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것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나의 게으름을 증명(?)이나 하듯이 상황이 대신 결정을 해주었다. 출판사와 계약을 해버렸으니 이제 죽어라고 쓰고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꼬불쳐 두었던 원고를 다시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한다.
'독학력(獨學力)'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인공지능(AI) 전공자도 아닌 내가 독학으로 인공지능을 공부해서 싱가포르와 영국의 대학에서 교수로서 인공지능을 가르치게 되는 일을 하게 되면서이다.특히나 최근 미국 Open AI의 '챗 GPT(ChatGPT)'가 보여주고 있는 인공지능(AI)의 힘에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들썩인다. 챗 GPT의 능력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교육, 우리의 공부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를 고민하면서 나름 답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이제는 시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능력이 '독학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과거부터 나를 가르쳐왔던 학교의 선생님들이나 교수님들에게 배은망덕(?)한 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공부들은 다 독학으로 배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도 관찰을 해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공부는 독학으로 하는 건데, 한국 사회에서 공부라는 것은 입시 위주의 공부이고 학력과 학벌이 과도하게 중요하다 보니 우리의 공부에는 늘 학교라는 '기관'이 그 중심에 있어 왔다. 이 '기관'이 필요 이상 우리의 공부에 대해서 많은 것을 대변하고 상징하게 된 것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는 하버드 학부 중퇴, 메타의 마크 주커버그도 하버드 학부 중퇴,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리드 칼리지 학부 중퇴, 델의 마이클 델은 텍사스 오스틴 학부 중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여러가지 해석들을 하기를 좋아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어떤 해석들에 귀를 기울이기 이전에 한가지 분명한 사실들이 있다. 이들 모두는 미국 최상위권 대학들을 입학할 만한 학습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지 않고 중퇴하고 나서도 가장 학위가 필요할 것 같은 첨단 테크놀로지 분야의 기업을 이끌고 성장시켜갈만한 자신만의 학습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능력이 '독학력'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배워서 끝까지 가는 능력.
우리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무슨 석사 학위나 무슨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따져볼지 모른다. 그런데 박사로 교수로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 학위의 내용이 정작 본인의 현재 전문성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따져본다면 사실 별 관련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학위 받고 교수 발령 받고 가르칠 분야가 정해지면 그때 다시 다 공부해서 가르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즉, 다시 조용히 독학해서 가르친다. 가령, 현재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 같은 최신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가나 교수들 중에 학교 시절에 그것을 전공한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 당시에는 저런 전공들이 없었는데 말이다. 다 자기들이 혼자 스스로 공부해서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최근 5년여 시간동안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에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이다. 이제는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1차, 2차, 3차, 4차 산업혁명들이 기간을 어떻게 잡느냐는 학자들마다 이견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1차 산업혁명은 1750년에서 1850년까지 약 100여년, 2차 산업혁명은 1850년에서 1930년까지 약 80여년, 3차 산업혁명은 1930년부터 2000년까지 약 70여년, 4차 산업혁명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여년 정도로 분류를 한다. 이 마지막 4차 산업혁명의 기간에 대해 사실 좀 달리 생각하는데, 2023년인 현재도 아직 4차 산업혁명의 구현기간이라고 생각을 하고 앞으로도 10년은 더 지속되는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요지는 각 산업혁명들의 기간이 단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벌써 5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논문들과 논의들이 많은 것을 보면 곧 5차 산업혁명도 본격화될 것 같다.
앞으로 매번 이렇게 혁명이 더 짧은 기간에 일어날텐데, 그리고 우리의 살아 생전에 5차, 6차 아니 10차 산업혁명도 볼지도 모르는데,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날때마다 호들갑을 떤다면 인생이 피곤해서 살겠나 싶다.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두면 매번 이런 것들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독학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신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 세대들에게도 반드시 미리 훈련시켜놓아야 하는 경쟁력이다.
‘독학(獨學)‘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선생이 없이 혹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말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협력과 연대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인스타그램 등 커뮤니티 활동이 너무나 중요해진 시대에 ‘독학’이라는 말은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얼마전에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라는 책을 보면서, ‘침묵’이라는 말이 ‘소음’과 ‘다변(多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와 유사한 느낌을 ‘독학’이라는 말에서도 받는다. ‘독학’이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무겁고 고독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독학’이라는 것이 이제는 재정의되어야 하며, 현대적 정의와 범주는 단어적, 사전적 의미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현대 세계에서는 선생의 유무, 학교 등록의 유무가 독학력을 정의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나는 이 독학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목적을 명확화하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지식을 주도적으로 습득하는 성실의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즉, 목적이 명확히 서면, 선생이 필요하면 선생을 구하면 되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필요하면 학교에 등록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선생이나 학교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닐 뿐더러 사실 당신의 목적 달성을 보증해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우리의 노력은 더 나은 선생,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환경을 얻어내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는 외부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스스로 혼자 탐험내나갈 수 있는 능력은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본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은, 이제는 왜 ‘독학력’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논한다. 둘째 부분은, 현대적 의미에서 진정한 ‘독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독학력’을 극대화하고, 실제로 효과적으로 ‘독학’을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책 속 문장>
- 같이 사는 것 같아도 우리의 인생은 결국 자신 혼자 살아내듯이 함께 공부하는 것 같아도 우리의 공부는 결국 독학이다.
- 키에르케고르가 인간의 존재를 '신앞에 선 단독자'로 비유한 것처럼, 우리는 '지식앞에 선 독학자'로 살아야 된다.
- 학교의 공부에 자신의 미래를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공부에 학교를 이용하라.
- 독학할 수 없는 사람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사람과 같다.
- 4차 산업혁명이든 혹 10차 산업혁명이든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 양질의 컨텐츠가 아무리 유튜브에 넘쳐나도, 혼자 씹어서 소화하는 독학이 없으면 다 무용지물이다.