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이 되다>, 마틴 게이퍼드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된 동료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은영 님은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 같아요."
"어...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세상에! 그걸 안다는 건 당신도 다른 사람을 관찰한다는 거잖아요)"
그의 말은 옳았다. 나는 생존 본능에 의해 사람과 사물을 관찰한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 계기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고,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유괴를 당한 경험에 있다. 관찰 능력 덕분에 나는 예술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유괴범으로부터 안전하게 풀려날 수 있었다. 어쩌면 예민한 직감과 관찰력은 예술가의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두 개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관찰 능력이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화가 루시안 프로이트 역시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기도 하다) 초상화가 될 모델을 관찰하는데 몇 시간, 몇 개월, 심지어 몇 년을 할애하기도 한다. 이는 카메라 렌즈가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기록하게 해 준다. 그는 모델을 관찰하다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기도 하는데, 모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거나 자신에게 위험을 가할 수 있음을 감지할 때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이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각인데, 말 그대로 본능에 가깝다.
마틴 게이퍼드가 쓴 <내가, 그림이 되다>에서는 예술가 프로이트의 기질에 대해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프로이트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서술한다.
프로이트는 초등학교 때 구두끈 매는 법을 배웠는데, 그런 방식으로 다시는 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는 예술가들의 성향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주된 특징 중 하나가 권위나 주어진 규칙에 반항적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술가는 남들과 다름을 축복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자기만의 매력이 없는, 흔히 개성이 없는 사람은 모델로써 거들떠보지도 않는 프로이트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개썅 마이웨이를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그렇게 살아간다. 이러한 기질 덕분에 세상 사람들은 예술가를 두고 흔히 괴짜나 또라이 기질이 다분하다는 표현을 쓴다. 책에도 등장하는 고흐나, 고갱, 피카소나 조지 오웰 같은 예술가는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려는 군중과 달리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자들이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기만의 길을 걷는 일은 고단하다. 세상 속에서 이러한 부류는 이방인, 이단아로 분리되고 문제아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에고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장기적인 활동은 초기 단계의 흥분을 거쳐 낙담의 시기를 지나면서도 계속해서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의욕'이라고 부르는데, 오로지 내면의 방향 감각에 의지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하고, 전적으로 내부에서 부가되는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그러면서 자신이 세운 그 목표가 계속해서 전력을 다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욕과 신념을 유지하는 데는 올바른 성품이 뿌리가 된다고 말한다.
성품이 전적으로 간악하면서 항상 자신감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기는 매우 힘듭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거의 악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p.131)
작가 마틴 게이퍼드는 오랫동안 고흐에 관한 책을 쓰고, 프로이드를 옆에서 관찰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프로이드는 삶의 환희를 향해 삶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와 예리한 재치를 집중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초기 드로잉에서 드러나며 비록 종종 숨어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품 속에 존재한다. (p.153)
또한 프로이드는 여든이 넘었고 쉬지 않고 작업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젊다고 기록한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말한다. 나이란 그저 시간의 속임수일 뿐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2011년 7월 20일에 사망한 그는 죽음에 대해 빈센트 반 고흐와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멋진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p.236)
나는 우리 모두 안에는 예술가 기질이 있다고 믿는다. 책에도 나와있듯이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어떤 공간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달라진다. 고흐의 말처럼 동일한 사람이 아주 다양한 초상화의 소재가 되듯이, 인간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여, 하나뿐인 나, 한 번뿐인 애틋한 우리의 삶을 위해 세상을 향해 개썅 마이웨이를 외치며, 예술가와 함께 인생 여행길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