게 된 꿈과 소명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인간 삶의 최종 목표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한 말씀
*그리고 나는 모든 노고와 일의 성공이 서로 남을 시기한 결과일 뿐임을 깨달았다. 이 또한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코헬렛 4,4)
위의 글은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글쓰기에 매진하던 시절 깨닫게 된 내용이다. 내면에서부터 들려오는 말씀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미래의 내 아이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누군가를 위해 기록해 두었다. 2년 뒤, 예전의 나에게도 그러했듯이 한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위로와 힘을 주고 있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에 관해 이렇게 썼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것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것에 맞게 살아야 한다.
방법만 배운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재주가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시사평론과 칼럼, 논술문과 생활 글은 더 그렇다. 은유와 상징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로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 살면서 얻는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그 감정과 생각이 공감을 얻을 경우 짧은 글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260~261쪽)
나는 유시민 작가의 문장을 나만의 표현으로 기록해 본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거라면 영혼은 서서히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이유가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우리의 영혼은 죽기 전에 이 땅 위에서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도 아니요.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의 축적으로 쓰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재능으로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위대한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하여, 글쓰기를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의 삶을 살면 좋은 글은 사랑의 진리에 의해 저절로 쓰인다. 사랑의 진리는 세대와 국경을 넘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킨다.'
위의 글은 내 브런치 독후감 댓글에서 영감을 얻어 인용해 본 것이다.
매거진 : 신이 들려준 이야기
제목 :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
소제목 : 내 안의 이야기를 완성하면 글이 된다
by 이은영
댓글 : 청년의 신학 Nov 18. 2018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인격이 묻어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잘하고 계신 것 같네요. ^^
2년 전부터 브런치에 3개의 매거진을 발행하여 글을 쓰고 있다. 내용은 서로 연결되는데 굳이 나눈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신이 들려준 이야기’ 매거진만 발행해서 글을 올렸다. 그리고 단톡방에 읽어보라며 링크를 보냈다. 다음 날 이런 말을 들었다.
‘너무 길어서 못 읽겠어. 나는 긴 글은 읽기 힘들어.’
망할. 서운했다. ‘그게 얼마나 감동적인 내용인데 읽어보지도 않고 길어서 못 읽겠다고? 무식한 연놈들.’ 이라고 생각하고 끝냈다면 어땠을까? Serim Kim 님이 내 브런치 글을 발견하고 댓글을 남기는 일은 늦어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이 글도 못 썼을 것이다. 모두에게 재앙이다. ‘신이 들려준 이야기’가 너무 길다는 의견 덕분에 ‘그대와 나누고 싶은 따뜻한 한마디’ 매거진이 탄생했다.
긴 글을 읽기 힘들다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그 이유를 물으니 긴 글은 지루하고 그래서 평소에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는 불특정 다수에게도 어떻게 하면 내 글을 읽게 만들 수 있을까?‘ 밤낮으로 생각했다. '그대와 나누고 싶은 따뜻한 한마디'도 나름 짧은 글이지만 브런치를 클릭해서 들어가 봐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SNS를 즐기는 사람은 이미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고, 알지도 못하는 이의 글을 읽기 위해 클릭하는 수고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떠오른 게 ‘일상의 작은 메모’다. 글과 어울리는 감성 이미지 위에 짧은 메모를 남겼다. 분명 글이지만 사진 파일이기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도 이미지로 볼 수 있다. 그러자 조금씩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인은 물론 모르는 사람까지 자신의 카톡 프로필이나 SNS에‘일상의 작은 메모’ 이미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중 누군가는 내 이름을 삭제한 채, 또는 자신이 쓴 것처럼 올리기도 했지만, 결론은 신기하고 좋았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심리가 또 한 번 이해됐기 때문이다. 한 사건 속에서 일어난 서로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느끼면, 그만큼 깊이 있는 글은 탄생하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2년의 브런치 활동인 ‘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장문, ‘그대와 나누고 싶은 따뜻한 한마디’는 중문, 마지막으로 ‘일상의 작은 메모’는 단문을 쓰는 훈련이 됐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음을 쓰다 보니 지혜가 생겼고, 언제나 그렇듯 가장 큰 수혜자는 내가 됐다.
진리에 따라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결국 모든 일은 자신의 성장을 돕는 최고의 상황이 된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듣기 좋은 의견이든, 듣기 거북한 의견이든 타인의 의견은 훌륭한 글감이 된다. 무엇보다 내 글을 읽고 의견을 낸다는 것은 독자의 관심 표현이다. 물론 작가에겐 칭찬과 공감 댓글이 가장 감동적인 건 사실이나, 모든 이가 내 글에 공감하고 칭찬만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관심과 무플보다 글감을 던져주는 뒷담화나 악플이 낫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혜를 구할 때 비로소 위대한 작가도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