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레오 버스카글리아&<두 교황>페르난도 메이렐레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두 교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교황 프란치스코(당시에는 추기경)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같은 하늘 아래 두 명의 교황이 살아 숨 쉬는 일이 가톨릭 역사상 600년 만에 벌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동일한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의 수장이었지만, 영성부터 전혀 달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통과 교리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인물인 반면, 교황 프란치스코는 개혁과 자비를 중시하는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두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눌 때면 신학적 대립으로 인해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성격마저 극과 극이어서 서로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재확인할 뿐이었다.
국가, 신념, 문화, 종교, 정치 성향, 취향, 가정환경, 성격 등등 나와 다른 사람을 견딘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래!"라고 맞장구치는 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전에 <하버드 사랑학 수업>과 <더 랍스터>를 통해 배웠듯이, 그러한 태도는 자기 안의 에고를 키우며 나르시시즘을 강화할 뿐이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태도이기에 지양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태도가 행복과 축복의 땅으로 넘어가려는 발목을 붙잡기 때문에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은 그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상영 내내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건강 메이트는 그의 허리춤에서 이렇게 외친다.
"멈추지 마세요. 계속 움직이세요."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전통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변화는 타협이다."라고 말했고, 개혁파 교황 프란치스코는 "변화와 타협은 다른 것이며, 주님께서 주신 삶은 변화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되받아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장소를 옮겨가며, 대립각을 세우면서, 서로의 세상을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눈물의 방으로 함께 들어가더니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서로의 상처와 실수와 나약함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로또처럼 그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낸 것이다.
드디어 평행선 같던 두 교황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다리를 짓기 시작한다. 카메라 앵글은 두 사람이 만나 눈빛을 교환하고, 목소리에 경청하면서,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따라다닌다. 그러한 과정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을 모두에게 시사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영성이 틀린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필요한 하느님의 계획이었음을 두 교황과 더불어 관객은 깨달아간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변화를 위해 떠나야 할 때임을 인지하며,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고해성사를 받는다. 더불어 과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교황의 자리를 마다하는 교황 프란치스코에게도 강복을 빌어준다. 전통을 중시하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혁명가로 변하게 된 과정과, 혁명을 중시하던 교황 프란치스코가 가톨릭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 과정을 보며 놀라운 신의 계획과 지혜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참다운 지식과 사랑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인간관계 안에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결론을 얻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다양한 시선을 나눌 수밖에 없다.
닥터 러브라 불리는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저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이 모두가 정당하고, 이 모두가 소중하고, 이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걸 끌어안으십시오. 모두가 여러분의 일부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게 신비로운 겁니다. 이유는 묻지 맙시다. (p.276)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실행에 옮기십시오. 그 목소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디 제 말씀대로 해보십시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믿음을 가지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본래의 나를 만날 수 있고, 무엇이 나를 위해 가장 올바른 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P.394)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계속해서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본래의 모습 전부를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이 독특하게 태어난 이유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이며, 그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는 데 인생을 바쳐야 한다. 건강한 관계는 누가 누구에게 흡수되는 게 아니라 손에 손을 잡고서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
내가 1년 넘게 4개의 독서 모임 파트너를 맡았던 가장 큰 이유 또한 이와 같다. 나와 다른 이가 자신의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안심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나 또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독서 모임을 통해 100명이 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의 다채로운 반응을 살피며,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는 훈련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위해 떠나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인생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나 역시 내면에서 울리는 사랑의 소리를 따라 신과 함께 세상 위를 걸어간다.
P.S. "주님이 날 버려서가 아니라 '가거라 내 충성스러운 종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을 하며 고백했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