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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Sep 08. 2021

대한민국 상위 12% 되는 게 가장 쉬웠어요!

우리 집이 상위 12%라니...대한민국 소득 상위 12%의 새로운 정의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다섯 글자와 함께 국가는 대한민국 소득 상위 12%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려왔다. 다시 말해, 이번 코로나 19 국민 지원금 지급대상에서 나를 제외한 것이다.


그동안 온 가족이 열심히 살면서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했을 뿐인데,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이 상위 12%라니... 믿을 수 없다.'라며 국민 지원금을 받지 못해 분통을 터트리는 수많은 이웃의 인증과 반응이 뉴스와 댓글을 통해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하루아침에 벼락 상위 12%가 된 사람들

▲ 국민지원금 대상자 탈락 국민비서 구삐를 신청하면 국민지원금 대상자 여부를 알람을 통해 알려준다.


'도대체 88%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만큼 내 주변 사람의 대부분은 국민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며 유리 통장에 한 푼 두 푼 모아 착실하게 세금을 낸 자가, 하루아침에 상위 12%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 시국에 일하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맞벌이 소득까지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자신의 형편을 확인하는 수준은 언제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딘가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88%의 이웃 환경이 존재할 것이다. 오늘 내가 받지 못한 지원금 25만 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그들에게 돌아간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한 개인의 생각일 뿐이고, 재난 지원금을 받으면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했던 또 다른 개인에게는 충분히 아쉬울 수 있는 문제다.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 기준으로 국민 지원금 당락을 판가름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것인가? 라는 화두는 현재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다.


일단은 국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방침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건보료 책정 기준은 좋든 싫든 결국 개인이 소유한 자산의 총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세세하게 들어가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서로 다른 계산법 문제와 1원 차이로 국민 지원금을 받지 못해 억울한 국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핀셋 정책으로 그 모든 상황을 배려하기에는 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이의 신청 제기를 할 수 있는 국민 창구를 열어놓고 있다).


그렇다고 벼락 상위 12%가 된 국민에게 '좀 억울해도 너만 참으면 돼!'라며 그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국민 지원금 취지 자체가 말 그대로 재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지급하는 '국민 지원금'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다시 국민에게 지원되는 이 돈의 출처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민 지원금 제외 대상인 벼락 상위 12%에게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해서, 국민 지원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차라리 모든 국민에게 지원해주고, 나중에 연말 소득공제에서 별도의 방침을 세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이긴 하지만 그래도 코로나 19로 힘들었을, 어쩌다 상위 12%가 된 국민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과거의 방침처럼 모든 국민에게 지원해주고, 자발적 기부 형식으로 돌렸다면, 성실 납부 의무를 다했던 국민의 억울함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판데믹 이후 점점 벌어지는 '부의 격차'

▲ 비대면 원격 노동 개인이 자신의 영역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능숙하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부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질 것이며, 그 격차가 새로운 계급을 창조해 낼 것이다.


하버드 대학 정치 경제학 교수이자 미국의 클린턴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는 지난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한 칼럼을 기고했다.


'코로나 19의 대 유행에 의한 새로운 계급의 분화와 불평등 조명'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코로나 19로 인해 새로운 4개의 노동자 계급 체계가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첫 번째. 원격근무 노동자(The Remotes)는 노트북이나 핸드폰 등 어느 장소에서나 비대면 원격근무가 가능한 노동자로서 코로나 이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입금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필수 노동자(The Essentials)는 감염 위험은 따르지만, 일자리는 유지할 수 있는 직군으로 의사와 간호사, 약사, 택배기사, 농부, 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세 번째. 무급 노동자 (The Unpaid)는 코로나 19 위기로 어쩔 수 없이 무급휴가를 떠나거나 직장을 잃는 노동자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잊힌 노동자(The Forgotten)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감옥, 이민자 수용소, 노인 쉼터에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제외하면 모두가 불안정한 직업군이라는 것인데, 두 번째 필수 노동자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에 원격근무 노동자 외에는 계층 간의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라이시 교수는 이에 대하여 성장에 따른 결과를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 경제학자는 공평과 경제 발전이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 성장이 장기간 지속한 사례를 보면 성장 혜택이 고루 배분되면서 총수요가 늘어났다."


오래전부터 많은 대기업에서는 비대면 사업을 준비해오고 있었다. 단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19가 들이 닥친 바람에 너도, 나도 그 시기를 앞당겨서 오픈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듯이 언택트 마케팅은 앞으로 거의 모든 업종에서 시도 및 정착될 것이다. 학교와 직장은 물론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업무가 노트북과 핸드폰 하나로 원격 노동이 가능해지는 세상이 온다.


따라서 앞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영역에서 비대면 원격 노동을 어떻게 준비하고 능숙하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부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질 것이며, 그 격차가 새로운 계급을 창조해 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의 양극화는 사회적 냉소주의 및 경제 성장을 저해하기에, 경제 성장의 혜택을 고루 나누고 기회는 더욱더 공평해져야 한다.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제도 정치,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은 구성원 간 신뢰와 협동에 근거해야 도모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이야말로 국가 대개혁 최우선 과제이며,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그동안 통념상의 부자들은 엄청난 부를 일군 상류층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2021년에는 안정적인 월급이나 자본(시스템) 소득을 지속해서 받을 수 있는 자를 대한민국 상위 12%로 분류하고 있다.


아무튼 평범했던 국민의 일상에 갑자기 새바람이 불었다. 축하할 일인지 웃기는 일인지 알 수 없게 된 국민 지원금 탈락 인증. 이제는 또 다른 유행어처럼 '상위 12% 답게 살자'는 구호가 떠돌고 있다.   


이번에 국민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상위 12%는 신흥 부자답게 앞으로 플렉스 하며 살자. 우선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서민 국룰 세 가지'를 금지한다.


첫 번째. 요플레 뚜껑에 붙은 거 혀로 핥아먹지 않기! 두 번째. 쌍쌍바랑 더위사냥도 쪼개지 말고 혼자 다 먹기! 세 번째. 쭈쭈바 꽁다리 씹지 말고 쿨하게 버리기!


김부겸 국무총리님의 말씀대로 국민 지원금 탈락에 대하여, 저는 대한민국 상위 12%라는 자부심만 받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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