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 수업>, 윤광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대상에게 다가가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이다
얼마 전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상장 하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하면서 펼쳐보니 2001년 <제19회 한국 신 미술 대전> 의상 부분 '특선'을 수상하며 받은 상장이었다. 작품명은 -내 기억이 맞는다면-'거미 여인'이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어찌하여 이 상을 받은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일까?
나는 작품을 만들 때 출품을 목적으로 또는 상을 받기 위해서 만들지 않았다. 그저 창의적인 활동이 재미있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기에 집에서 놀이처럼 했을 뿐이다. 수상을 하고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도-주변에 자랑하고 싶어 하신-아버지가 대신 상장을 받아다 주셨다. 지금이라면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내가 갔을 텐데... 그때는 과정의 기쁨에 비하면 결과는 그다지 나의 관심을 끌 만한 대목이 아니었다. 그러한 이유로 상을 받았는지조차 잊고 살 수 있었다. 거미 여인이란 제목도 교수님이 출품을 제안하셨을 때, 그 순간 지은 이름이었다.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 위에(글루건과 크리스털, 구슬, 낙엽, 펄 가루, 낚싯줄 등으로 표현) 붕대로 눈을 가린 여인이 매달려 있는데, 그곳을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거미줄이 옥죄어 오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글쓰기 이외의 예술 활동은 하지 않는다. 이유는 예전만큼 재미와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공자로서 잘하지 못할까 봐 부담스럽고 두렵다) 오히려 가끔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다른 이의 작품을 보러 가는 일이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도슨트를 따라다니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기보다, 나라면 왜 저렇게 그리고 만들었을까를 상상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의도보다 더 깊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데 그러한 태도야말로 예술 감상의 궁극적 목표이며, 예술 세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 입장에서는 그런 관객의 자세가 무엇보다 영광스럽고 머쓱한 일이기도 하다.
예술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대중의 것이 된다. 그 작품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느끼는지는 오롯이 대중의 몫이며 자유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는 재능 이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호평이든 혹평이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강한 멘털(이라고 쓰고 개썅마이웨이라고 읽는다) 장착은 필수다.
#심미안을 가진 이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즐거운 곳으로 변모한다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예술대학에는 create 수업 시간이 있다. 나는 의상을 전공했기에 의상 디자인 일러스트를 그려야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신 미술대전에 출품을 권하신 문제의-교수님이 내 크로키 북을 보시더니 앞으로 나와 칠판에 그대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림 작업이 끝나자 교수님은 오른손으로 턱을 만지시며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 그리고는 내 그림에 온갖 아름다운 수식어와 함께 "햐~!"라는 감탄사를 연발하셨고 동기들에게 날 위한 박수갈채를 요구하셨다. 순간 나의 얼굴은 홍당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모델의 손발을 일일이 그리는 게 귀찮아서 생략하고 휘갈겼을(?) 뿐인데, 창의적이고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교수님의 칭찬에 대역죄를 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의 세계에서는 귀차니즘으로 인한 창조물도 작가의 개성이 된다. (귀차니즘이 만든 만화의 신, 드래곤 볼 작가 오리야마 아키라의 화풍 역시 후대에 만화가들이 사용하는 주류로 정착했다. 누군가의 귀차니즘은 문화를 바꿔 놓기도 한다)
윤광준 사진작가가 자신의 저서인 <심미안 수업>을 통해서 말했던가?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죄가 되고, 성실함이 면죄부로 통하지 않는 분야가 예술이라고 말이다. (p.65) 미술에는 젬병인 친오빠는 태어나서 딱 한 번 그림으로 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유치원 시절 야구라는 주제로 다 같이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야구 경기 모습을 그린 작품 속에서 그의 그림은 매우 독창적으로 보였다. 오빠는 과감하게 야구공 하나만 도화지를 꽉 채울 만큼 엄청나게 크게 그렸다. 그러나 훗날 오빠는 나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은영아, 사실 나는 야구 경기장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 그래서 우선 야구공부터 가운데에 그리고 시작하려고 했지. 그런데 야구공을 동그랗게 그리는 게 너무 어려운 거야. 자꾸 삐뚤빼뚤해져서 그 위에 동그라미 그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동그라미가 엄청 커진 것뿐이야. 그러다가 제출 시간이 다 돼서 그냥 낸 건데 맙소사! 대상이라니..."
그렇다. 예술은 종종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고,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작가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윤광준 사진작가의 말처럼 어쩌다 한 번의 성과는 낼 수 있지만, 원할 때마다 바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실력이다. 그렇기에 모든 세련은 지루한 반복과 연마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심미안을 가진 이들에 의해, 실력이 부족한 누군가의 삶도 따뜻하고 즐거워진다는 진리도 기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