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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감정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바꾸는 비법

<불안> , 알랭 드 보통

by 이은영

#자기 안에 존재하는 신을 만나라


정신분석 용어 사전에 따르면 '불안'은 불쾌한 일이 예상되거나 위험이 닥칠 것처럼 느껴지는 불쾌한 정동 또는 정서적 상태라고 한다. 일상의 철학자라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인 <불안>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간이 불안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현대인이 불안을 느끼는 원인에 관해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p.8)


2018년 ~ 2019년까지 JTBC에서 방영한 <SKY 캐슬>은 역대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찍은 드라마다. SKY 캐슬이 대한민국에서 그토록 인기를 끌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습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오직 서울 의대만이 성공한 인생이며,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지 못하면 패배자로 낙인찍는 병든 세상 속에서 불안한 인간 내면을 스크린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반면 극 중 작가인 이수임 역(이태란)처럼 SKY 캐슬 안에서도 진리를 따라 자신의 길을 걷다 보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떨쳐내려 애쓰기보다 '생존 신호'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 또한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만의 기준을 잡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는 신호 말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늘어날수록 두려워하던 많은 이들이 용기를 얻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결국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책을 통해 고백한다. 헤르만 헤세 역시 두려움이란 감정에 관해 <데미안>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왜 두려워할까? 사람은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걱댄다고 느낄 때 두려워져.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겠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그런데 사회는 자신의 내면을 몰라서 두려운 자들로 이루어졌지!(중략)한 사람을 죽이는 데 몇 그램의 화약이 필요한지는 정확히 알지만 신에게 기도하는 법은, 단 한 시간만이라도 행복해질 방법은 전혀 모르는 거야. 학생 주점 같은 곳을 한번 봐! 혹은 부자들이 드나드는 오락장이라도! 절망적이야. 싱클레어, 어디에도 명랑함이 없어. (p.185~186)


이러한 인간 심리를 꿰뚫고 있는 성서에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역사적으로 보면 군중의 무리 속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고 자기의 길을 걷던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진리 속에서 자기 길을 걷던 예수나 싯다르타도 당시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성경과 아함경에는 기록돼 있다. 물론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인의 평가와 세상의 잣대에 자기 삶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기 안의 중심이 없으면 누군가 제시한 성공의 기준에 휘둘리게 되고, 그로 인해 자기 통제권을 잃어버리면 '불안'해지고 열패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불안'이라는 감정을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만드는 비법은 '내면의 소리를 믿고 따르는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불안이란 감정이 자신을 집어삼키도록 허락하면 그 순간부터 삶은 지옥이 된다. 그러므로 위대한 작가나 현인들의 증언처럼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 믿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불안'이라는 감정 또한 인생의 맛을 내는 조미료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2019년 11월 8일 나는 은퇴했다. 단순 퇴사가 아닌 전공이었던 디자인 계열의 일은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이다. 새로운 꿈을 향해 가는 길에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건너온 다리를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 불태웠다.

그러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나이 기준으로 앞자리 수가 바뀌었고, 누가 정한 건지도 모르겠는 결혼 적령기를 넘겼으며, 꿈을 이루게 해 준 전공을 버리고 무직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한 줄이 당신의 이야기라고 상상해보라. 아마 대부분 '불안'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위축된 상태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와 가족은 '감사'와 '축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말이 그렇지 설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겠어?' 그렇다면 더욱더 믿기 힘든 신비한 세상을 나눠보겠다. 아마 이 이야기가 끝나면 누군가는 -과거에도 숱하게 들었듯이- 내가 미쳤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며 살 것이다. 알베르 카뮈도 <결혼, 여름>을 통해 고백했던 것처럼, 나 또한 11년 전 과거의 나는 죽고 새롭게 부활하여 보게 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나 혼자서만 누리려고 탐할 만큼 약하지 않다.


나는 작년에 2020년을 앞두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년간 해오던 4개의 독서 모임 파트너 활동과, B2B 독서 모임 파트너도 합격하여 교육 기간 중이었다. 게다가 북튜버 활동 계획도 세우며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도 만나러 다녔다.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착착 진행됐다. 그런데도 내면의 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내면의 소리를 듣고 아이폰에 기록해 두었던 내용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내면의 소리를 듣고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의 높은 IQ만 믿고 세운 계획에만 열중했다. 그러다가 2020년 12월 29일에 글쓰기 벙개인 ‘망월장’을 통해 계획이 무산될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작년 1월 글쓰기 독서 모임 첫 책으로 맨부커상을 거머쥔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선택했었다. 당시 다양한 인간 조합의 화학 작용에 관해 글을 썼는데, 그때의 글이 마치 예언처럼 글쓰기 모임에서 벌어졌다. 어떤 트라우마를 가진 멤버와 영화감독이 꿈인 멤버, 그리고 작가가 꿈인 나와의 사이에서 파괴적인 화학반응이 일어났다. 영화감독이 꿈인 멤버가 자신의 이름과 다른 멤버의 이름을 넣어 (참가자 이름을 넣는 것에 사전 동의함) 브로맨스에 관해 글을 쓰고 낭독했는데, 멤버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폭발한 것이다. 그는 울며 격분했고 멤버들의 사과와 대화 요청을 거부한 채 독서 모임 회사 측에 신고했다. 그리하여 글쓰기 모임의 파트너인 나에게 총책임을 물면서, 맡고 있던 4개의 독서 모임과 B2B 교육과정도 모두 내려놓게 됐다. (기회가 되면 이 사건에 관해 자세하게 써보겠다) 그렇게 2019년 11월 26일에 기록해 두었던 내면의 소리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현실이 됐고, 덕분에 올해는 부모님과 인생 추억을 쌓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는 엄마와 시간을 보내며, 삼시 세끼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삶에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배워간다. (이 또한 미래의 내 가정을 이룰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이번 설날 온 가족이 모였을 때 부모님은 내가 효녀라며 이런 귀한 시간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오빠는 그런 나에게 늘 고맙고 미안해한다. 그래서 언젠가 오빠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자 이렇게 말해주었다.


"자녀가 부모 곁을 떠나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 오빠 가정은 언니와 자식들이야.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니깐 나한테는 여기가 내 가정이야. 그러니까 오빠는 오빠 가정 책임져. 내 가정은 내가 책일 질게."


남들보다 이른 은퇴 후 부모님과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부모님이 그동안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사랑의 깊이를 알아 간다. 이 시간을 통해서 미래의 배우자의 부모님에게도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까지 덩달아 자라는 중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불안'을 느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긴다는 것을 꾸준히 체득 중이다.

헤르만 헤세도 이러한 신비에 관해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얽매 와도,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집중해야 한다. 우리들 마음속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들보다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p. 236)


더불어 교황 요한 13세는 ‘두려움이 아닌, 희망과 꿈에 의지하라. 불안이 아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에 대해 생각하라.’라고 말했다.

나 또한 삶의 체험을 통해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지혜로 우리 삶을 계획하고 이끌어주는 존재가 내 안에 있음을 믿는다. 단언컨대 훗날 위의 스토리는 또 다른 축복의 이야기로 연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죽는 날까지 아무것도 염려치 않고, 사랑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의 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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